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 맑스 - 첨단기술 자본주의에서의 투쟁주기와 투쟁순환
닉 다이어-위데포드 지음, 신승철.류현 옮김 / 이후 / 2003년 6월
품절


맑스가 남긴 유산의 특징이 다양성에 있다는 통찰은 독창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없지만, 데리다의 지적은 무척 중요하다. 맑스주의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30쪽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대항하는 포스트모던 맑스주의를 요구한다.-33쪽

가부장제나 인종차별주의의 논리는 자본보다 더 오래 전에 형성됐고, 공리주의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두려움과 증오를 동원하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악의적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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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선험적 목적이 이윤(자본 자신의 확대)인 한, 자본은 여성해방. 인종적 정의. 환경보존 같은 것을 순전히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본다.
-38쪽

이 시기의 여러 사회운동들은 황무지 보존, 여성에 대한 동등한 임금 지급, 탁아소 설립과 운영기금 조성, 여성의 주거환경 개선이나 에이즈 교육 등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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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운동들이 자본의 환원주의적 논리에 대항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운동들이 사회적 선善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던 기업의 성장 우선주의에 대해 다른 사회적 선을 내세우면서 도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39쪽

존 맥머트리는 '자본주의 암세포 단계'라는 은유를 통해서 이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맥머트리는 예전의 자본은 '공산주의의 위협'과 노동운동 때문에 제한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자본의 전지구적 이동이 확립되고 생산 기능과 완전히 분리된 금융투기가 폭발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팽창 국면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체에 침투한 암세포가 전이되는 방식과 비슷하게, 자본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공중의 위생과 생명의 유지를 담당하는 사회 제도들을 잠식하고 있다고 본다. 맥머트리는 자본이 '사회적 면역체계'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데에도 관여한다고 말한다. 환경파괴, 실업, 가난한 사람에게서 부자로 이전되는 소득, 생명보호 기능을 담당하는 공적 형식들의 폐지 등은 자본이 이런 사회적 자본을 성장의 원료로 전용하려는 불길한 징후라는 것이다.-39, 40쪽

맥머트리는 종양과도 같은 자본주의의 성장양식이 갖는 본질적인 문제는 "숙주[지구나 사회]의 면역체계가 사실상 이 종양의 도전과 성장을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에 반응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경우, 전 세계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사회라는 숙주의 감시와 커뮤니케이션체계(즉, 매스커뮤니케이션과 교육체계) 자체가 초국적 자본에 종속되어 있고, 이 체계들이 질병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메시지들을 퍼뜨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40쪽

인류 전체는 진화과정상에서 다소 파국적인 우회(비유하자면 초기 사회주의의 실패)를 거치며, 자신의 완전한 발전이라는 목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현재 인류는 이런 괴물들[초국적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발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아슬아슬하고 공포에 휩싸인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의 출현, 혼란스러운 폭력과 전제적인 약탈에서 벗어난 자유는 멸종된 생물을 되살려내는 유전학적 실험(아니면 생물학적인 발견을 정치적인 발견으로 전환하거나, 사회를 집단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상태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됐다.
-4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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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자유를 느꼈고, 자유인의 실체를 봄.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여성의 성 주체성을 논하다.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지식인이여 비합리성에서 깨어날지어다.

합리적 지식인은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

빨가벗고 몸하나로 뭉치자...너와 내가 하나될 수 없는 이중성과 거짓을 벗어버리자.


상징시학...상징은 무의식을 건드린다. 문학, 신학, 예술에는 상징이라는 코드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유혹...현대인의 허무와 고독..그 처방은?


광마일기...사랑에서 단순해지기

광마잡담...관능적 상상력의 극치..순수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성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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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마광수 문화비평집
마광수 지음 / 새빛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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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마광수 에세이
마광수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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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2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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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1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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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사색 - 재독 철학자 송두율의 분단시대 세상읽기
송두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0월
절판


그 기조는 이스라엘은 남한이고 팔레스타인은 북한이라는 식의 대비를 전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법을 풀어가는 데 있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의 테러 분자들이 위협하기 때문에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중동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네타냐후의 지론에 젊은 정치학자도 맞장구쳤다.그러나 오늘처럼 악화 일로를 걷는 사태는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빚어낸 것이다. 힘에만 의존하면 상대방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쪽

