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무엇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사람을 기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거의 얼굴부터 떠올린다.

눈매와 표정, 웃을 때 생기는 주름 같은 것들.

그래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은 언듯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처럼 들린다.

백희성의 <기억의 무늬>는 바로 이 익숙한 믿음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주인공 카미는 얼굴을 구별할 수 없다.

대신 사람마다 다른 옷의 결, 자주 걷어 올린 소매의 주름,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조합해 상대를 알아본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정보가 카미에게는 한 사람의 이름이 된다.

그 설정 덕분에 이 소설에서 ‘본다’는 행위는 눈의 기능만을 뜻하지 않는다.

많이 바라본다고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얼굴을 기억하면서도 마음을 놓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카미의 세계를 따라가면 우리가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이 생각보다 대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표정 하나로 기분을 짐작하고, 옷차림 하나로 성격을 판단한다.

카미는 얼굴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한 사람에게 축적된 흔적을 더 세심하게 읽는다.


이제 결핍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이해로 바뀐다.



손끝으로 추적한 19년


카미가 기억하는 것은 세 살 때 부모가 숨진 날 만졌던 검은 옷감의 촉감이다.

경찰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는 부모 외에 세 번째 실루엣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목격자가 단지 촉감으로 범인을 찾는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은 미제 사건을 다시 구성한다.


옷은 입는 사람의 땀과 체취를 품고, 반복되는 움직임에 따라 닳고 주름진다.

낡은 가구 역시 손이 자주 닿은 자리와 고치지 못한 상처를 간직한다.

카미는 지문이나 몽타주 대신 직물의 박음질과 나뭇결 같은 걸 증거로 삼는다.


범인을 쫓는 과정은 이제 어딘가에 기록된 삶을 판독하는 일이 된다.


작가는 건축디자이너로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작은 소품도 허투로 대하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사용했으며, 왜 특정한 흠집을 고치지 않았는지는 한 가족의 시간을 추측하는 증거가 된다.


셜록이 주로 이런 일을 했던 것 같은데 뭔가 좀 흥미로웠다.



사물이 기억하는 것들


소설의 출발점은 살인 사건이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는 기억을 되짚어 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영상이나 사진처럼 보관되지 않는다.


기록한 이에 따라서 어떤 날은 냄새로 돌아오고, 어떤 사람은 낡은 셔츠의 촉감이 된다.

머리는 잊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도 있다.


카미는 바로 그런 기억의 조각을 이어 붙여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제목은 ‘기억의 무늬’다.

무늬는 실 한 가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색과 굵기의 실이 교차하고, 때로는 매듭이 생기며 하나의 형상이 된다.


카미의 기억도 그렇다.

상처와 오해, 사랑과 결핍이 겹쳐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때론 지우고 싶은 부분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그림은 완성된다.


여기서 소설은 범인을 맞히는 재미에서 한 사람을 무엇으로 기억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사를 하며 버려야 할 물건들을 왕창 꺼냈다.

누군가는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남겨야 하면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지만 무언가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나는 정말이지 한참을 어려워 했다.

그 대부분의 물건에는 대단한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닳은 머그잔, 늘어난 스웨터, 모서리가 깨진 가구. 남이 보면 낡은 물건인데 내게는 특정한 사람과 시간이 들어 있다.

그들은 이미 내 곁에 없지만 이것들을 만질때 그들에 대한 기억이 되 살아난다. 사물은 그런 것이다.



사랑이 새겨진 자리


카미는 범인을 찾기 위해 과거로 향하지만, 그 끝에서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았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을 괴롭혀 온 기억이 전부 불행의 증거라고 믿었는데, 같은 자리에는 자신을 지키려 했던 누군가의 마음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


상처와 사랑이 서로 다른 곳에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늬 안에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부터 기억하려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얼굴의 세부보다 그 사람이 건넨 말, 손의 온도, 함께 쓰던 물건이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장면을 정확하게 복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내 삶에 만든 흔적을 알아보는 일, 그 흔적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일 수 있다.


<기억의 무늬>는 속도감 강한 추리소설을 원하는 독자보다 사물과 공간에 스민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더 잘 맞는다.

