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6월 20일에 
그곳 슈타인바흐에 도착했고, 
그런대로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지냈다. 

우리는 그가 이렇게 휴가 습관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에 관해서는 아직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란, 
함부르크에서 보낸 최근 얼마간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작곡 작업에 계획한 대로 제대로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이따금씩 밖에 나지 않으리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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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동에 악루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는
이 소박한 건물은 이듬해인 1894년 6월
슈타인바흐에 왔을 때
말러는 곧바로 이 건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소형 그랜드 피아노가 그곳으로 운반 되었다. - P579

말러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한 여인을 사랑한 것은, 
그리고 예술가로서 음악가로서 음악적 창조자로서 
자기 자신이 지닌 재능이 바탕이 되어 
말러를 온전히 이해한 한 여인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밀덴부르크와 사귀었을 때가 필시 생새 처음이요,
아마도 생애 마지막이었으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 P595

말러의 함부르크 생활과 
말러, 폴리니 관계가 
더 이상 그리 오래가지는 않으리라는 것 
역시 1896년 여름에 벌써 분명해졌다. 
안나에게는 아직 구체적인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최고의 직업적 목표는 
빈에서 오페라 감독과 지휘자로 일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그의 마음속에는 당연히 
그리고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빈에 대한 생각, 
"남부 지역의 신"에 대한 생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 P604

"공통적으로 원하는 바가 도출되어야만 하며,
한 작품의 가장 깊은 정신적 토대 위에서의 만남은 
비밀스러우면서도 
가장 진실한 의견 일치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작품의 창조자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3년에 걸친광적인 사랑과 
12년에 걸친 공동 예술작업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녀 역시 자신이 여기에 기여하는 것을 
"거룩한 사명"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P613

말러는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서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부지런했다.

그가 지휘자 생활을 하는 동안
이 시기에 치른 정도의 공연 횟수에 도달한 적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함부르크에서의 계약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1891년 3월부터 1897년 4월까지 
그는 대략 715회라는 
상상을 초월한 횟수의 공연을 지휘했다. 

1894/95년도 시즌에는 총 360회에 달하는 공연 
가운데 148회를 지휘했으니,
3분의 1을 훌쩍 넘어서는 횟수의 공연을 지휘한 셈이다. 

오늘날 한 오페라 극장의 전임 지휘자치고 그 정도의 지휘 횟수에 비슷하게라도 도달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한번 비교해 보자. 
독일 바이언 주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총감독
(주빈 메타)은 2001/2002년도 시즌 동안 
총 46회의 공연을 치렀는데 
(여기에 네 차례의 교향악 연주회가 추가된다), 
이는 말러가 했던 것의 3분의 1수준이다. - P614

말러가 빈에서 이 지휘자 자리를 얻게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 적기를 놓치지는 않았을 때 
함부르크에서 가톨릭 영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 P623

문제의 핵심적인부분에서는 말러의 말이 확실히 옳았다. 

유대인이라는 점은 
그가 빈으로 초빙되는 것을 가로막는 커다란, 
아마도 극복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두드러진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빈 지역의 반유대주의는 
당시에 그 위험성이 극에 달해 있었다. - P627

기자가 여기서 ‘마우셀 말씨라는 
수상쩍은 표현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이디시어 말씨‘라고도 불리는 유대식 독일어를 
조롱하면서 지칭하는 오래된 명칭이다. - P633

루이스가 보기에 심각했던 것은 
오히려 말러가 독일 음악을 쓰려고 시도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음표 하나하나마다 
유대식 음조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 
말하자면 그런 음조의 냄새를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다른 냄새가 난다"거나
"악취가 난다"는 오래된 비난과
반유대주의자들의 편집증적 사고 체계에서
언제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유대인의 고약한 냄새‘라는 관념이
그의 글에서는 음악에 적용되고 있다. - P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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