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젊은이들이 종종 내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삶과 글쓰기는 아주 간단할 때가 있다. 어떤 꿈 하나가 어떤 기억 하나를 되돌리면,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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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호러가 유행하던 시절에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
소설로 한정되는 경우는 별개이지만, 이것저것 생각해본 결과 성경이라고 대답했다.
불전이나 탈무드 등은 표현이 모호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언정 비교적 일관성이 있는 데다 축적된 생활인의 지혜가 느껴지는데, 성경에서는 그런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많은 데 비해 하려는 말은 불명확하고 일관성이 결여되었다. 장치는 많은데 그에 대한 설명은 적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깊이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모순을 내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경을 읽다 보면 ‘신의 변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느 날 변덕이 나 문득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끼적인 낙서를 툭 던져주고서는 인간에게 관심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느껴지는 만큼 그 맥락 없음, 부조리함이 더욱 무섭다. - P73

쓰치다 히데오 왈, 각본을 쓰는 것은 땅속에 묻힌 것을 파내는 일과 비슷하다. 그곳에 뭔가가 묻혀 있다는 것은 안다. 끄트머리는 보인다. 파다 보면 무늬가 있다든지 돌기가 있다든지 한다. 그러나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끝까지 파봐야 안다. 아는 것은 좌우지간 뭔가가 묻혀있다는 사실, 자기가 그것을 파낼 수 있다는 것, 단지 그 뿐이다. - P97

컴퓨터로 입력하는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남의 일 같다. 처음부터 활자로 읽으니 디오라마를 조감하는 듯한 거리감이 있다. 어떤 일이건 직접 보고 온 것처럼 거짓말할 수 있고, 전원을 끄면 잊어버릴 수 있다. 워드프로세서가 없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으리라고 하는 사람을 몇 명 아는데,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워드프로세서는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쓴다는 행위의 떳떳치 못함, 꼴사나움에 대한 저항을 상당히 경감시켜준다. 그러나 손으로 쓰는 경우,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다 보면 그 세계는 현실과 생생하게 연결된다. 낙인처럼 현실에 뚜렷이 찍혀 지울 수 없다. 아득히 먼 옛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된 감정(떳떳치 못함과 창피함과 뒤죽박죽된 자존심)이 몸싸움을 벌이는데, 그래도 역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체념한다. 컴퓨터로는 쓸 수 있는 문장도 손으로 쓰려면 왠지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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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은 시적이고 서정적인 형태와 생생한 색상으로, 당시의 어두운 시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미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별과 우주의 세계에서 타락하지 않은 순수의 힘, 모든 인간의 불행과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동력과 삶의 환희를 발견하려 했다. 다시 말해 별자리 시리즈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에서 탈출하려는 한 예술가의 시도였던 것이다. 별과 밤에 의존해 현실의 고통과 공포를 잊으려 했다는 점에서 앞선 예술가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힘겨운 삶에서 밤하늘의 별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깊은 위로와 위안이 되는지도 모른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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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틀림없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울부짖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유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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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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