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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평점 :
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책을 읽었다. 어느덧 벚꽃이 떨어지고 새잎이 솟아나는 나무와 햇살, 그리고 우리 집 앞마당의 데크는 참 잘 어울린다. 언제 와버린 봄의 한 가운데서 한가로이 사노 요코를 읽는다.
요코의 글을 읽으면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제,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히던, 그렇게 큰일인 것처럼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많은 일들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언젠가 그의 글은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글은 위로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삶의 지혜이자 먼저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선배의 멘토링이다. 물론 그가 여느 자기 계발서처럼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는다.
그는 가만히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이러니까 너무 좋지 않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준다.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나는 늘 그의 지근거리에 앉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따뜻한 볕이 잘 드는 마당에 눕듯이 앉은 의자와 반쯤 마시다 만 커피,
가끔 야채 파는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와 아이들이 왁자지껄 골목을 달려나가는 소리,
옆집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마당으로 나오겠다고 낑낑대는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며 웃다가 그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상 따뜻한 나만의 공간, 이것으로 충분한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마음을 조였나.
장기하가 인터뷰에서 그랬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인생은 그냥 평온했다고. 물론 당시에는 자신도 너무 감당하기 큰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다 그냥 지나 올 법한 일이 있고 그 일들은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닐까 하고.
요코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 그거, 다 일어날 법해서 생긴 일이라고. 지금 당신이 죽을 것 같이 하는 그 고민 중 어떤 선택을 하던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으니, 그저 지금 네게 주어진 삶을 살라고.
책 제목 마냥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게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인지 욕심인지 나는 내 이름이 걸린 일에 대해 허투루 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요코의 충고처럼 모든 것에 마음을 다 내어 주지는 않으려 한다. 까만 밤, 오직 나를 위해 쓸 마음과 시간 정도는 이제 놔두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 대해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읽고 ‘아, 참 좋다’라고 하는 수필은 기본적으로 작위가 아닌, 살면서 그 사람 안에 한 켜 한 켜 쌓여 오던 것들이 마침내 그 사람의 됨됨이의 그릇에서 자연스럽게 넘쳐 니오는 그런 것일 터이다.(p.321)
요코의 글을 읽으며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나도 저렇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책을 읽는 동안 참 많은 것이 정리되고, 또 괜찮아졌다. 사노 요코는 정기적으로 한 번씩 읽어줘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