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를 정하지 마 - 시스템에 반기를 든 로봇
미야세 세르트바루트 지음, 셈 키질투그 그림, 손영인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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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로비는 로봇답지 못한 로봇이다. 다른 로봇이 보기에도 로비는 이상하고 불량해 보였다. 로비에게는 남다른 호기심과 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착한 마음, 어쩐지 코드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다. 늘 호기심에 깨어있는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청소 로봇이 바로 로비다. 호텔 로비를 청소하기에 로비라고 불리지만, 공장에서 막 나왔을 때는 블랙이라고 불렸다. 그렇다, 로비는 외모도 남달랐다. 다른 청소 로봇은 죄다 회색인데, 로비만 실수로 그만 검은색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불필요하게도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있다. 로봇에게 장신구가 가당한 일이던가.

로비는 자기 직무에 충실했지만 타고난 호기심 때문에 호텔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거리를 걷고 공원에도 가고 올리브 나무에 기대어 앉고 싶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우연히 지하실에 있는 발전기 로봇 제나를 알게 되고, 제나는 로비에게 십년에 걸쳐 만든 소중한 목걸이를 선물해 준다. 제나는 로비가 처음 만난 진정한 소울메이트다.

"희망을 잃지 마. 인내심을 가져. 삶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거야. 그런 지그재그 길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야. 네게 남은 수명은 아직 기니까." (50쪽)

제나의 이런 격려로 로비는 해방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로비는 제나의 도움을 받아 정전이 된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로비는 호텔 밖에서 달빛 공원 청소부 파키, 쇼핑 카트 로봇 마키, 남자 아이 볼리, 고물상의 칩수거 로봇인 전갈칩을 알게 되고, 고물상에서 폐기 직전에 놓인 제나와 재회한다. 로비와 로봇 친구들은 볼리네 아빠의 억울한 누명을 해결해주느라 위험한 순간에 빠지기도 하지만 함께 숲으로 도망친다. 거기서 로비는 의적 로빈 후드처럼 숲속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영웅이 된다. 해피 엔딩이다. 후속작이 기대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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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힘 - 나를 바꾸는 5분의 기적
틱낫한 지음, 위소영 옮김 / 소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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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시국이 매우 어수선하다. 국내 정치와 경제가 난장판 수준이다. 불안과 갈등을 조장하고 대립과 분열을 재생산하는 가짜뉴스와 악의적인 거짓말이 판을 친다. 이런 마당에 교양 있는 시민이라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명상과 마음챙김이 비상약이 된 시국이랄까, 아님 상비약이 된 시국이랄까. 그러던 차에 베트남 출신의 선불교 마스터 틱낫한이 소개하는 마음챙김의 글을 접했다. 스님은 《고요의 힘》(소수, 2025)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자기 내면에서 종일 거친 잡음을 일으키는 시끄러운 방송을 끄고 고요와 평온의 시공간을 확보할 것을 강조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고요함과 단순함에서 나오지 소란스러움과 복잡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국 작가 리처드 칼슨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의 평정이 가져다주는 가장 흥미로운 한 가지 측면은 이전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고요함 덕분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음을 평정시키고 나서 나는 더 정직해지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챙김은 마음속 소음과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게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불교 보살로 관세음보살이 있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깊이, 온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는 의미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내면의 고요함을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섯 가지 소리란 삶의 경이로움이 부르는 소리(자연으로부터 오는 아름답고 훌륭한 소리), 세상을 관찰하는 자의 소리(고요의 소리), 브라마의 소리('옴'이라는 초월적 소리), 밀물의 소리(부처님의 목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를 초월한 소리(무상의 소리)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입는 것, 이 모든 게 다 내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한다. 불가에선 네 가지 종류의 음식을 구분한다. 입으로 먹는 음식(단식),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 기관으로 받아들이는 음식(촉식), 마음의 의도로 먹는 음식(의사식), 개인적인 의식과 집단적인 의식(식식)이 그러하다. 내면의 공허함, 고립감, 슬픔, 초초함 같은 부정적인 생각도 우리가 먹는 음식에 해당한다. 이런 것들이 일용할 양식이 되어선 곤란하고 위태롭다. 알아차림 명상을 통해 독소로 가득한 소음과 의식을 거르고 미소, 연민, 자비, 사랑, 친절, 용기 등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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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
김영수 엮음 / 창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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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한비자』는 사상서이자 철학서이자 역사서이자 우화집이다. 인문학자 김영수는 『한비자』를 "오늘날 인간관계의 속성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이해의 틀"로써 바라본다. 기실 현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의 눈으로 보아도, 『한비자』는 여전히 유효한 리더십 계발서이자 사회심리학 교과서다. 또한, '모순', '역린', '식여도', '양약고구', '수주대토'와 같은 우화와 고사성어의 보물창고이기에, 인문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비운의 천재 한비자의 일생을 사마천의 〈노자한비열전〉에 기반해 한비자와 진왕(훗날 진시황)을 중심으로 톺아본다. 진왕은 한비자의 〈고분〉과 〈오두〉 두 편을 읽고선,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비자의 사상에 매혹됐다.

