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맥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있다.
지구상에는8,000미터가 넘는 산이 14개뿐인데, 그 모든 산이 히말라야에 있으며 네팔에만 그중 8개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 에베레스트로, 8,848미터이다.
8,000미터가 넘는 고봉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높은 고도에서는 공기 중에 산소가 거의 없어서 지극히 사소한 일을 해내는 데도 그 어려움이 엄청나게 커진다.
1938년에 에릭 십턴은 "에베레스트 위쪽을 오르는 등반가는 꿈속에서 등반하는 아픈 사람과 같다"고 일기에 썼다. - P19
‘셰르파‘란 에베레스트산과 히말라야의 몇몇 최고봉 주변에 사는 민족 집단의 구성원으로, 1910년 이래 줄곧 히말라야 등반 원정대들의 등반을 지원해온 소수민족이었다.
그들은 보통 국제산악인들의 조용한 파트너로서 물품을 운반하고 루트를 개설하고 로프를 고정하고 요리를 하고 캠프를 설치하는 일을 했으며, 때로는 등반가의 목숨도 구하고 때로는 그 와중에 죽기도 했다. - P12
세르파는 일단 네팔 북동쪽에베레스트 대산과 주변의 산과 계곡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조상은 16세기에 티베트 동부에서 이주했으며 민족적으로 티베트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일부 셰르파 남자들은 크고 작은 사업과 임금 노동의 형태로 영국인들에게서 경제적 기회를 얻고자 (대부분 계절에 따라) 인도의 다르질링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셰르파족은 다른 소수 민족들과 함께 다르질링 지역의 도로건설 사업의 ‘쿨리coolie‘ 일(막노동-옮긴이)에, 주변 산들의 탐사 및 측량 프로젝트에, 그리고 원정 등반이 별개의 활동이 되자 등반 원정대에 지원했다.
셰르파들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셰르파족이 특히 산 탐험과 등반 관련 지원 작업에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등반가들은 1907년에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 - P22
1852년 인도의 대삼각측량국은 히말라야에 있는 별 매력 없어 보이는 봉우리 하나를 삼각측량했다가 그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임을 발견했다.
그들은 182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측량국장이자 이후 아대륙과 그 너머 모든 측정의 기반이 된 인도자오선 측정의 책임자였던 조지 에베레스트 경을 기려, 그 산을 에베레스트라고 이름 지었다.
(셰르파와 티베트인들은 그 산을 초모룽마로, 네팔인들은 사가르마타로 부르는데, 이 이름들은 20세기를 거치면서 공적 담론에서 점점 더 많이 쓰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주로 서구 원정대에 대한 서구의 이야기들을 논할 것이며, 이들 원정대에서는 최근까지 그 산을 늘 에베레스트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겠다.) - P38
히말라야에서 영국인의 활동은 늘 경제적, 정치적, 과학적, 동양학자적 그리고 ‘스포츠‘ 관심사들이 독특하게 조합된 형태였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지배자들의 특징이었다(다른 시공간에서는 다른 조합이지만).
히말라야에서 지리학자는 평화롭게 고도를 측정했고, 박물학자는 식물을 연구했으며, 잡다한 관찰자들은 민족지적 관찰을 수행했다. 다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한편 동양학자는 동양의 종교, 특히 불교를 서양의 영적 개선이라는 이 름으로 연구했으며, 등반가들은 과학과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산을 탐험하고 등반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경제적, 정치적 관심은 1904년, 이제는 침략으로 널리 알려진 티베트에 대한 영허즈번드Younghusband의 참담한 ‘외교적 임무‘를 통해 맹렬히 발산됐다. - P41
영국인들은 이 지역을 잠식해 들어오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티베트인들과 외교협정을 맺기를 희망했다.
(...)
‘임무‘는 외교적 성과 면에서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협약이 체결됐지만 달라이라마가 협약 당사자가 아니라서 정당성이 없었던 것이다.
침략이 발발하자 달라이라마는 중국으로 피신해 영국인들을 막아달라고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는 20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던 것이다.
영국의 침략으로 달라이라마가 어쩔 수 없이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소멸되어 있었던 옛날의 종주권이 빌미가 되었다.
중국은 현재까지 티베트를 점령하고 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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