책을 덮은 뒤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버리지 못하고 곁에 둔 물건 하나가 있다면, 그 안에는 누구의 시간이 새겨져 있는지도 떠올려보자.

그 안에도 분명 사랑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멋진 말만 하늘에 떠다니는 회의


개인적으로 어떤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사람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회의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잘해보자, 임팩트를 만들자,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자, 고객 중심으로 가자.

그 자리에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멋진 말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문제는 회의실을 나선 뒤다. 누구는 속도를 먼저 떠올리고 누구는 완성도를 챙긴다.

또 다른 사람은 전에 했던 일을 조금 고치면 된다고 이해한다.

모두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흔히 실무자의 센스나 역량을 탓한다.(그놈의 알잘딱깔센)


이때 이 책 <명료함>은 이 불완전한 의사소통의 책임의 방향을 리더에게 돌린다.

구성원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무엇이 중요한지, 왜 이 일을 하는지, 잘된 결과는 어떤 모습인지 설명했는지를 묻는다.


일할 때 책임지지 지않는 모호한 지시 한 문장은 여러 사람의 추측과 재작업을 부른다.

반대로 선명한 기준은 일을 줄이고 판단을 빠르게 한다.


생각하기에 일을 잘하는 사람란 단지 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 답이 있지 않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해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번 일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해 온 ‘일잘’의 조건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좋은 사람말고 진짜 그 사람


조직에는 대개 멋진 가치 혹은 비전이 있다.

도전, 신뢰, 협업, 혁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은 누구나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도전하자’는 말이 실패해도 시도하라는 뜻인지, 높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라는 뜻인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구성원은 같은 말을 보며 리더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이에 책이 제안하는 방식은 구체적이다.

먼저 함께 일했던 최고의 동료와 그렇지 않았던 동료를 떠올리고, 그 차이가 어떤 행동에서 드러났는지를 찾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 뒤에 숨은 실제 그 사람을을 꺼내는 것이다.


회의 전에 자료를 공유했던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감추지 않았던 사람, 자기 성과보다 팀의 결정을 먼저 챙겼던 사람.


이렇게 어떤 사람의 행동을 적어보면 그와 나의 가치와 기준이 같은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막연히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잘못되었음을 알게된다.


멋진 단어들을 가져다 쓰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세운 기준을 자신이 먼저 지키고,

보상과 평가와 채용에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


말과 선택이 불일치는 여기서 나오고 이것이 일치할 때 구성원은 리더의 마음을 짐작하는 데에 헛힘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리더


그런데 비단 이건 일뿐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못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료하게 정의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뛰어난 리더, 뛰어난 관리자다.

여기서 정의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저래'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세심하게 보고 그가 성과를 내는 조건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점을 알아내는 일이다.


일을 빠르게 시작하지만 마지막 검토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확인의 장치를 붙여주면 된다.

충분히 생각해야 좋은 답을 내는 사람에게는 회의 전에 맥락을 건네야 한다.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보다 문서로 정리하는 데 강한 사람이라면 그 강점이 드러날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겉으로는 공평해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게으른 관리자의 모습이다.


좋은 관리자는 구성원을 대신해 모든 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서로 다른 사람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조직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 등대’도 결국 이런 역할이다.

리더가 모든 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위치와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면 그때부터는 각자가 자기 힘으로 주어진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



리더가 되면


리더십 책을 읽자하면 일견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를 구경하다 책을 덮을 때가 있다.


<명료함>은 이 읽는 사람을 구경꾼으로 두지 않는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준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리더란 무엇인가.

공식적으로 직함을 가진 자만 리더가 되는 것은 안니다.

자기 일을 정의하고 동료와 기준을 맞출 수 있는 비공식리더가 오히려 팀에 더 유익한 순간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했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펼친 이 책을 책상위에 놓았다.


아마도 지금 밑줄 친 문장과 실제로 팀장이 되어 사람을 이끌게 된 뒤 밑줄 칠 문장은 분명 다를 것이다.


새삼 팀원의 일이 기대와 달랐을 때 그 사람의 센스를 탓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그 기대를 이해할 수 있게 말했는지에 톱아볼 수 있는 리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다 지친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그 행동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보다 중요하다.’(p.9)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면 우리는 빠르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나르시시스트.