한비자는 전국 말기 약소국 한나라의 왕실 서자 출신으로, 유가 사상을 집대성한 순자 문하에서 이사와 함께 수학했다. 훗날 진나라 재상이 되는 이사는 출세지상주의자였는데, 자기 스스로 한비자보다 못하다고 인정했다. 출세를 위해 이사는 동문인 한비자를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비자의 고향은 오늘날 하남성 서평현 한당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술·세라는 세 범주다. 이런 한비자의 사상에 영향을 준 법가 사상가로는 상앙과 신불해, 신도가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개혁가로 꼽히는 상앙은 법령의 원칙인 법(法)을 중시했고, 저서 『상군서』가 전해진다. 한나라에서 활약한 신불해는 법을 시행하는 방법인 술(術)과 형명을 강조했고, 저서로 『신자』 두 편이 있다. 신도는 신하들을 굴복시키는 세(勢)를 중시했는데, 세는 권세, 위세를 말한다.

저자는 한비자의 법·술·세의 관계를 바퀴 셋 달린 삼륜차(조직, 나라, 백성)의 세 바퀴에 비유한다. 가장 중요한 앞바퀴에 해당하는 것을 '세'로 보고, 뒷바퀴인 '법'과 '술'은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파악한다. 리더가 리더십의 본체인 세를 놓치거나 잃으면 법과 술도 쓸모가 없게 된다는 해석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비자의 다음과 같은 예리한 일침에 눈길이 절로 간다.

"리더가 고집만 세서 화합할 줄 모르고, 바른말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며, 사직을 돌보지 않고, 경솔하게 자신감만 앞세우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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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세계사 365 - 역사책 좀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요나스 구세나에르츠.벤저민 고이배르츠.로랑 포쉐 지음, 정신재 옮김 / 정민미디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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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면 절기와 기념일이 표시되어 있다. 가령 음력 8월 15일 한가위, 10월 9일한글날, 12월 25일 성탄절 등이 예다. 종교 달력이나 문학 달력은 좀더 디테일한 구석이 있다. 일테면 천주교 달력을 보면, 1월 1일은 신정이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평화의 날이기도 하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르게 체감되는 날도 있다. 10월 10일을 예로 들어보자. 10월 10일은 중화권에서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쌍집절'이라 불리는데, 한국에선 소설가 한강이 한국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매우 기념비적인 날이다. 전날인 9일이 마침 한글날이라서 더더욱 기억하기 쉽고 실로 겨레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깐 680년 10월 10일에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카르발라 전투가 있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야지드 1세가 카르발라 전투에서 라이벌인 후세인 이븐 알리를 물리친다. 후세인은 참수당하고, 그의 목은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대사원에 걸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은 또 어떤가. 한국인이라면 1950년 6월 25일 민족상잔의 비극을 모르는 이가 없다. 불과 4일만에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 하지만 세계사 덕후가 아니라면 1530년 6월 25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종교갈등 해결을 위한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소집했다.

