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3월 로스앨러모스가 완공되자, 100여 명의 과학자, 엔지니어, 그리고 지원 인력이 새로운 공동체로 모여들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는 약1,000명, 1년 후에는 3,500명 이상이 메사 위에서 살고 있었다.
1945년 여름이 되면, 오펜하이머의 연구 단지는 최소한 4,000명의 민간인과 2,000명의 군인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그들은 300여 개의 아파트 빌딩, 52개의 기숙사, 그리고 200개의 트레일러에 살았다.
"기술 구역(TechnicalArea) " 만 해도 플루토늄 정제공장, 주물공장, 도서관, 강당, 그리고 수십 개의 실험실, 창고, 사무실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 P357
라비는 이에 덧붙여 자신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한 보다 깊이 있는 이유를 댔다.
그는 오펜하이머에게 자신은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 "물리학 300년의 정점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 말이었고, 라비는 오펜하이머처럼 철학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비가 이미 원자폭탄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데 비해 오펜하이머에게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친구의 이의 제기를 외면했다. - P360
그는 라비에게
"나 역시 이번 프로젝트가 ‘물리학300년의 정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네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네. 나에게 이것은 전쟁 중에 상당히 중요한 무기를 만드는 일이야. 나치스는 우리에게 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라고 썼다.
오펜하이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치스보다 먼저 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 P360
로스앨러모스는 항상 예외적인 곳이었다. 50세 이상은 거의 없었고, 평균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버니스 브로드는 그의 수기에서 "그곳에는 병약자도, 시댁이나 친정 식구도, 실업자도, 유한계급도,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운전 면허증에는 이름 없이 숫자만 적혀 있었고, 그들의 주소는 단지 사서함 1163번지라고만 되어 있었다. - P429
오펜하이머는 보어가 곁에 있다는 것에 대단히 감사했다. 57세의 덴마크 물리학자는 1943년 9월 29일 코펜하겐에서 몰래 보트를 타고 탈출했다.
스웨덴 해변에 무사히 당도한 그는 스톡홀름으로 보내졌는데, 거기서 독일 요원들이 그를 암살하려 시도했다.
10월 5일, 보어를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 공군이 그를 영국군 모스키토 폭격기 폭탄 발사대에 실었다. 합판으로 만든 비행기가 고도 6,096미터에 도달하자, 조종사는 가죽 헬멧에 붙어 있는 산소마스크를 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보이는 지시 사항을 듣지 못했고 그는 나중에 헬멧이 그의 머리에 비해 너무 작았다고 말했다. 곧 산소부족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무사히 비행을 마쳤고, 스코틀랜드에도착했을 때는, 낮잠을 잘 잤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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