그러다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는 멀쩡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판단의 방향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달라졌을까. 관계는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는 그 성급한 판정 사이에 ‘이유’라는 한 칸을 만든다.

물론 이유를 안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든 나든 잘못이 옳은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설명할 수 없었던 행동에 구조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혹은 밀어내지 않을 수 있다.

이해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보기 위한 조건이다.



미생과 나의 해방일지


책은 13가지 성격장애 혹은 불안을 섦여하기 위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예시로 사용한다.

적재적소라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표현인가 싶을 정도로 적확하고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낯선 심리학 단어들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음을 알게된다.


이를테면 <미생>의 밉상 성 대리가 등장하는 순간 윗사람에게는 싹싹하고 유능하지만 약한 후배에게는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사람. 주변에서는 좋은 동료로 평가받으며 후배를 가스라이팅하는 우리가 직장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이임을 알게된다.

당신이 틀린게 아니다.


이렇게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를 통해 ADHD를 설명하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선아에게서 우울증을,

<나의 해방일지>의 구 씨에게서 중독을 읽어 낸다.


이러한 장면을 다시 불러오며 문득 ‘의지가 부족해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라고 지나쳤던 행동이 하나씩 떠올랐다.

또한 음주를 낭만으로 이야기해 온 캐릭터들이 실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진단은 뭔가 새롭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이해는 수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해와 수용을 한 묶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왜 관심을 갈구하는지, 왜 상대를 통제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의 그런 행동을 계속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유를 알고 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우리는 견뎌야 할 때와 도망쳐야 할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불안과 결핍을 알아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며 그 결핍을 내가 전부 채워줄 수도 없다.


누군가를 돕는 일과 그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일도 다르다.

책은 때로 곁에 있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이해하라는 조언 때문에 더 많이 참고, 더 자주 자신을 탓해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치료보다 앞선 선 긋기다.


관계의 이유를 아는 것과 상대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내 에너지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확인하고,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때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게 하는 것.


우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그 이름표가 떼어 내세요


에니어그램 집단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너는 00라서 그래' 생각보다 쉽게 책이 쓰인 탓에 책을 덮고 나면 주변 사람에게 진단명을 붙이고 싶어질 수 있다.


성 대리를 보며 직장 동료를 떠올리고, 라스타를 보며 연인을 분류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실제 인물을 진단하지 말고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라고 여러번 당부한다.


부디 그 당부를 받아들이길 권한다.

책이 누군가를 판정하기 위한 목록으로 읽는 순간 저자가 애써 마련한 마음의 자리가 다시 정상과 비정상의 좁은 칸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결국 구원받을 사람은 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타인에게서 나에게 돌아온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내가 받아 자기 감정처럼 행동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애착 유형은 왜 유독 어떤 사람 앞에서 불안해지고, 밀어내는 사람에게 더 매달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관계에서 벌어지는 어긋남은 그저 한 사람의 성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과 침묵, 반복해온 반응 속에서 그 틈이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물음은 ‘나는 왜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반응할까’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느라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모든 관계를 끊어내지도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사람 때문에 지친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번 더 당부한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에 곧바로 이름표를 붙이기보다, 그 사람 앞에서 반복되는 나의 반응을 한 번 적어보자.


이해의 끝에서 구원해야 할 사람은 결국 그가 아니라 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
김리나 지음, 김종채 그림 / 휴먼어린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다 쓰다 초등 수학만화까지 리뷰할 줄이야


쓰다 쓰다 이런 초등만화 서평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천 권이 넘는 책을 읽고 기록했으니 웬만한 장르는 다 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세계는 늘 내 예상보다 한 칸 더 옆에 있다.

이번에는 지도와 수학이다.


지도를 펼쳤다가 비와 분수와 좌표와 삼각비까지 끌려 들어간다.

뭐,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오래전에 수학 아니 산수 풀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비례식을 풀어 보고 등고선도 쳐다봤다.

예전에 이렇게 배웠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이제는 확인할 길 없는 미련도 조금 생기기도 했다.


김리나의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는 지도를 수학책으로 바꾼다.

우리는 스마트폰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하면서도 화면 속 세상이 어떤 규칙으로 줄어드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그 무심한 손가락 아래에 수학이 있었다고 말한다.



