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태어나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때
청력 이상이 발견 되었다. 그때부터 장애라는 단어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시작 했다. 존재하나 내겐 항상 부재일 것만 같았던 단어였다. 그래서 책을 살필 때마다 눈이 간다.
책에 ‘장애는 사회와 관계 맺으며 생겨난다‘라는 구절에 공감하여 밑줄 긋기한다.

"언제 죽든 결국에는 후회할 것 같거든. 무언가를 성취했으니 만족한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런건 바라지 않아. 그리고 말이야, 과거의 일도 일단 지나가면 점점 기억이 변하거나 사라지잖아? 아까 말했듯이 미래도 알 수 없고. 그 말은 즉 내가 제대로 아는 건 ‘지금밖에 없다는 뜻이야. 그래서 나는 ‘지금‘만으로 충분해. 과거나 미래 같은 게 아니라 오직 ‘지금‘. 그래서 나는 내일 죽어도된다고 생각해." - P101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작품을 보는 행위의 목적은 작품의 이미지를 서로 일치시키는 것이아니다. 그 목적이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을 실마리로 삼으면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하는 것, 모르는 것, 그 전부를 한데 아우르는 ‘대화‘라는 여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 P140
"평소에 생각했는데, 장애라는 건 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생겨나는 거야. 당사자한테는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든 연구자나 행정 기관이 ‘장애인‘을 만들어냈을 뿐인 거야." 그렇지. 애초에 누구도 ‘미확인 민폐 물체‘가 되지 않는 사회가 좋은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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