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가 살아남는다 - 생각을 넘어 행동을 바꾸는 스토리텔링 설계법
마크 에드워즈 지음, 최윤영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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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에는 공통된 공식이 있다. 그런 이야기 공식을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의 모델로 활용할 수 있을까. 저널리스트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마크 에드워즈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현장에 '멋진 스토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스토리텔링 구조가 매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이야기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의 리듬과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활용해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이것이 이른바 'SUPERB(슈퍼브)'라고 명명한 스토리텔링 육단계 설계법이다. 공유 경험(Shared Experience), 최종 혜택(Ultimate Triumph), 문제 정의(Problem Definition), 해법 탐색(Explore Options), 현실 제시(Real Evidence), 균형 잡힌 결론(Best of Both Worlds)으로 구성된 '슈퍼브'는 스토리 구성에도 활용할 수 있지만 비즈니스와 리더십 현장에도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 이메일, 연설문,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를 보면, 관객은 주인공 루크와 강하게 동일시된다. 성공적인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청중이 발표자(연사)와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스토리텔링에서 '공유 경험' 단계가 우선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논리보다는 감정적 반응에 따라 움직인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감정적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 공감대, 즉 청중과의 문제의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스토리에는 명확하게 이해되는 '퀘스트'가 있다. 가령 관객은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가 어떤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목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청중은 발표자에게 동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이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청중의 퀘스트를 분명히 드러내는 '최종 혜택'의 단계가 필요한 이유다. 청중이 이야기의 여정을 통해 얻게 될 성취와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스토리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이 겪는 불편함이나 갈등이 공감의 출발선이 된다. 영화 주인공이 중요한 난관에 봉착하고 이를 극복하기로 다짐하는 것처럼, 청중은 앞으로 어떤 도전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문제 정의' 단계다.

퀘스트를 달성하는 과정은 문제해결 구조를 따라야 한다. 주인공 루크가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것처럼, 청중은 발표자가 이런 도전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이게 '해법 탐색'의 단계다. 몇 가지 대안 탐색, 발표자의 선택지 설명, 발생 가능한 문제 및 해결책 언급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현실 위에서 살아난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비즈니스 현장의 청중에게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포함해 현실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제공해야 한다. 이게 바로 '현실 제시'의 단계다.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사례와 실제 경험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결국 주인공 루크가 승리한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청중이 발표자가 제시한 이점을 이해하고 환영한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여기 두 종류의 청중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흥미진진한 미래에 동기를 부여받는 '전진형 청중'이고, 다른 하나는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문제와 위험을 피함으로써 동기를 부여받는 '회피형 청중'이다. '균형 잡힌 결론'의 단계에서는 전진형과 회피형 두 종류의 청중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성과 감정, 데이터와 서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설득을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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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보는 기술 - 역술가 박성준이 알려주는 사주, 관상, 풍수의 모든 것
박성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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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는 질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선불교의 용어를 빌면, 체구연마(體究鍊磨)가 중요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주명리의 음양학이 누군가에겐 단지 정보나 지식 차원에 머물지만, 체구연마를 거친 내공이 있는 이에게는 인생 과제를 풀어주는 밝은 지혜가 된다. 유명 역술가 박성준이 '운명을 보는 기술'의 개론서를 펴냈다. 사주, 관상, 풍수 세 가지 기술의 기본을 알려주는데, 내용의 비중으로 보자면 사주와 관상이 주고, 풍수는 맛보기 정도다.

저자는 운명을 알려주는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다. 이러한 신호는 말, 태도, 얼굴 표정이나 작은 사고의 전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운(길흉)이 바뀌는 교운기에 그런 신호들이 나타나는 법이다. 《주역》에도 '견미지저'라 했다. '작은 징후를 보고 큰 변화를 안다'는 말이다. 이런 개운의 신호들에 대한 선인들의 통찰력이 '호사다마'나 '과유불급' 같은 성어에 잘 드러나 있다. 호사다마는 '좋은 일이 생기려 하면 마가 낀다'는 말이다. 과유불급은 운명학의 시각에서 보면, 균형과 조화를 잃으면 운이 트이지 않는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사주팔자도 목화토금수 오행의 균형과 조후가 중요하다.