김정호 선생님의 위대함


옛날 김정호 선생님은 <대동여지도>를 만들며 우리나라를 약 16만분의 1 크기로 줄여 그렸다.

전국을 전부 펼치면 높이가 6미터를 넘는 거대한 지도지만, 실제 국토와 비교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작다.

산과 강과 길과 고을을 같은 규칙으로 줄이고, 길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었으며, 여러 정보를 기호로 표시했다.


이것이 지도다.


그리고 책은 이 비례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수학이 출발한다.


실제 세상을 그저 작게 그린다고 지도가 되지는 않는다.

집은 절반으로 줄이고 길은 10분의 1로 줄이면 그 그림으로 거리를 짐작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같은 비율로 줄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축척이고, 축척을 이해하려면 비와 분수와 비례식이 따라온다.

교과서 안에서는 따로 떨어져 있던 개념들이 지도 위에서 한꺼번에 제 자리를 찾는다.


이 연결이 이 책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느냐는 물음에 ‘시험에 나오니까’보다 나은 답을 아이에게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비례는 실제 거리를 구하고, 좌표는 한 지점을 정확하게 표시하며, 등고선은 산의 높낮이와 경사를 알려준다.

숫자와 선이 갑자기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사회책과 수학책 사이


책은 축척에서 멈추지 않고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위치를 표시하는 좌표를 거쳐 위도와 경도로 나아가고, 둥근 지구를 평면에 옮긴 프톨레마이오스와 메르카토르의 지도까지 이어 붙인다.


이어 대동여지도의 기호와 범례를 살피고, 삼각형의 비율로 산의 높이를 계산한 뒤 등고선과 수준 원점을 설명한다.

초등 사회 시간에 본 단어와 수학 시간에 배운 개념이 같은 지도에서 만난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는 비례식을 풀고 사회 시간에는 축척을 외운다.

이 둘은 수학 선생님과 사회 선생님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지 않는데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는 이 둘을 이어준다.


축척을 읽다가 분수로 이동하고, 위치를 찾다가 좌표와 각도를 만난다.

이 연결이 사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만화와 삽화, 짧은 글을 섞어 부담을 낮추고, 장이 끝날 때마다 ‘지도 속 수학 비밀 노트’로 개념을 다시 묶어 준다.

문제집처럼 정답을 재촉하지 않고 지도를 들여다보며 원리를 발견하게 한다.


수학이 계산의 기술이기 전에 세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라는 사실도 새삼 알게된다.



이게 진짜 재미있을까


재미있게 쓴 책이다. 나는 뭐,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는거지 정말 수학을 배워야 할 아이에게도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도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두지도 않았다.


어른인 나는 대동여지도와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미 알고 있고, 비와 분수와 좌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대충 짐작한다.

그래서 흩어진 지식이 연결되는 순간이 반갑고 진작에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쳤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건 어른의 관점이다.


지도와 수학을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는 축척, 음수 좌표, 위도와 경도, 삼각비, 등고선이 그냥 단어만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혹 표지와 그림을 보고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학습만화를 기대한다면 설명의 비중이 생각보다 커 놀랄수도 있다.


초등 저학년이 읽기보다는 적어도 초등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더 잘 맞을 듯하다.

부모나 선생님이 실제 스마트폰 지도와 함께 펼쳐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재 보거나, 등산 지도의 등고선을 찾아본다면 책의 효과는 더 커질 것 같다.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을 쉽게 말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짐작하고, 그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책이 지도를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화면을 확대해 본 경험은 있다.

저자는 거기 축척과 좌표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과 아이의 재미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생긴다.

정성껏 준비한 설명이 어떤 아이에게는 졸음의 시발점이 되고, 다른 아이에게는 또 다른 지식의 출발이 된다.


그 틈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을 최대한 줄이려 지금도 노력하시는 이 책의 저자 선생님을 비롯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하는 기술과 듣는 기술


나는 캠페인과 모금을 위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어떤 문장을 써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지,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쉽게 전할지 고민하는, 아니 정확히는 설득하는 일이 내 일의 큰 부분이다.


그래서 꽤 큰 돈을 내고 스피치하는 법은 제법 배웠다.

정확히는 잘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 익혔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을 계속 할 수록, 나이를 먹어갈 수록 궁금했다.

