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중심지가 된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빈에서도1900년이 되기 얼마 전에
한 무리의 청장년층 조형예술가들이
관례적이고 학구적인 미술 전시계의 후견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종의 ‘분리 sccessio‘를 실행에 옮김으써,
즉 제도권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 자신의 협회를
설립함으로써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 P37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올브리히, 콜로 모저,
막스 부르크하르트, 알렉산더 젬린스키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로부터
차례로 혹은 동시에 숭배와 열망의 대상이 되었던 자,
분리파 개막식에 참석한 뒤
바그너의 희열에 푹 파묻혀 보려고
<발퀴레>를 공연하는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던 자,
그런 자가 이렇게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사유하는 자‘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