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사업에 종사했지만, 
그저 ‘쿨리‘, 
즉 육체노동자로 공사판에서 일한 이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셰르파들 대다수는 계절적으로 이주했지만 충분히 오래 머물러서 1901년 최초의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무렵에는 다르질링 지역에 3,450 명의 셰르파가 있었다.

조사 연구, 탐사, 박물학자 원정, 그리고 초기 등반 원정에서 포터 일은 건설 노동과 비슷했다. 모두 ‘쿨리‘의 일이었고 셰르파는 그 지역에 있는 다른 소수민족과 함께 이일에 나섰다. 

다르질링은 지정학적으로는 인도였지만 
히말라야 산맥 내에 위치했다. 
다르질링 북쪽으로는 칸첸중가(해발 8,598 미터)가 장엄하게 솟아 있었는데 도보로 며칠 거리에 불과했다. 

다르질링은 상거래의 중심지여서 다양한 산악 부족이 많이 모여들었다. 

산악 부족에는 티베트 사람, 시킴 사람, 부탄 사람, 
네팔 동부 중간 구릉 지역의 라이족과 림부족, 그
리고 셰르파족 시람들이 있었다. - P43

사히브
1.인종 : 초기는 백인, 현재 다양
2.국가 : 국가적 이슈가 등반에 큰 영향
3.젠더 : 초기 전부 남자, 1970년대부 여성 등장
4.계급 : 대다수는 교육수준이 높은 부유한 중상류층 - P47

근대성이 천박하고 물질주의적이고 무신경하고 시끄럽긴 하지만, 또한 부드럽고 일상적이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런 무딘 현대 사회에서 자아는 의미를, 강렬함을,
목적을, 정직성을 상실한다. 

그런데 등반은 어렵고 위험하고 도전적이다. 

등반은 자아를 더 예리하고, 더 강하고,
더 솔직하고, 더 생생하게 만든다. 

1960년대에 한 인도 등반가는 
근대성은 우리의 결점을 감출 수 있게 해주지만 
등반은 결점을 모조리 인정하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 P52

이런 낭만주의적 에토스의 또 다른 측면은 
자연의 미화, 

즉 자아가그 한계를 알고 초월할 수 있는 극한 조건을 제공하는 자연이라는 상을 가져왔다. 

따라서 영허즈번드는 최초의 에베레스트산 원정을 후원하는 왕립지리학회를 옹호할 때, 

"그 산에 대한 인간 투쟁의 서사시"에 대해, 
그 산의 위력에 대항해 
인간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에 대해, 
그 산의 미지의 힘에 저항해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까지 시험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 P55

한 차원에서 영혼을 파괴하는 근대성에 대항하는 
교양 있는 중상류계급의 구성원으로 
사히브를 보는 게 적절하다면, 

다른 차원에서는 1970년대까지 사히브가 
대부분 남성들로, 체력과 용맹과 용기, 권위와 리더십과 (한도 내의)공격성, 사회적 하류계급과 약자에 대한 ‘가부장적‘ 책임감 등 서구 남성성의 특정 가치와 이상에 매우 민감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근대성의 어떤 차원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특정 차원은 일관되게 지지해온 사히브의 면모이다. 

이런 모습에 문화 간, 국가 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논의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사히브라는 일반 범주를 계속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타당하다.

사히브 문화의 남성적인 측면 대부분은 등반 원정을 군사 원정으로 보는 틀로 구현되었다. 

이는 초기 원정에서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사고방식이다. 

히말라야는 오직 군사 작전을 통해서 정복될 수 있다고 일찌감치 정해졌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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