말하는 법은 이렇게 배우는데 나는 누군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아니 고민했던 적이라도 있었던가.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주목받지만 잘 듣는 사람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회의에서도, 관계에서도, SNS에서도 우리는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상대는 내 감정을 들어달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머릿속으로 답을 만들고, 빈칸을 채우고, 해결책을 건넨다.

분명 대화를 했는데 서로 유쾌하지 못한 기분만 품고 돌아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 유지영의 <심장 듣기>는 말하기의 뒤편으로 밀려난 듣기를 앞으로 불러낸다.


듣기는 타인의 말을 듣고 판단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대화의 주체다.

듣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치는 대화


우리는 소위 잘 듣는 사람을 흔히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를 깨지 않고, 불편한 말도 삼키고, 적당한 반응을 돌려주는 사람.


저자는 자신도 한동안 그런 ‘착한 듣기’에 몰두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계속 사라지는 대화는 머지 않아 그 다정함을 잃는다.


말하는 이의 의중만 헤아리다 보면 듣는 이의 감정과 판단은 지워지고,

대화는 서로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감당하는 일이 된다.


듣기와 들어주기는 닮아 보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들어주기가 상대를 위해 나를 비우는 일로 끝난다면, 책이 말하는 듣기는 타인의 말과 내 생각이 부딪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듣는 사람도 질문할 수 있고,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다시 물을 수 있다.

그래야 화자도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새롭게 듣는다.


‘귀를 기울여서 잘 듣는, 잘 들으려 애쓰는 일은 생산적일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p.115)


들어주지 말고, 듣자.

같은 듣는 시간이라도 어떤 듣기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나의 선택적 시간이다.



사랑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


책의 1부는 연인과 반려견처럼 일상의 가까운 관계에서 시작한다.

작은 목소리, 설명할 수 없는 보챔, 말이 아닌 몸의 신호를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저자는 들어야 들리고, 들려야 관계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사랑은 상대를 이미 안다고 믿는 데서 자주 실패한다.

궁금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듣기가 시작된다.


2부에 이르면 듣기의 범위는 취재 현장과 사회로 넓어진다.

노동자와 장애인, 이주민을 만난 기사 현장, 강남역과 무안공항, 국회 앞에서 들은 시민과 유가족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여기서 듣기는 개인의 좋은 성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누구의 말이 기록되고 누구의 말이 소음으로 취급되는지는 권력의 문제가 된다.

피해자의 말이 들리지 않으면 같은 비극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관계의 기본과 민주주의의 기본은 같다.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경험이 없는 사회는 다수의 목소리도 쉽게 통계와 구호로 줄인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을 대신해 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을 정확하게 듣고 제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먼저다.


말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들을 사람이 있어야 말은 세상에 도착한다.



대화법 책은 아닙니다만


제목만 보면 경청의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심장 듣기>는 대화를 잘하기 위한 단계별 요령이나 곧바로 써먹을 질문 목록을 주는 책은 아니다.


연인, 반려견, 취재 현장, 사회적 참사, 우울과 자기혐오까지 여러 장면을 오가며 듣기의 의미를 넓혀가는 산문집이다.

구체적인 대화법을 찾는 독자라면은 더 좋은 책을 권한다.


하지만 되려 그 점이 이 책의 선택이기도 하다.

잘 듣는 법을 정답처럼 건네는 순간 듣기는 다시 상대를 다루는 기술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성공한 대화의 공식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이 잘못 듣고, 자신을 지우고, 다시 듣기를 배우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책을 읽으며 계속 드는 생각이다.

나는 듣고 있었을까, 단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까.



말이 머물 자리


<심장 듣기>를 따라가다 보면 듣는 사람이 대화의 조연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는 선명해진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닿고, 그 사람 안에서 해석되고, 다시 다른 말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듣는 이는 말의 도착지이면서 다음 출발점이다.


말할 기회는 많아졌는데 진짜 대화는 줄었다고 느끼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주느라 자신이 자주 사라지는 사람,

인터뷰와 상담, 돌봄과 캠페인처럼 타인의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한 번만은 대답을 서두르지 말고 상대의 문장이 어디까지 가는지 들어보면 어떨까.

우리의 대화는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