평범한 장삼이사가 생년월일시로 운명을 읽는 사주팔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개운을 위해서다. 그리고 자기실현을 위해서다. 고전 명리서 《적천수》에 따르면, "성명합일, 복록자수"라 했다. "천성과 운명이 하나가 되면 복록이 저절로 따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복록을 까먹는 이들은 어떤 부류일까. 저자는 운이 나쁜 사람들의 공통적인 태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가령 '작은 신호를 무시한다, 탐욕과 오만이 크다, 현실을 외면한다, 자기 인식을 못한다, 분노와 집착이 강하다' 등이다.

사주 명식의 재관(財官)을 보면 이성에 대한 태도와 운도 알 수 있다. 남자는 재(내가 극하는 오행)를 보고, 여자는 관(나를 극하는 오행)을 본다. 재는 남자에게 돈과 여자인데, 남녀 공히 재는 돈과 무언가를 관리하고 마무리하는 능력이다. 관은 여자에게 남자를 의미하고, 남녀 공히 관은 명예와 합리성, 참고 인내하고 견디는 힘이다. 따라서 남자의 지갑을 살펴보면,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지갑이 누추하다는 것은 곧 집이 누추하다는 의미이고 아내에게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돈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다니는 사람은 일단 여자를 우습게 여길 확률이 높다." 정말 예리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여성분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지갑과 돈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한편, 사주에 관이 없는 무관사주의 여자는 '남자가 잘 안 생긴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힘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다.

동양 관상학의 정수를 담은 고전인 《마의상법》은 중국 송나라의 도인 마의도자가 구전한 것을 진단이 정리한 관상서다. 《마의상법》은 상을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눈다. 귀상, 부상, 악상, 빈천상, 고상, 수상, 요상, 위상이다. 좋은 상이 귀상, 부상, 수상, 위상이다. 여기서 눈과 코가 중요한데, 눈은 귀(貴)를 관장하고, 코는 부(富)를 관장한다. 나머지는 피하거나 조심해야 할 상이다. 그중 특히 여섯 가지 천한 상을 '육천상'이라 하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일을 당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자, 나가고 물러서는 것에 밝지 못한 자,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 자기 자랑을 일삼는 자, 아부에 능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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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턱 멍키 - 탐닉의 대가
제임스 해밀턴-패터슨 지음, 박명수 옮김 / 로이트리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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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엄마를 엄청 괴롭히는 족속이 있다. 바로 인류다. '인류세', 그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흉악범이 인간이라는 고소장 이름이다. 인류는 생태 환경을 망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대지를 망치고 바다를 망치고 대기와 하늘을 망치고 있다. 인간의 의식주는 물론, 아끼는 반려동물이나 최신 스마트폰도 지구 엄마의 건강엔 치명적이다. 지구 엄마는 태풍, 홍수, 가뭄, 지진, 화산, 혹서·혹한 등으로 인류세에 따른 자연의 징벌을 내리고 있다. 이런저런 기후변화는 파국적인 재난을 부른다. 최악에는 인간 문명의 붕괴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이렇다 할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다는 데 있다. 환경 위기에 대한 개인과 정부의 모든 대처가 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 엄마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인간의 활동이 실은 새 발의 피보다 못한 셈이다.

그럼 친환경에너지와 같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지구 엄마의 건강과 장수에 과연 도움이 될까. 답은 부정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지구 엄마의 생태 건강에 죄를 짓게 된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적용도 여전히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정열적인 전도사들은 지구 온도의 상승과 빙하의 해빙과 해수면 상승의 위기를 보고도 못 본채 한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일부 정치 엘리트들은 지구온난화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구온난화와 생태 위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환경 위기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한 줌의 노력이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악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사실 인류의 활동 자체가 지구 엄마의 건강엔 파괴적인 것이다. 영국의 환경론자 제임스 해밀턴-패터슨은 애완동물, 정원 가꾸기와 같은 소박한 일상부터 스포츠, 패션, 관광, 헬스와 같은 취미 활동까지 모두 지구 엄마의 건강에 해롭다고 지적한다. 저소비와 미니멀리즘, 무소유 같은 반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지구 엄마의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도 결국은 한계 상황에 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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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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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은 독서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병에 걸렸을 때 무협지를 펼쳐들곤 한다. 거기엔 주인공이 중상을 입고 내상을 치료하는 회복 과정이 꽤 자세히 나오곤 하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같은 이치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독자라면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진 유명 작가나 그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찾아보면 좋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인생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듯이, 혼자 길 잃은 채 절망하고 있는 우울증 여환자라면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미친 여자'의 작품이 바로 본인 이야기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미국의 작가 수잰 스캔런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한 자전적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마음의 고통을 토로하는 자기성찰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지적이고 예민하다. 저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시기가 마침 내가 군복무하던 때와 겹치는 바람에, 군대와 정신병동이라는 대표적인 규율 공간이 갖는 제약과 복속의 의미군에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저자는 뉴욕주립정신의학연구소 5층 병동에서 삼년간 머물렀다.

