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다 지친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6년 8월
평점 :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그 행동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보다 중요하다.’(p.9)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면 우리는 빠르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나르시시스트.
그러다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는 멀쩡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판단의 방향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달라졌을까. 관계는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는 그 성급한 판정 사이에 ‘이유’라는 한 칸을 만든다.
물론 이유를 안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든 나든 잘못이 옳은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설명할 수 없었던 행동에 구조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혹은 밀어내지 않을 수 있다.
이해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보기 위한 조건이다.
미생과 나의 해방일지
책은 13가지 성격장애 혹은 불안을 섦여하기 위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예시로 사용한다.
적재적소라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표현인가 싶을 정도로 적확하고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낯선 심리학 단어들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음을 알게된다.
이를테면 <미생>의 밉상 성 대리가 등장하는 순간 윗사람에게는 싹싹하고 유능하지만 약한 후배에게는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사람. 주변에서는 좋은 동료로 평가받으며 후배를 가스라이팅하는 우리가 직장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이임을 알게된다.
당신이 틀린게 아니다.
이렇게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를 통해 ADHD를 설명하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선아에게서 우울증을,
<나의 해방일지>의 구 씨에게서 중독을 읽어 낸다.
이러한 장면을 다시 불러오며 문득 ‘의지가 부족해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라고 지나쳤던 행동이 하나씩 떠올랐다.
또한 음주를 낭만으로 이야기해 온 캐릭터들이 실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진단은 뭔가 새롭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이해는 수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해와 수용을 한 묶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왜 관심을 갈구하는지, 왜 상대를 통제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의 그런 행동을 계속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유를 알고 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우리는 견뎌야 할 때와 도망쳐야 할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불안과 결핍을 알아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며 그 결핍을 내가 전부 채워줄 수도 없다.
누군가를 돕는 일과 그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일도 다르다.
책은 때로 곁에 있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이해하라는 조언 때문에 더 많이 참고, 더 자주 자신을 탓해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치료보다 앞선 선 긋기다.
관계의 이유를 아는 것과 상대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내 에너지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확인하고,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때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게 하는 것.
우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그 이름표가 떼어 내세요
에니어그램 집단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너는 00라서 그래' 생각보다 쉽게 책이 쓰인 탓에 책을 덮고 나면 주변 사람에게 진단명을 붙이고 싶어질 수 있다.
성 대리를 보며 직장 동료를 떠올리고, 라스타를 보며 연인을 분류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실제 인물을 진단하지 말고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라고 여러번 당부한다.
부디 그 당부를 받아들이길 권한다.
책이 누군가를 판정하기 위한 목록으로 읽는 순간 저자가 애써 마련한 마음의 자리가 다시 정상과 비정상의 좁은 칸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결국 구원받을 사람은 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타인에게서 나에게 돌아온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내가 받아 자기 감정처럼 행동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애착 유형은 왜 유독 어떤 사람 앞에서 불안해지고, 밀어내는 사람에게 더 매달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관계에서 벌어지는 어긋남은 그저 한 사람의 성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과 침묵, 반복해온 반응 속에서 그 틈이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물음은 ‘나는 왜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반응할까’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느라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모든 관계를 끊어내지도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사람 때문에 지친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번 더 당부한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에 곧바로 이름표를 붙이기보다, 그 사람 앞에서 반복되는 나의 반응을 한 번 적어보자.
이해의 끝에서 구원해야 할 사람은 결국 그가 아니라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