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완벽한 2개국어 사용자의 죽음
토마 귄지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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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이말부터 해야겠다. 이번에도 인간의 실존 문제였단 말인가..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일본의 카프카'라 불리는 '아베 고보'의 대표작인 얼굴을 잃고 가면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타인의 얼굴>과 모래 구덩이속에 갇히며 한정된 공간속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모래의 여자>까지 읽고나서.. 접하게된 벨기에 소설이자 젊은 작가 '앙팡 테리블' 토마 귄지그의 첫 장편소설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

사실 다 읽고 나서 마지막 뜬금없는 결말에 허탈해하며 도대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냈다. 더군다 저 긴 제목이 주는 의미는 아직도 내 머리를 헛갈리게 하고 있는데.. 분명 여기 주인공은 분명 2개 국어 사용자도 아니고 그런 2개 국어 사용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저런 제목을 지은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누가 죽었다는 것인지.. 저 제목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일까.. 간단히 내용을 소개해 보면 이렇다.

우선, 여기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화자로써 '나'로 대신하며 전면에 나선다. 그러면서 시대는 1970년대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세계는 어찌보면 가상의 세계로 전쟁으로 쇼를 하고 폭력과 자본이 결합돼 사람을 현혹시키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 '나'는 그 세계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즉물적으로 합세하며 삶을 영위하려 한다. 먼저, 그는 초반부터 뜻하지 않게 아니 배고픔에 살인 청탁을 받아 어느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면서 살인 청탁을 사주한 사람과 의기투합하게 되고 그의 주변 인물들과 관계 설정이 블랙 유머스럽게 펼쳐진다. 그런데, 주변 인물들이 좀 독특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는게 어찌보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이 아닌 각각의 주인공으로 나름의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꼬여만간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건에 휘말리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등.. 불행의 연속이다. 바로 화자인 '나'가 그런 케이스로 또 다시 살인 청탁을 받아 전쟁쇼를 감행하는 미디어에 경호 군인으로 잠입해서 인기 상승중인 인기 여가수 '카롤린'을 죽여야 하는 상황.. 참 어이없지만 그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처음 그를 배고픔에서 구해주며 청탁 살해를 지시한 '모크타르' 형님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의 여동생 '수지'는 이미 매춘등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고.. 이렇게 중반이후 그 거대 미디어가 주관하는 전쟁쇼에 이들이 경호 군인으로 참관하며 티브이 쇼처럼 중계되는 전쟁과 시청률 쟁탈을 위해 벌이는 가짜 전투까지 펼져지며 우리시대 미디어의 헛된 욕망을 바로 투영시켜 그렸다.

결국, 주인공 '나'는 자신의 임무대로 인기 여가수 '카롤린'을 죽였을까.. 아니면 그녀와 함께 꿈같은 사랑을 했을까.. 또 '나'를 위시한 주변 인물들은 미디어가 주관한 세계에서 어떻게들 살아남았을까.. 궁금하지만 읽을 독자분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렇게 소설은 앞 표지의 그림처럼 어느 군주가 M16 소총을 들고 있듯이 미디어가 주관하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 내몰린 한 인간의 생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묵직하면서 진중하게 전달하는게 아니라.. 잊을만하면 육두문자를 써가며 자조 섞인 조롱과 해학, 때로는 우수에 찬 블랙 유머를 남발하며 읽은이로 하여금 웃음의 또다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70년생 젊은 작가 '귄지그식'의 입담이 한 몫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블랙 유머만이 점철된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진중한 맛을 뿌리며 특히 중반 이후에는 주인공 '나'가 전쟁쇼를 수행하는 중에 폭발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에서 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때부터 바로 '나'의 의식 세계를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의식의 저편으로 그의 문제의식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문제 의식의 이야기 속에는 화자 '나'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도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목말라 하지만 그런 사랑은 어찌보면 자기도취적 발호의 허울일뿐 주고 베푸는 사랑이 아닌 어찌보면 상품화된 사랑에 놓인 존재들로서 바로 여기 미디어로 전쟁 쇼를 하듯이 양태는 같아 보인다.

암튼, 읽는 내내 스피드하고 블랙 유머스런 내용에 코웃음을 치며 재밌게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는데 중반 이후에는 초반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급우울함이 암습해져오고.. 결국 '나'라는 인물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제목처럼 두 언어, 두 문화, 미디어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 두 진지에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회색인간'의 자화상으로서..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소속당해져 사는 아무런 인식과 희망도 없이.. 그런 저런 인간으로서 반항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방어만이 있을뿐.. 오직 흐릿한 기억만을 간직한채 살아가는 이방인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마치 어찌보면 세상을 관조하듯 보이지만 그만의 삶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괜찮아. 심각할 것 전혀 없어. 그래, 별거 아니야."

결국, 이 책 제목의 키포인트인 '2개 국어 사용자'는 아마도 위의 해석처럼 독특한 인간 실존 문제 특히 어디에도 속하지못한 자조적인 '회색인간'의 자화상을 그려낸 이야기라 본다. 하지만 제목 자체가 아직도 주는 그 의문스러움은 여러가지 함축성과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며.. 그것은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로 인도하는 작가의 역량이자 교묘하게 덫을 놓은 장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서평에는 답이 없듯이 나중에 읽어 보실 분들에게 이 책을 감히 권하며.. 

여기 주인공 화자인 '나'가 추구했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자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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