세계사를 기록한 달력이 출시된다면 연표 방식이 좋을까 아니면 일력 방식이 좋을까. 내가 보기에 이상적인 편집은 일력과 연표 방식을 서로 혼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짠다면, 국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나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쓸모있는 세계사 365》(정민미디어, 2024)는 365일 일력 방식을 채용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로화의 출범(2002년 1월 1일)부터 파나마 운하의 반환(1999년 12월 31일)까지 다채로운 세계사적 순간들을 들려준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한강 작가의 대표작이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1948년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가 그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에서 학살이 벌어지던 바로 그 날에,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전후 폐허 상태인 유럽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이른바 마셜 플랜에 의거한 대외원조법을 제정했다. 마셜 플랜 홍보 포스터의 한 문구는 "어떠한 난항을 겪더라도 우리는 함께 잘 사는 길을 추구한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제주의 그 날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역사는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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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리사 리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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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삶이 인연의 매듭을 풀어가는 여정이라면, 임종을 앞둔 삶의 마지막 순간은 가장 진한 인연의 매듭을 풀어내는 마지막 기회다. 스웨덴 최북단의 꼬장꼬장한 어르신 보는 끝내 성공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제법 근사한 마지막 작별이다. 나도 유언으로 사랑과 축복의 말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 내 인생을 돌아보는 총평이나 두려움의 토로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말을 마지막 작별의 인사로 대신하고 싶다.

보는 외동아들 한스와의 관계가 늘상 어렵고 서먹했다. 가끔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겪긴 했지만, 늘 행복을 염원하고 사랑을 퍼주고 싶었던 대상이 아들이었다. 다만 표현 방식이 꽤나 서툴었을 뿐이다. 사민당이 아닌 온건당을 지지하는 아들, 반려견 식스텐을 딴 데 보내려는 아들, 난로 장작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아들, 며느리와 이혼한 아들, 임플란트를 권하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여기에는 보의 트라우마도 한몫했다. 정작 보 자신이 '노인'이라고 부르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척 험악하고 냉랭했다. 둘의 틀어진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노인이 건넨 마지막 화해의 제스처를 보가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보에게 상처가 되었고 내면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하지만 보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했고 사랑을 확인했다. 밀린 방학숙제를 다 끝낸 아이처럼 보는 일말의 여한도 없었다. 한스 역시 분명 그러했다. 훗날 한스가 자기 딸 엘리노르에게는 어떤 유언을 건넬지 궁금해진다.

90세를 앞둔 보는 심장과 관절 모두 안 좋은데, 의사의 권유대로 심장약을 먹으면서 류머티즘약은 끊었다. 현재 재택 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다.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가 돌아가며 보를 보살핀다. 잉리드, 요한나, 칼레 등이 청소와 식사, 목욕 등을 맡아가며 보를 보살피고 있고, 보 역시 이들과 잘 지내는 편이다. 허나 꼰대답게 지역 차별이 없진 않다. 프뢰쇤 출신의 젊은 요양보호사를 대놓고 험담한다. 스웨덴의 지역 차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보의 이런 뉘앙스가 다소 생경했다.

하지만 보는 성소수자 차별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보의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 투레가 바로 동성애자다. 아내가 오래 전부터 보와 투레의 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투레와의 우정을 굳건히 지켰다. 보의 하루 일과 중에, 식스텐과의 산책과 투레와의 전화 통화가 그나마 낙이다. 투레는 보보다 먼저 요양보호사가 보살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삼년 전 사랑하는 아내 프레드리카가 브룽쿨라고르덴 요양원으로 떠났다. 치매가 급격히 심해졌기 때문이다. 보는 프레드리카를 사랑하지만 자기가 보살필 여력이 없음을 인정했다. 치매는 인간의 기억을 말소해 온전한 정체성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아내는 남편과 아들을 잊었지만, 보는 아내의 체취를 기억하기 위해 아내의 스카프를 항아리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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