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중심지가 된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빈에서도1900년이 되기 얼마 전에 
한 무리의 청장년층 조형예술가들이
관례적이고 학구적인 미술 전시계의 후견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종의 ‘분리 sccessio‘를 실행에 옮김으써, 
즉 제도권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 자신의 협회를 
설립함으로써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 P37

"자신들의 이상에 감격하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빈의 예술적 미래를 믿는 한 무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제 오스트리아 조형예술가 연맹을 조직했다. 
이 단체는 일련의 참되고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예술 애호가들의 지원을 받아 
동업 조합이나 물질적인 것은 고려치 않고 
이를테면 회원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순수하게 이상적이고 
예술적인 방향으로만 활동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분리파 탄생의 결정적인 시발점이 된 1897년의 성명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 P38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올브리히, 콜로 모저, 
막스 부르크하르트, 알렉산더 젬린스키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로부터 
차례로 혹은 동시에 숭배와 열망의 대상이 되었던 자, 
분리파 개막식에 참석한 뒤 
바그너의 희열에 푹 파묻혀 보려고 
<발퀴레>를 공연하는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던 자,
그런 자가 이렇게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사유하는 자‘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 P83

구스타프 말러는 알마 신들러에게 
딱 맞는 남편감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알마 신들러가
구스타프 말러에게 딱 맞는 신붓감이었는지는 
어떤 식으로든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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