유대인으로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얼마 전에 사망한 철학자 레비나스(E. Levinas)는 "나는 타자의 인질이다"라는 윤리의 원칙만이 타자가 자신을 제약하는 것으로만 보는 정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해결, 또 이제 막 화해의 장이 펼쳐지는 한반도의 평화정책과 통일도 타자가 나와 관계없는 존재-영.독.불어에서는 이 말을 자주 쓰지만(That's none of my business: Es geht mich nichts an; ll n'est 갸두 pour moi)-가 아니라, 상생(相生)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과 철학이 자리잡지 않고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18쪽

어릴 때부터 미국이나 일본 지향적인 교육만 받아온 데다 문화적인 자기 정체성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성장한 탓에 제3세계라는 말만 들어도 '야만', '무지', '가난' 같은 표상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한국 유학생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서구와 같은 '타자'는 내가 지향하고 동일화할 대상이지만, 제3세계는 그야말로 '악한 야만'이기에 배척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지배의 환영(幻影)'속에서만 그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19쪽

북에서는 항상 '남.남 협조'-제3세계만의 상호 협조-를 강조하는 데 비해, 남은 이보다는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고 이들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를 경제와 외교, 사회와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제일차적 과제로 보고 있다. 가난한 나라와 장사해 보아야 별로 생길 것이 없다고 여겨서 그런지 모르나, 그런 자세로 매사에 임하다 보니 너무 많은 문제가 나타나는 것 같다. 비근한 예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당하는 설움과 분노의 기록을 볼 때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이해 없이 세계로 나아가 보아야 느는 것은 갈등과 충돌뿐이다.-19쪽

얼마 전 뉴욕에서 강연이 있어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업을 하고 있는 맨해튼 34번가에 들러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식당 앞에서 노조원들이 구호판을 앞세우고 전단을 뿌리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동행했던 사람에게 물으니, 동포 업주들이 라틴계 불법체류자들을 채용한 뒤 최저 임금마저 주지 않고 부려먹기 때문에 노조의 공격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20쪽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화해의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남북 주민이 어울려 살 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금부터라도 '타자'와 공존하는 삶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헤겔이 '타자'를, 이 '타자'가 지니는 '차이'를 '인정(anerkennung)'하는 원칙으로 내세운 '연대적 직접성으로서의 간주관성(間主觀性)'을 떠올리게 된다. 나와 '타자'가 연대하기 위해서 관점의 차이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관용 없이는 '타자'는 정복과 파괴의 대상으로만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20쪽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의 긴장

문화가 "한 민족의 모든 삶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예술적 양식의 총체성"이라는 니체의 정의는 분명 문화가 지니는 통일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문화 자체의 기능도 분화했을 뿐 아니라 역사적인 정황에 따라, 또 여러 문화 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해 다원화 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통용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이 최초로 하나의 종합을 이룬 상태는 이른바 '고대 문명'-이집트, 그리스, 중국 등- 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종합도 산업화와 더불어 새로운 긴장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221쪽

여러 민족성원이 이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미국, 오랫동안 식민지를 지배한 경험 때문에 타민족과의 공존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이나 프랑스, 이들에 비해 타민족과의 공존을 경험한 시간이 아주 짧거나 굴절된 독일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만 보아도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안고 있는 긴장에서 파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은 분명하며, 이에 따라 '문명충돌'까지 야기되는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독일에서는 '주도문화(主導文化, Leitkultur)'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야기되었다. -221쪽

이는 독일에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도 독일의 주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리아 출신 정치학자 티비(B. TiBi)의 주장에 보수적인 기민당(CDU)이 적극 호응해서 이를 당의 외국인 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데서 파생한 논쟁이었다. 문화의 다양성을 내세우는 '다문화주의'에 대하여 문화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입장은 영미의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민족 이해에서 특히 혈연적.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해 왔고, 한 민족의 가치를 그들의 유일무이한 특성에서 찾는 역사주의적. 낭만주의적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는 아직까지도 당연시하고 있다. -222쪽

단일민족임을 항상 강조해 온 우리의 문화 이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문화가 지니는 다양한 속성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남아 출신 노동자, 심지어 같은 민족성원이라는 조선족에 대한 비인간적인 태도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222쪽

