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 -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
황서미 지음 / 느린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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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받아들고, 황서미? 누구지 유명한 사람인가? 하고 구글링 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서 여러 직업을 거쳤으며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지나쳐왔다. 이력이 꽤 특이해서 작가님의 여러 글을 인터넷에서 몇 편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삶에서 만만찮은 내공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책은 사춘기를 통화하는 딸과 엄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그리고 부족하고 모자란 이들이 함께 자라가는 성장 기록이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 달라서 그래" p.14


옳다. 모든 이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가족 특히 엄마와 딸의 경우는 이런저런 사정이 더 치열하게 얽히고설켜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한 권을 통틀어 엄마와 딸은 자신들의 삶에서 닿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물론 항상 좋은 대화만 있지는 않다. 엄마와 딸이 싸울 땐 마치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싸운다. 


모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중학생 때가 생각났다. 물론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이라는 구조적 차이가 있지만 나는 한 번도 이 책의 황서미 작가와 같은 피드백을 나의 부모에게 받아본 적이 없다. '해', '하지 마' 두 단어로 만 표현하는 아빠의 언어 속에서 그의 마음을 읽어내기란 생각보다 어려웠고 나는 어렸다. 이제 와 생각하기에 그의 마음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아빠도 그랬으려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을까. 


책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마음이야 말할 것 있겠냐마는 나는 곰돌의 모습이 참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딴딴한 친구로 자랐는지 모르나 이 친구 너무 튼튼하고 멋졌다. 여러 번의 이혼이면 아이가 받았을 그간의 상처도 어쩌면 만만찮았을 법한데 곰돌의 엄마를 향한 사랑은 꽤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아이는 어떤 비밀도 없이 엄마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고 어떤 질문은 신중하게 또 어떤 대답은 명쾌하게 한다. 이런 딸을 소개하며 엄마가 황서미라고 하는 건 인정. 이런 딸이면 얼마나 내가 엄마라고 자랑하고 싶을까?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이다. 아픈 줄도 모르고 두어 시간을 읽었다. 둘의 대화와 케미가 즐거웠고, 나중에 나도 자녀와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중2 때문에 북한이 함부로 못 내려온다고 했던가. 중학생 자녀와 대화가 어려우시다면, 그리고 그 대화법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이 엄마와 딸은 꽤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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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종대 지음 / 가디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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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 관한 기록은 너무 많다. 정말이지 많아도 너무너무너무 많다. 그가 직접 남긴 <난중일기>부터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룬 <칼의 노래>, 천만 영화 <명량>, 좀 지나긴 했지만 꽤 핫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까지.

교과서에서도 어디서도 우리는 이순신을 만나볼 수 있고 그가 한 일에 대해 알 수 있다. 조선을 넘어 세계 해전사에서도 기록된 해상 영웅. 그의 이야기를 이제 뭐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책장을 넘기던 찰나 꽤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다.


정성 일념 : 하나, 일이 있기 전에는 철저히 준비한다. 둘, 일을 당해서는 그 일에 목숨을 걸고 전심전력한다. 셋, 일이 끝나면 그뿐, 결과야 어찌 되어도 괘념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철저히 준비하고, 그 일을 당해서는 전심전력한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던 뒤돌아 보지 않는다. 안다치면 이미 알고 있는 소박한 진리인데도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준비는 늘 미흡하고, 일을 당해서는 도망가고 싶다. 그렇게 끝난 일은 늘 머리에 남아 그날 밤 이뿔 킥으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중용 23장에는 성품을 정성스러움이라 말하고 있다.

'정성으로부터 밝아짐을 성품이라 하고 밝음으로부터 정성스러움을 가르침이라 하니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 새삼 정성스러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내가 밝지 못한 어떤 것이 정성스럽지 못해서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것이 이젠 단어조차 낯설어져 버린 성품에 대해 생각한다. 언젠가 했었던.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괜스런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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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공감 - 정신건강을 돌보는 이의 속 깊은 사람 탐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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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말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진심에 상응하는 무언가로 드러나야 한다. (중략) 사과의 진정성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p.107)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않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정신과를 찾는다는 농담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후 정신의학과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 봇물을 이뤘다. 아니 원래부터 이에 대한 수요는 가득했는데 정신과란 차마 말하지 못할 벽을 책 한 권이 무너뜨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얼굴만 봐도 미칠 것 같았고, 말을 걸어올까 움찔거릴 정도로 힘든 이가 있었다. 그가 특별히 나를 괴롭히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구사하는 일방적인 막힌 의사소통에 지쳐버렸고,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일의 조각이나 부품이 아니었는데 그는 나를 부품으로 대했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일방적인 4년의 시간을 버티다 결국 병이 났고, 후배의 도움을 받아 난생처음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두 번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는 내게 일을 한두 달 쉴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요청했다. 먹고살아야 하니 일을 쉴 수는 없고 그때부터 주로 퇴근 이후 혼자 책이나 영화를 붙들고 살았다. 혼술도, 요리도 그 이후 참 많이 늘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로부터 도망쳤고 시간이 꽤 흘러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볼 자리가 있었다. 마주 앉은 식사 자리에서 그는 내게 미안했다고 했다. 본인의 과한 욕심이 그르쳤던 많은 것들에 대해 내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지난 몇 년간 무엇이 그렇게 나를 슬프고 화나게 했을까 생각했다. 나는 남들이 의미 지워주는 무엇이 아니라 내가 의미 있다 믿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내 위치는 그의 하수인, 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 헤어지고 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의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니 시간이 흘러 내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의미'라는 것이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삶은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해낼 방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보편적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프로이트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황금률은 없다. 모든 이는 각자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p.57)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한다.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선언에 반박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결국 그의 이야기가 옳았다. 우리는 많은 이들의 지혜를 빌어, 혹은 주변의 현인들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 삶의 지혜를 찾으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처럼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삶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각자가 그것을 고민하고 찾아갈 뿐이다. 그리고 각자가 이루어가는 구원을 가만히 지켜보고 응원할 뿐이다.


