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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이자벨라 바그너 지음, 김정아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평점 :
좌파는 계몽주의의 후예들이다. 계몽이성과 휴머니즘은 좌파의 몸에 새겨진 두 가지 근본 타투다. 우리에게 '액체 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로 잘 알려진, 폴란드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서구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유명한 대중지식인이다. 세계적인 지식인 바우만의 몸에도 이 두 가지 타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액체 현대』나 『리퀴드 러브』란 책으로 바우만의 담론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그의 핵심 담론이 현대성, 포스트모던 윤리, 세계화, 소비주의, 구성주의 등과 맞닿아 있다고 보지, 마르크스 이론이나 역사유물론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바우만의 원초적인 사상적 토대는 공산주의였다.
평전의 저자 이자벨라 바그너는 바우만의 주요 활동기를 크게 '폴란드 시기', '영국 시기', '국제 시기' 세 흐름으로 나눈다. 먼저 폴란드 시기는 명실상부 공산주의 운동가로 활약한 시기였다. 바우만은 정치 장교로 복무하며, 공산주의 정당의 첩보 요원으로도 일했다. 전쟁과 군대를 치열하게 경험한 바우만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영화 「피아니스트」 같은 유대계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같은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이 오버랩된다. 폴란드 공산당이 주도한 극렬한 반유대 캠페인으로 인해 바르샤바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하기 전까지 바우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바우만은 자신의 대학원 은사로 역사유물론을 강의한 율리안 호흐펠트와 사회학 세미나로 유명한 스타니스아프 오소프스키를 언급한 바 있다. 율리안 호흐펠트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교조적인 스탈린주의와는 거리를 둔 수정주의 진영의 거두였다.
1960년대 후반, 바우만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잠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학계의 보스는 이스라엘 최고 명문인 히브리대학교의 사회학과 학과장인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였다. 한국인에게 아이젠슈타트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의 스승이 바로 그 유명한 마르틴 부버다. 문제는 바우만이 강조하는 인본주의 사회학과 아이젠슈타트의 구조 기능주의 접근법이 서로 양립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다. 물론 두 사람은 성격도 연구 스타일도 많이 달랐다.
한편, 영국 시기(1968~2000)는 1971년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던 시기다. 바우만이 지도한 박사반 학생인 키스 테스터의 회고담이 흥미로웠다. 테스터는 박사 과정을 끝낸 뒤에도 지도교수인 바우만과 가까이 지냈고,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가 되었다.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는 경력 동조가 일어나는 3단계 모형인 일치-융합-상징적 공동 연구에 꼭 들어맞았다"고 평한다. 참고로 테스터는 2004년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 사상』을 출간한다.
1989년 이후, 바우만은 리즈대학에서 은퇴한 뒤 폴리티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일련의 대표작들을 출간한다. 가령 『입법자와 해석자』(1989),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1989), 『근대성과 양가감정』(1993)등이 있고, ‘액체’와 '유동'의 은유를 통해 현대 서구 사회의 불확실성과 현대인들의 불안과 공포로 점철된 삶을 깊이 통찰한 『액체현대』(2000)는 바우만을 세계적인 지식인이자 포스트모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한다.
국제 시기(2000~2017)는 세계적인 사상가로 우뚝 선 바우만의 노년기로,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해마다 책을 적어도 한 권을 출간하는데, "내용은 소비주의, 세계화, 근대성, 탈근대성, 두려움, 사랑, 혐오, 반유대주의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