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기회주의자라느니, 비꼬였다느니, 비관론자라느니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불현듯 연구실 밖에서 이렇게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백치라면 얘기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들어도 상관없겠지만, 내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지금, 그들은 내가 듣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를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밖은 어두웠다. 오랫동안 쏘다니면서 내가 왜 그토록 놀랐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들의 실체를 본 것이다. 그들은 신도영웅도 아니고, 그저 자신들의 일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두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니머의 말이 옳고 실험이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할 일은 산더미 같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도 많지 않은가? - P85
대학에 가서 교육을 받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줄곧 믿어왔던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과, 무슨 일이건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임을 깨달았다. - P87
니머 교수에게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아무 관련없는 제3자이니 불쾌한 시비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중개자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같다. 그 시점에서는 사정을 몰랐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살인사건에 사용된 칼이나 충돌사고의 자동차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인간입니다."
그는 잠깐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지, 찰리. 나는 현재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 수술 전의일을 말하는 거지."
독선, 오만 ・・・・・・ 교수도 때려주고 싶다.
"저는 수술 전에도 인간이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잊고 계셨다면..."
"그래, 그야 그렇지, 찰리. 오해하지 말게. 단지 지금은 전과 달리......"
그리고 그는 연구실에서 어떤 도표를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 P107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고어떻게 느낄까 하는 것이 왜 이토록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되었을까?
성인센터에서의 1년 남짓,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한가지, 그녀를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수술에 동의한 것도 오로지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 P108
나를 조롱할 수 있는 한, 나를 노리개 삼아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백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나의 눈부신 지적 성장이 그들을 위축시키고, 그들의 무능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배반한 것이며, 그들은 그래서 나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 P127
앨리스에 대한 내 마음은 내 학습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숭배에서사랑으로, 호의로, 감사로, 책임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녀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분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옛날의 나를 버릴 것을 강요당하며, 닻줄이 끊기는 데 대한 공포에서그녀에게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 P148
그는은혜도 모르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것, 즉 나를 모르모트 (실험용)로 취급하는 태도인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거나 장차 ‘나 같은 사람들도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니머의 입버릇에 분노를 느낀다.
그가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이해시킬 수있을까?
정신지체자에게도 인간의 감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때문에 니머도 그들을 보고 웃는 사람들과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는것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 P168
나는 천재인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아니다.
교육학의 완곡어법을 빌리자면 나는 ‘특수‘한 것이다. 이 ‘특수‘라는 용어는 ‘재능이 주어진 자‘와 ‘재능이 결여된 자‘(똑똑함과정신지체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라는 혐오스러운 레테르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민주적인 용어로, ‘특수‘가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면 그들은 다시 다른 표현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인 것 같다. 어떤 표현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표현이 아무에게도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한 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특수‘란 스펙트럼의 양끝을 가리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평생을 통해 특수했다는 얘기가 된다. - P176
나는 연구보고의 증거자료로서 이곳에 온 것이고 따라서 전시물로 제공되는 것쯤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나를 학계에새로이 발표되는 신종 동물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나를 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앨저넌과 찰리‘ 또는 ‘찰리와 앨저넌‘이라는 식으로 나란히 짝을 지워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우리 둘을 실험실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의 실험동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분노보다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않았다. - P184
어머니를 머리에서 쫓아내려 해도 기억이 과거에서 땀처럼 배어나와, 지금 머릿속은 어지럽힌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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