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 시라토리 겐지의 미술관 관람기.
안내자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인데 그들보다 겐지가 세상을 더 잘 보는 것 같다.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시간 속에 있어서 잡아둘 수 없다는 답에 심장이 쿵.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라는 답변 역시 느낌표를 찍을 수 밖에 없었다.
[415쪽]
아리오:
그럼 좀 추상적인 질문인데,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 경험 속에 있는지, 내 마음속인지.
시라토리:
으음, 내게는 시간이네. 응, 시간 속에 있어.
아리오:
시간 속에서 행복이 흐르는 거야?
시라토리: 응, 시간 속에 있으니까 잡아둘 수는 없어. 그 뒤로는 그 경험을 내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떠올렸을 때 확실한 일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가 문제일까.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든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건전한 바람이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더욱 ㅇㅇ해야한다. ‘나는 노력했으니까 당신도 노력해라.‘ ‘이게상식이다.‘라며 ‘자기만의 지론‘을 타인과 사회 전체에 강요하면 차별과 단절이 일어나고 삶이 괴로워진다. 모든사람은 다르게 마련이고, 달라도 상관없다. 서로 다른 타인, 타인과 다른 자신을 받아들이면 세계에는 ‘무지갯빛 눈‘이더욱 빨리 내릴 것이다. 시라토리 씨는 그걸 깨닫고 무언가 변했어?" "별로 극적으로 바뀐 건 없는데, 점점 시야가 넓어졌어. 사람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시라토리 씨의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에 나는 고후쿠지에서보았던 천수관음상을 떠올렸다. 8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천수관음은 현대에 다음과 같은메시지를 전한다.
두루두루 본다. - P317
피곤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감각만이 유독 예리했고, 마음속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무언가가 태어나려 했다. 표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느낌. 과거도 미래도 전혀 상관없이 ‘지금‘만이 모든 존재가 된다. 내 속에 있는 작은 생물이 전율하고 꿈틀거리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려 한다. 아직 보지 못한 무언가의 온기가 내 속에 있는 터무니없는 동굴을 메워준다. 인간은 이렇게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표현해온 것이구나. 하지만 이 특별한 순간은 곧 끝나버린다. 오래가지 않는다. - P411
아리오: 그럼 좀 추상적인 질문인데,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생각해? 경험 속에 있는지, 내 마음속인지.
시라토리: 으음, 내게는 시간이네. 응, 시간 속에 있어.
아리오: 시간 속에서 행복이 흐르는 거야?
시라토리: 응, 시간 속에 있으니까 잡아둘 수는 없어. 그 뒤로는 그 경험을 내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떠올렸을 때확실한 일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가 문제일까.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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