비로소 책 제목을 돌아본다. <겸손한 공감> 무슨 뜻인지 모르고 시작한 책이 책을 다 덮고, 도 한참을 책에 대해 생각하고서야 이해되었다. 공감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는 다르며, 너 또한 네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믿음. 신뢰. 그리고 뜨거운 지지.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 공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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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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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덧 벚꽃이 떨어지고 새잎이 솟아나는 나무와 햇살, 그리고 우리 집 앞마당의 데크는 참 잘 어울린다. 언제 와버린 봄의 한 가운데서 한가로이 사노 요코를 읽는다.


요코의 글을 읽으면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제,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히던, 그렇게 큰일인 것처럼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많은 일들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언젠가 그의 글은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글은 위로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삶의 지혜이자 먼저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선배의 멘토링이다. 물론 그가 여느 자기 계발서처럼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는다. 

그는 가만히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이러니까 너무 좋지 않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준다.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나는 늘 그의 지근거리에 앉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따뜻한 볕이 잘 드는 마당에 눕듯이 앉은 의자와 반쯤 마시다 만 커피,

가끔 야채 파는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와 아이들이 왁자지껄 골목을 달려나가는 소리,

옆집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마당으로 나오겠다고 낑낑대는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며 웃다가 그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상 따뜻한 나만의 공간, 이것으로 충분한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마음을 조였나.


장기하가 인터뷰에서 그랬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인생은 그냥 평온했다고. 물론 당시에는 자신도 너무 감당하기 큰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다 그냥 지나 올 법한 일이 있고 그 일들은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닐까 하고.

요코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 그거, 다 일어날 법해서 생긴 일이라고. 지금 당신이 죽을 것 같이 하는 그 고민 중 어떤 선택을 하던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으니, 그저 지금 네게 주어진 삶을 살라고. 


책 제목 마냥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게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인지 욕심인지 나는 내 이름이 걸린 일에 대해 허투루 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요코의 충고처럼 모든 것에 마음을 다 내어 주지는 않으려 한다. 까만 밤, 오직 나를 위해 쓸 마음과 시간 정도는 이제 놔두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 대해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읽고 ‘아, 참 좋다’라고 하는 수필은 기본적으로 작위가 아닌, 살면서 그 사람 안에 한 켜 한 켜 쌓여 오던 것들이 마침내 그 사람의 됨됨이의 그릇에서 자연스럽게 넘쳐 니오는 그런 것일 터이다.(p.321)


요코의 글을 읽으며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나도 저렇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책을 읽는 동안 참 많은 것이 정리되고, 또 괜찮아졌다. 사노 요코는 정기적으로 한 번씩 읽어줘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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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억짜리 대화 -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라
오상훈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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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지나며 불기 시작한 투자 붐이 쉬 꺼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해 업비트는 연간 앱 다운로드 수 상위권을 차지했고 거래되는 가상화폐 규모는 코스피의 그것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이 불황이었던 것도 아니다. 코인과 주식, 부동산으로 인한 벼락부자들이 등장하며 근로소득의 가치는 점점 하락했고 이때를 틈타 투자에 대한 책과 콘텐츠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 책 제목도 딱 그랬다. 나는 정말이지 그저 그런 책 중 하나라 생각했고 그래서 첫 장 넘기기가 꽤 많이 어려웠다. 그리고 책을 시작하고 거의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저 그런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주식회사와 주식 그리고 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의 시작부터 투자유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엔젤투자, 엑시트, 투자 라운드 등 사업에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 잘 모르는 용어들이 나오는데 책은 단순한 자영업이 아니라 주식회사를 시작하려는 이들을 예로 들며 주식회사가 완성되어가기의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사실 우리 중 주식회사를 차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회사의 주식을 살 수는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주식회사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성장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점칠 때 책에서 설명하는 용어와 가르침들은 꽤 많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말한다.


백억짜리 대화의 목적은 '대화를 시작함'에 있습니다. 글을 읽고 덮으면 세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지식의 조각 중 하나를 구경한 것에 불과하지만, 글을 읽고 '대화를 시작하면' 내가 가진 사고체계의 틀이 뒤틀리고 그 균열로 인해 새로운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깁니다. 그 틈에 조각 하나가 들어가면, 그 조각에 맞닿은 지식을 시작으로 사고체계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중량) '대화'는 기존 체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읽고 대화해야 합니다.(p.267)


백억이라는 돈의 무게는 한없이 비현실적이지만 '내가 백억을?'이라는 질문을 시작하게 되면 이 게임은 시작된다. 책은 이 게임을 끝없이 오가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이끌어 간다. 돈에 관심이 있다면, 이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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