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품절


이중적 성의식


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진리라고 믿는다. 신약성서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적혀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약간 변형시켜 "자유가 너희로 하여금 진리를 발견케 하리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는 이중적인 구조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겉 다르고 속 다른' 식으로 꾸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보수적 윤리를 부르짖으면서도 속으로는 개방적 윤리를 선망하고, 낮에는 도덕군자처럼 처세하면서도 밤만 되면 야수로 돌변한다. 모든 것이 '도덕적 보신주의(保身主義)' 때문이다.
-56쪽

나는 지금까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 특히 의식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이중적인 성의식(性意識)이 그 원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수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성의식에 의해 자유의지가 억압된 사람은 필경 이중인격자가 되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은 자기변명을 위해 끊임없이 위선적인 행동으로만 치닫게 된다.

'성해방'이 실제적으로 실현될 날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 준비단계로 '성의식의 해방'을 이룩해야만 한다. 성에 대한 일체의 생각이 쓸데없는 '죄의식'과 결부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57쪽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위선적인 보수윤리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는 사실을 나는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점차로 기운이 빠지고 체념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안주(安住)하며 실속이나 차리자는 생각이 나를 유혹한다. 왜 자꾸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가 하면, 음으로 양으로 내게 가해오는 압박이 드세기 때문이다.

얼마 전(1991년 9월)에도 나는 또 한차례 마음 고통을 겪었다. 나의 최근작인 <즐거운 사라>가 문화부의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해 절판조치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겉보기엔 이른바 '야한 문학'이 상당히 개방돼 있는 풍토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유독 얼굴이 팔린 작가라서 그런지, 당국은 작년(1990)의 <광마일기>에 이어 또 한 번 골탕을 먹인 것이었다.
-57쪽

사실 요즘 우리나라 문단은 '포스트모더니즘' 선풍이 불어 야한 소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가 처음 그런 종류의 책을 냈을 때는 욕만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슬금슬금 그런 쪽의 문화에 추파를 던짖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그들이 다른 점은, 그들은 세기말적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야한 표현을 한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외국작가들의 성문학 작품들도 많이 소개가 되어 일반인에게 읽혀지고 있다. -57쪽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자꾸 나를 들볶아대는 것일까?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내 직업이 '교수'이기 때문인 것 같다. 교수는 무조건 보수적 도덕군자여야 한다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몇몇 '목소리 큰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치를 떨며 분(憤)해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진정한 교수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슬슬 주변의 눈치나 살피며 도덕적 권위주의를 자신의 처세술로 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는, 교수든 교사든 학생 앞에 진심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겉껍데기만의 윤리적 허세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교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지식인들이 스스로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사석에서는 본심을 드러내다가도 공석에서 말할 때는 본심의 90퍼센트를 감추고 뻔한 설교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58쪽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실망하고 있는 이유도 그들이 일구이언을 남발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처신 역시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민주화를 떠든다 한들 무엇하겠는가?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의사표명이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계속 위선적 권위주의와 독재 이데올로기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검열제도를 철폐했고 모든 것을 자유로운 시장원리에 맡겨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광수식의 계몽주의와 플라톤식의 엄격주의를 버려야만 한다. 누르면 누를수록 스프링의 반동력은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억압하고 단속할수록 민중들의 일탈욕구는 더 거세지기 마련인 것이다. 속담에도 있듯이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는 이치를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음성적인 퇴폐와 음성적인 호기심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58쪽

스웨덴에서는 성적 표현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없애고 나서부터 성범죄가 더 줄어들었고 에로티시즘 예술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기상조다"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라. 어린 학생들도 이젠 알 것은 다 안다. 정 보수윤리의 사회로 돌아가고 싶거든 텔레비전도 없애고 영화관도 다 폐쇄시켜 버려라.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겉으로만 '단속'을 펴며 '눈 가리고 아옹'식의 문화정책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이다.

나는 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무슨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비판'을 받을지언정 강제적 '규제'를 받지는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나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 (1991.1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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