저자는 프로이트류의 대화나 프로작 같은 향정신성 약품이 아니라 독서와 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읽기와 다시 읽기가 자기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통해 깨닫게 된다. 저자의 우울증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이 크게 작용했는데, 두 소설 모두 모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딸에게 어머니, 어머니에게 딸. 역사의 무게, 역사의 폭력." 그런 식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자기돌봄의 시작이자 의미치료의 유능한 도구다. 저자는 뒤라스, 토니 모리슨, 에이드리언 리치, 에리카 종, 엘리스 워커 같은 마음의 고통에 천착했던 여자 작가들의 작품에 접속하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적인 삶"은 물론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깨닫게 된다. "책들은 나에게 다른 삶을, 더 크고 더 잘 떠받쳐주는 틀을, 삶을 긍정하는 틀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읽기와 쓰기가 나를 성장시키는 자기돌봄의 활동이라고 확신한다. 작가 조앤 디디온은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했는데, 쓰기의 효과는 생각의 정리뿐만이 아니다. 불안, 우울, 상실, 소외, 절망 등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쓰기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서사의 글쓰기는 자기돌봄의 행위이자 자기치료의 회복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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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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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한국에도 드리웠다. 다름아닌 '다사사회'다. 다사사회란 "노인의 증가로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인구가 점차 감소하는 사회 형태"를 말한다. 인구 급감과 더불어 청년 자살, 중장년 고독사, 실버세대 안락사 등의 이슈도 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이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일본의 종교학자 나이토 리에코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생관을 소개한다. '죽음에 대한 백과사전'을 목표로 했다는 저자는, 키르케고르, 니체, 헤겔, 하이데거 같은 철인들의 주저와 사생관을 소개하고, 성경(예수)이나 경전들(석가모니)은 물론, 일부 과학자의 견해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곳곳의 일러스트가 어두운 주제가 주는 정신적 부담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실존주의의 시조' 키르케고르에게서 시작한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자는 항상 신과 속세의 차원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으며, 그 질적 변증법의 결과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철학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기초한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은 '관계'에 전념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란 신의 차원인 무한성(영원한 것)과 속세의 차원인 유한성(시간적인 것)의 관계다. 다시 말해서, 키르케고르의 눈에 비친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우연성과 필연성, 육체와 정신이라는 모순되고 상반된 조건에 놓인 존재다.

대표작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이고, 절망이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배반과 냉담, 이른바 '믿음의 결여'를 뜻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크게 '절망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패턴'과 '의식하면서도 절망에 빠지는 패턴'으로 나누었다. 저자는 이런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신약성서의 〈나사로의 부활〉〈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한계시록〉은 물론, 헤겔의 변증법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고, 심지어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일부 에피소드까지 참조하고 있다.

한편, 키르케고르의 사생관 정반대편에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가 위치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생관은 신자의 부활과 천년왕국 이후 인류가 다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사생관을 과감히 전복시켰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직선적인 시계열에 맞서 원환(둥근 고리) 모델의 사생관인 '영원 회귀'를 강조한다. 영원 회귀는 마치 무간지옥의 세계처럼 완전히 똑같은 인생의 무한반복을 전제로 한다. 니체는 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일신교의 종말과 다신교적 가치관의 부활을 꾀하면서, 신이 아닌 자신의 행동규범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생관을 내세운다. 영원 회귀와 초인을 강조한 니체의 허무주의를 삶에 비관적인 쇼펜하우어의 것과는 달리 '능동적인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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