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인물 탐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다.

독후 활동으로 8월 15일 개봉하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감상할 생각이다.

"자신의 의견에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진실을 모색하는 중인 것처럼 말하는"
 보어의 태도에 매료되었다. 
오펜하이머는 나중에 
보어를 "나의 신"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 P104

 "나쁜 철학이 생지옥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네가 위기에 몰렸을 때 나오는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야."  - P152

미국의 상류 사회에서 반유태주의는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고조되고 있었다. 
많은 대학들이 1920년대 초에 
하버드가 유태인 학생의 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세우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에서 
엘리트 법률 회사들과 사교 클럽들은 
인종과 종교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다. - P195

1941년 봄 무렵부터 FBI는 오펜하이머를 
"다른 정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공산주의 사상에 공감하는" 대학 교수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FBI는 그가 "공산당의 위장 단체"로 분류된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집행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곧 오펜하이머에 대한 수사 과일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7,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 P242

하지만 1943년이면 오펜하이머가 노조 조직화 활동에 등을 돌린 지 이미 오래된 상태였다. 그가 태도를 바꾼 것은 정치적 신념이 변했기 때문이아니라, 로런스의 조언에 따르지 않으면 나치스 독일을 무찌르는 데 필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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