'타자'에 대한 이러한 무지와 경멸이 '우리 안의 파시즘'의 한 모습을 드러내주는 것임은 틀림없으나, '타자'라고 하더라도 가령 미국이나 서구 또는 일본은 대부분의 경우 분명히 달리 대접받고 있다. 이들은 멸시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무조건 따라 배워야 할 선망의 대상인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무지와 자기 중심적인 문화가 낳은 '우리 안의 파시즘'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비화와 자기 상실을 끝없이 재생산해 온 '우리 안의 사대주의'도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이기는 마찬가지다.
-222쪽

루소(J. J. Rousseau)는 언어의 기원과 관련하여 "인간을 연구하려면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인간 자체를 연구하려면 시야를 먼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자신과의 '분리(detachment)'가 인류학의 진정한 출발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분리' 속에서 등장하는 '타자'는 구별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내 속에 완전히 용해된 것도 아니고, 구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나와 완전히 격리된 것도 아닌, 상호 연계된 긴장의 구조 속에 있다고 메를로 퐁티(Merleau-Ponty)는 보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같음[同]'은 '다름[異]'이 있어야 드러나고 다름은 같음이 있을 때 드러난다는 원효(元曉)의 <금강삼매경론>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223쪽

민족문화의 통일성과 다원성 사이에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같음 속에 다름이 있고 다름 속에 같음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 없이는 우리가 종종 보편적이라고 느끼는 문화나 예술-대개 뉴욕이나 파리, 도쿄에서 시작된-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고 믿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그러한 문화나 예술을 애당초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애써 폄하하려는 태도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223쪽

그러한 긴장을 예술이라는 범주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전달한 사람으로 우리는 먼저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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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살리기
강준만.남승희 지음 / 중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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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선생님께서는 대학이라는 제도의 긍정성은 반드시 자유를 확보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하셨는데요. 요즘처럼 전 지구적으로 정보화의 물결이 상당히 거세어져서 대학이나 지식층이 지식을 독점한다고 보기가 어렵고 지식이 민주화 혹은 대중화되고 있는 때에도 역시 그럴까요? 어쩌면 대학보다는 인터넷이 더 자유로운 학문과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마: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대학이라는 건 자유를 기초로 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봐요. 정보화니 인터넷이니 하지만 그게 대학을 다 대체할 수는 없는 거예요. 대학은 사상의 다양한 전시장이 되어야 해요. 여기에서부터 대학의 힘이 나오는 것이고 사회적인 효용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무래도 고유의 종교를 표방하는 대학은 문제가 있는 거죠. 그 외에도 일종의 문화 독재랄까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경향이 심한데, 그러다 보니 서구에서 대학이 하고 있는 역할에 많이 못 미치죠.-39쪽

남: 총장과 학장을 제외한 보직 교수를 없애자는 주장도 하셨죠?

마: 그래요. 교수들은 너무 쓸데없는 잡무가 많아요. 이건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진데, 쓸데없는 잡무를 보느라고 자기 계발을 할 시간도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여력도 빼앗기는 거죠. 그리고 학교 행정을 보면서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고, 그 결과 정치 싸움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차단하자는 거예요.
-40쪽

남: 저는 어쩌면 대학이나 지식인 집단보다는 기업이 더 진보적이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기업은 조금만 잘못해도 망하기 때문에 정치 과잉이나 기타 악습을 쇄신하려는 압박을 받고,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만, 대학은 안 그렇잖아요. 쉽게 안 망하니까 썩은 게 잘 청소되지 않고, 변하기가 힘들죠.

마: 힘들죠.하지만 요즘엔 위기 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뻣뻣하게 고개 들고 고상한 척하기보다는 좀더 실리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을 개척해야 되죠. 교육의 질을 높여야 되고, 학생들의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게 장을 만들어 줘야 돼요.-41쪽

남: 선생님께서는 자유주의 교육 이념을 주장하셨죠?

