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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공감 - 정신건강을 돌보는 이의 속 깊은 사람 탐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4월
평점 :
사과는 말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진심에 상응하는 무언가로 드러나야 한다. (중략) 사과의 진정성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p.107)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않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정신과를 찾는다는 농담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후 정신의학과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 봇물을 이뤘다. 아니 원래부터 이에 대한 수요는 가득했는데 정신과란 차마 말하지 못할 벽을 책 한 권이 무너뜨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얼굴만 봐도 미칠 것 같았고, 말을 걸어올까 움찔거릴 정도로 힘든 이가 있었다. 그가 특별히 나를 괴롭히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구사하는 일방적인 막힌 의사소통에 지쳐버렸고,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일의 조각이나 부품이 아니었는데 그는 나를 부품으로 대했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일방적인 4년의 시간을 버티다 결국 병이 났고, 후배의 도움을 받아 난생처음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두 번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는 내게 일을 한두 달 쉴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요청했다. 먹고살아야 하니 일을 쉴 수는 없고 그때부터 주로 퇴근 이후 혼자 책이나 영화를 붙들고 살았다. 혼술도, 요리도 그 이후 참 많이 늘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로부터 도망쳤고 시간이 꽤 흘러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볼 자리가 있었다. 마주 앉은 식사 자리에서 그는 내게 미안했다고 했다. 본인의 과한 욕심이 그르쳤던 많은 것들에 대해 내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지난 몇 년간 무엇이 그렇게 나를 슬프고 화나게 했을까 생각했다. 나는 남들이 의미 지워주는 무엇이 아니라 내가 의미 있다 믿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내 위치는 그의 하수인, 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 헤어지고 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의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니 시간이 흘러 내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의미'라는 것이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삶은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해낼 방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보편적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프로이트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황금률은 없다. 모든 이는 각자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p.57)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한다.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선언에 반박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결국 그의 이야기가 옳았다. 우리는 많은 이들의 지혜를 빌어, 혹은 주변의 현인들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 삶의 지혜를 찾으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처럼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삶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각자가 그것을 고민하고 찾아갈 뿐이다. 그리고 각자가 이루어가는 구원을 가만히 지켜보고 응원할 뿐이다.
비로소 책 제목을 돌아본다. <겸손한 공감> 무슨 뜻인지 모르고 시작한 책이 책을 다 덮고, 도 한참을 책에 대해 생각하고서야 이해되었다. 공감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는 다르며, 너 또한 네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믿음. 신뢰. 그리고 뜨거운 지지.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 공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