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때마다 한 손을 조끼 안에 넣은 자세를취했는데, 이는 토가를 입은 고대 로마인을 의미하는 포즈였다. - P61
그는 완전한 사회적 보수파가 되었다. 군 장교 나폴레옹은 널리 인정받는 중앙집권 체제로 명령을 위계적으로 내려야 하며 높은 사기와 의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관리와 교육 체제를 위해 질서를 갖추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반항적인 폭도와 비슷한 낌새를 보이는것을 본능적으로 꺼렸다. 그의 이런 성향은 프랑스혁명 과정은 물론 평생토록 변하지 않았다. - P72
1793년 6월 11일 보나파르트 가문은 칼비를 떠나 프로젤리트호에 올랐고 이틀 뒤 툴롱에 도착했다. 코르시카에서 약 275 년간 거주한 가문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코르시카에서 자코뱅파가 몰락하자 살리체 역시 프로방스로 망명해야 했고 6월 말 파올리는 영국 왕 조지 3세를 코르시카의 왕으로 인정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으나 평생 고향을 다시 밟은 것은 1799년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게 전부였다. - P110
어떤 군의 역사를 살펴봐도 1790년대 프랑스처럼 장군의 직위 교체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이는 곧 능력 있는 젊은이가 전례 없는 속도로 직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는 의미다. 정상적인 임명과 은퇴는 물론 공포 정치, 이민, 전쟁, 정치 숙청, 패배이후의 치욕, 정치적 의혹, 희생양 사냥 등의 영향으로 1789년 상등병이던 라자르오슈는 1793년 장군이 되었고 1792년 중위였던 미셸 네는 1796년 장군의 자리에올랐다. - P119
그는 소위 5년 6개월, 중위 1년, 대위 16개월, 소령 3개월을 지냈고 대령은 건너뛰었다. 군 복무 기간 99개월 중(무허가 휴가를 포함해) 58개월이 부재중이었고 실제로 임무를 수행한 기간이 4년도 채 되지 않는 나폴레옹은 1793년 12월 22일 스물네 살의 나이로 장군이 되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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