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긴 해도 악기 전시실은 슬픈 장소였다. 
바이올린을 보고 있으면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행위처럼 느껴졌다. 
바이올린은 제작되는 동안, 
그리고 바이올린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동안, 
꾸준히, 가까이, 친밀하게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물건이다. 
유리장 안에 갇힌 바이올린들은 
야생동물이 자유를 갈구하듯 인간과의 접촉을 
갈망하는 듯 보였다. - P54

과르네리 가문의 천재는 안드레아의 아들 
주세페 (GiuseppeGruarneri, 1698∼1744)였다. 
1730년 무렵부터 그는 ‘과르네리 델 제수‘
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가 ‘예수의 del Gesu‘라는 별호를 얻게 된 이유는 
자신이 제작한 악기 레이블에 인쇄한 
작은 휘장 때문이었다. 
휘장이 그리스어로 예수를 의미하는 알파벳 줄임말
‘IHS‘ 위에 작은 십자가를 올린 모양이었던 것이다.  - P59

과르네리가 제작한 바이올린은 
그의 생전에는 특별히 인기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초 
이탈리아 비르투오소 니콜로 파가니니가 
주세페 과르네리의 바이올린을 손에 넣으면서 
과르네리 바이올린의 새 시대가 열렸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1800년대 초반 본인이 공연하기로 되어 있던 
리보르노의 극장장으로부터 과르네리델제수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파가니니는 처음부터 이 악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일칸노네l Cannone,
즉 ‘대포‘라는 이름까지 붙이고는 
유럽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며 공연용으로 사용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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