마: 그렇죠. 내가 늘 얘기한 건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자율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자유를 향유하는 법을 알아야 거기서 책임감도 생기고 개성도 생기고 창의력도 길러지는 거죠. 과도기의 부분적인 혼란이 겁난다고 해서 계속 통제 위주로 가면 교육은 제 기능을 못하고 문제는 더 악화되기만 할 거라고 봐요. 교수한테도 자꾸만 엄숙주의를 강요하면서 속박하는 게 문제예요. 교수 체면에 뭘 하면 안 되고, 뭘 해야 되고, 그런 거에 자기를 움츠리다 보면 자유롭게 열린 사고를 할 수가 없어요.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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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품절


이중적 성의식


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진리라고 믿는다. 신약성서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적혀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약간 변형시켜 "자유가 너희로 하여금 진리를 발견케 하리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는 이중적인 구조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겉 다르고 속 다른' 식으로 꾸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보수적 윤리를 부르짖으면서도 속으로는 개방적 윤리를 선망하고, 낮에는 도덕군자처럼 처세하면서도 밤만 되면 야수로 돌변한다. 모든 것이 '도덕적 보신주의(保身主義)' 때문이다.
-56쪽

나는 지금까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 특히 의식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이중적인 성의식(性意識)이 그 원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수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성의식에 의해 자유의지가 억압된 사람은 필경 이중인격자가 되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은 자기변명을 위해 끊임없이 위선적인 행동으로만 치닫게 된다.

'성해방'이 실제적으로 실현될 날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 준비단계로 '성의식의 해방'을 이룩해야만 한다. 성에 대한 일체의 생각이 쓸데없는 '죄의식'과 결부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57쪽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위선적인 보수윤리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는 사실을 나는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점차로 기운이 빠지고 체념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안주(安住)하며 실속이나 차리자는 생각이 나를 유혹한다. 왜 자꾸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가 하면, 음으로 양으로 내게 가해오는 압박이 드세기 때문이다.

얼마 전(1991년 9월)에도 나는 또 한차례 마음 고통을 겪었다. 나의 최근작인 <즐거운 사라>가 문화부의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해 절판조치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겉보기엔 이른바 '야한 문학'이 상당히 개방돼 있는 풍토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유독 얼굴이 팔린 작가라서 그런지, 당국은 작년(1990)의 <광마일기>에 이어 또 한 번 골탕을 먹인 것이었다.
-57쪽

사실 요즘 우리나라 문단은 '포스트모더니즘' 선풍이 불어 야한 소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가 처음 그런 종류의 책을 냈을 때는 욕만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슬금슬금 그런 쪽의 문화에 추파를 던짖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그들이 다른 점은, 그들은 세기말적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야한 표현을 한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외국작가들의 성문학 작품들도 많이 소개가 되어 일반인에게 읽혀지고 있다. -57쪽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자꾸 나를 들볶아대는 것일까?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내 직업이 '교수'이기 때문인 것 같다. 교수는 무조건 보수적 도덕군자여야 한다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몇몇 '목소리 큰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치를 떨며 분(憤)해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진정한 교수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슬슬 주변의 눈치나 살피며 도덕적 권위주의를 자신의 처세술로 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는, 교수든 교사든 학생 앞에 진심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겉껍데기만의 윤리적 허세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교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지식인들이 스스로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사석에서는 본심을 드러내다가도 공석에서 말할 때는 본심의 90퍼센트를 감추고 뻔한 설교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58쪽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실망하고 있는 이유도 그들이 일구이언을 남발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처신 역시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민주화를 떠든다 한들 무엇하겠는가?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의사표명이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계속 위선적 권위주의와 독재 이데올로기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검열제도를 철폐했고 모든 것을 자유로운 시장원리에 맡겨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광수식의 계몽주의와 플라톤식의 엄격주의를 버려야만 한다. 누르면 누를수록 스프링의 반동력은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억압하고 단속할수록 민중들의 일탈욕구는 더 거세지기 마련인 것이다. 속담에도 있듯이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는 이치를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음성적인 퇴폐와 음성적인 호기심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58쪽

스웨덴에서는 성적 표현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없애고 나서부터 성범죄가 더 줄어들었고 에로티시즘 예술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기상조다"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라. 어린 학생들도 이젠 알 것은 다 안다. 정 보수윤리의 사회로 돌아가고 싶거든 텔레비전도 없애고 영화관도 다 폐쇄시켜 버려라.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겉으로만 '단속'을 펴며 '눈 가리고 아옹'식의 문화정책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이다.

나는 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무슨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비판'을 받을지언정 강제적 '규제'를 받지는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나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 (1991.1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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