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을 불러일으키려면 복수보다 더 고귀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 P89

사람과 마친가지로, 당신이 그들을 박해하면 그들은 박해받는 자들이 하는 행동을 한다. - P92

열두 시간 중에서 일한 시간은 여섯 시간이었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고 창밖을 내다보고 암흑 속에서 햇빛이나 달빛의 미광을 찾으며 날씨로부터 달아나는 데 쓴 시간이 보고서를 채점한 시간과 맞먹었다. - P101

감각 능력이 있고 단명하는 동물이 다 그렇듯 여우는 자신의 시간을 세세하게 헤아렸다. - P109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 P110

내가 가장 뿌듯해하는 업적은 살아남았다는 것, 말 그대로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의 말 한마디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내게 말을 한 것 자체가 인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을 갖고 싶지 않았다. 네가 자식을 가질지 알고 싶지 않다. 네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는 조금 있다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소식은, 네가 인생에서 뭐라도 이루게 된다면 적어도 내게 감사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내가 열두 살 때였다. - P116

그러자 파리도 소리도 냄새도 움직임도 사라졌다. 두 개의 호박색 눈뿐. 무언가 찰칵했다. 나는 그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머릿속에 보관했다. 그 뒤로는 내가 원할 때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여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이미지가 나타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눈은 아름답고 젖어 있었으며 놀랍도록 볼록했다. - P125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어린 왕자가 했던 것처럼 말이야. 뒤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면 안 돼.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은 그가 어린 동시에 늙었기 때문이요, 그에게 그럴싸한 배경 설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탓할 과거지사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모든 것은 미래의 일이었다. - P140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함께하는 행위 자체였다. 새들은 종이 다른데도 끼리끼리 모이지 않고 다 함께 앉았다. 인간이 보노보와 오랑우탄과 나란히 피크닉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는 자신의 종하고만 어울리고 싶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새들은 왜 안 그러는지 궁금했다. 우리 인간은 종 범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속 범주에 대해선 진심이다. 우리는 이엉개미가 진딧물을 지키듯 사람속 명칭을 애지중지 지키며,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짝짓기를 하고 (생식 능력이 있는) 자식을 낳았음을 알면서도 네안데르텔인을 우리 속에 선뜻 넣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새들에게는 계통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 P148

그들이 같은 떨기나무에 모여 있는 것은 인위적 장벽을 사이에 두고서는 공동체를 설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54

다른 개체의 잔혹한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관찰할 수 있으면 자신의 자아상이 높아지리라거나, 자신이 더 박식하거나 과학적이거나 남성적으로 보이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 P174

우리는 레인저로 일하는 동안 야생동물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한 정책 때문에 수많은 야생동물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내가 작게나마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서 이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 P174

하지만 도시에서 사는 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나는 머릿속에는 그려지지만 손에는 닿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갔으며, 목표에 도달하면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손에 닿는 것은 너무 가깝게 느껴졌고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어느 황무지의 아고산대 능선에 홀로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 P179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어류학 박사 학위를 가진 남자의 감독하에 수산생물학 석사 학위를 가진 남자가 실제 마릿수를 세는 동안 학부생이 숫자를 기록하도록 하려고 동물을 죽인 것이었다. 나는 비참하고 땀에 젖고 격분한 채 서 있었고 그는 양복 차림에 편안하고 서늘하게 앉아 있었다. 당신도 이런 상황이 친숙할 것이다. 누구나 흙 묻은 사람, 서 있는 사람, 머리를 빗지 않은 사람이 더 무식한 쪽이라고 지레짐작한다. - P181

내가 레이니어산에서 레인저로 일할 즈음 사람들은 더는 잔혹함을 무분별한 행위로 해석하지 않았다. 우리가 야생동물의 고통을 방관한 것은 가난하고 무지한 양치기여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방관한 것은 부유하고 대학을 나왔고 화이트칼라여서였다. 짐승의 고통을 방관하면서 우리는 구정물을 뒤집어썼지만, 이것은 사실 우리가 바란 것이었다. 그래야 세상의 잔혹함을 아는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생동물이 고통받고 죽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짧은 주둥이를 이러저리 놀렸다. 우리는 "자연은 잔혹하다"라고 말하고는 이 깨달음의 짐을 짊어지는 일이 우리의 나약한 영혼을 강하게 해주는 척했다. - P182

인간들을 보라. 극장이라는 우리 안에 모여 있을 때 화재 경보가 울리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 채 출구로 우르르 몰려가 서로 짓밟고 밀치며 남들을 참혹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지금 우리 눈앞에서 기묘하게 식겁한 고래들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지상에서 살고 있는 짐승이 아무리 어리석은 짓을 해도, 인간의 발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모비딕>, 87장 "무적함대" - P211

나의 생물학 박사 학위에 걸맞아 보이고 꾸준한 급여와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직업은 모두 육지판 이슈메일의 삶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정서적 안정감을 선사하는 야생의 외딴 지역에서 사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언제나 위험투성이에다 결코 내가 어우러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내가 아는 세상을 버려야 했다. - P229

여우가 죽은 것을 알고서, 어둠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펄럭거리는 가죽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당신에게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 여우를 잃는 것이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여우를 잃은 것이 아니므로. 그는 내 것이 아니었다. - P231

내가 이 깨달음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여기 있었음을 애초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누구도 내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 터였다. 동물은 죽게 마련이야! 죽음은 필연적이야! 자연은 잔혹하다고! 내게 이렇게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고마웠다. - P232

내가 계피를 암여우로 지목한 것은 그녀가 수컷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을 피하는 것은 분명한 암컷의 특질이었다. 암여우는 단순히 호기심을 달래거나 지루함을 떨치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드물다. 하긴 암여우들이 사람을 따르면 무리가 감소하여 멸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P250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로 연구 대상이라면 여우 한 마리는 나머지 모든 여우와 마찬가지일 테니까. - P252

쌍안경으로도 여우를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지자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그가 굴에 가는 내내 춤추는 광경을 상상했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여우 한 마리는 나머지 모든 여우와 마찬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 P253

여우굴 높이에서는 그와 내가 거의 같은 전망을 보았지만 그가 내 오두막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바위 위에서 폴짝 뛰지 않으면 대부분 풀뿐이었다. 여우와 내가 함께 산책하고 독서하면서 보낸 시간 내나 우리는 같은 연극의 배우였지만 서로 다른 무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 P270

하나만 예로 들자면, 주둥이가 튀어나오지 않은 평평한 얼굴은 고양이를 귀여워 보이게 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불공평한 이점을 선사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희생자의 목을 물어뜯으면서 두개골의 힘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는 반면에 여우는 주둥이가 길어서 악력이 넓은 면적에 분산된다. 악력의 크기는 힘 나누기 면적과 같다. 고양이가 악력이 더 센 이유는 힘이 분산되는 면적이 더 좁기 때문이다. 대자연은 고양이와 여우가 싸울 때 고양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 P276

나는 사실들을 수집할 필요가 없었다. 생물학 연구자였으니까. 쇳조각이 자석에 달라붙듯 내가 근처에 있으면 사실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그러면 나는 저절로 달라붙는 사실들의 쓰임새를 물색한다. - P280

여우는 행동과 시선으로, 언어 없이 맥락만으로 소통했다. - P301

몸짓, 행동, 표정은 말보다 덜 정확할지는 몰라도 한꺼번에 구사하면 더 신뢰할 만한 소통 수단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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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편보다 두 배나 많은 지력을 가졌지만 남편의 눈을 통하여 사물들을 보아야만 했다 - 결혼 생활이 가져오는 비극 중의 하나였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졌지만 그녀는 언제나 리처드를 인용해야만 했다 - P106

사람에게는 어떤 존엄함이 있었다. 외톨이로서의 고독,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큰 간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은 존중해야 한다고, 남편이 문을 여는 것을 바라보면서, 클러리서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그것과 갈라설 수가 없었다. 혹은 남편의 의지를 거역하고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자신의 독립성이든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든지 - 무엇이든지 여하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 - 를 잃지 않고는 말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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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해 보이는 어마어마한 문제가 닥치면 그 키메라들 중 하나를 불러내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운이 좋으면 근심을 몰아내어 생긴 빈자리를 창의적이고 현실적이고 교훈적인 새 아이디어로 채울 수 있었다. 대개는 그렇게 운이 좋진 못했지만, 이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끄집어내는 습관 덕에 그것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돈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건강 문제도 겪었다. 건강보험도 없는데 사랑니가 썩고 양성 종양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오래 산다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입은 손해보다 나의 삶터이자 일터이던 오지의 이미지들로 인한 유익이 더 클 거라 생각했다. - P52

부끄러움도 모른 채, 나는 나를 참아주는 모든 동물에게 끌렸다. - P61

"우리가 어떤 것 하나만을 골라내려 할 때, 그것이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과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금언들 덕에 뮤어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환경 보호 운동가로 우뚝 섰다.
나는 어떨까? 나는 누구와 밀접하게 얽혀 있을까? 아무와도.
서글프진 않았다. 단지 궁금했을 뿐. 나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부터 혼자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까지도 혼자인 모습이 보였다. - P63

나는 늘 외톨이였지만 외롭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고 무언가와 동질감을 느끼고 싶긴했다. 땅에 매이고 싶었지만 땅은 나의 애정에 보답하지 않았다. 내가 알게 된 바로는, 땅은 애완동물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당신이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사랑해주지 않는다. 나는 공간과 암석과 흙과 개울을 산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맞닥뜨린 것은 환영받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하며 텃세를 부리는 짐승들이었다. - P65

상자에 갇히지 않은 동물에게 삶은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들이 마주한 미래는 알 수 없는 미래였다. - P80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의해 휘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 P81

땅을 소유하는 데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길 하나를 낼 때마다, 잡초 한 포기를 뽑을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마다 수억 가지 결과가 생겨난다. 대자연에게 봉토를 하사받은 대봉건지주는 자신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홧김에 숲을 밀어버릴 수는 없다. 밭쥐숲도 예외가 아니다. 밭쥐들이 끼친 피해는 엎지른 물이었다. 숲을 없앤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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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은 그저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뿐이다. 하루 먹을 빵을 구했다면, 나머지 시간은 노는 게 좋다. 살아남기 위해 의무를 다했다면, 이제 삶에서 더 중요한 무엇인가에 눈길을 돌려야만 한다. 은행 잔고에 신경 쓰면서 살았다면, 이제는 몸과 마음에 신경을 써라.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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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누구나 특별한 동시에 평범하다. 나에게 각별한 얼굴이 다른이에게는 범상할 수 있고, 반대로 내게 무관심한 얼굴이 누군가에게는 비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을 담은 작품은 역설적이면서도 자명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킨다. 일반적인 것이 특수할 수 있고, 특수한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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