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이 쏟아붓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청중의 만족이다. 우리 마에스트로들은 음악이라는 원천과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전도체를 자임한다. 그리고사람들이 공연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이상적으로는 참여해줄 것을 희망한다.
작곡가들이야 오해를 받고 퇴짜를 맞으면 "언젠가 내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하며 폼이라도 잡을 수 있지만, 지휘자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사치다. 지금 당장 여기서 목표를 달성하거나 아니면 실패를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저자가 아니라 번역자인 까닭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의 번역자가 되는 것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지휘자가 되는 것을 나란히 놓고 견주기는 어렵다. ‘오디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은 여러 종류의 번역본 가운데하나를 고를 수 있겠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오로지 공연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P273
고전음악에 종사하는 단체라면 시트콤이나 게임쇼보다더 높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할까?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얼핏 들긴 하는데, 다만 초대권 관행은 어쨌거나미국에서는 민간단체들인 예술 단체의 비전 달성에 도움이 되는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아울러 페이퍼링 관례는 초대권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들을 기회가 없었을 청중을 끌어들인다는 순기능도있다.
고전음악계는 대중적 성공을 두고 정신분열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한편으로는 이를 음악적 수준 저하와 동일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젊고 열성적인 청중이 공연장을 메우는 모습에 흐뭇해하는 것이다. 특히 까다로운 현대음악이 연주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편이다. - P282
평론가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글재주를 갖춘 전문 청중이며, 매번 공짜표를 받고 들어와 연주회와 음악에 대해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이들이다.
마치 우리 지휘자들이 다른 사람이 쓴 음악에 의존하여 살아가듯, 평론가들은 우리의 연주에 의지하는 존재들이다. - P286
"사람들은 사물이나 사건의 가치를 평가할 때 권위자의말을 따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실이나 결과를 바탕으로권위자를 선택하는 건 아닙니다. 대신 그들은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권위자로 택하지요."
2015년 영화 <빅쇼트>에 나오는 대사다.
아울러 이말은 정치, 스포츠, 예술 분야에 평론가와 해설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얼추 요약해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 P287
앞서 말한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누군가가 나서서 ‘우리의 연주‘, 좀 더 근사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비평연주 판본을 평가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짜증나는 일이다
평론가의 부정적인 언급 ("너무 빠르다" "너무 느리다" "너무자유롭다" "너무 뻣뻣하다" 등)을 접할 때마다 주제넘은 월권행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 수 있단 말인가? 평론가는 또한명의 청자로서 우리에게 다른 그 어느 청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청자가 갖지 못한 무기가 하나 있다.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방편이 그것이다. 지휘자의 성공 여부가 그 지휘자보다 앎이 훨씬 얕은 낯선 이에 의해 재단되고, 그 낯선 이가 평가에 사용한 글이 공연을 찾은 청중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리라는 점을 미리 알고서 지휘 공부에 투신한 이는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 P288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음악평론가에게 음악평론가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리는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평론가들은 일어났으면 하고 본인이 바라는 바ㅡ본인이 희망하는 것과 본인이 좋아하는 방법에대해 쓰는 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음악평론은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 P294
시각예술은 언제나 평가되고 또 재평가된다. 한때 키치로 불렸던 작품이 갑자기 위대한 예술로 재평가되는 것도종종 있는 일이다. 사실상 무명이었던 화가의 회고전을 통해 대중과 평단)은 흥미롭고도 새로운 평결과 만난다.
그러나 음악은 연주되지 않는 한 이처럼 건강한 재평가의 과정에 동참할 수가 없다. 교향곡을 벽에 걸어놓을 순 없는 노릇아닌가. 연주는 마지막 음이 멎고 나면 0.5초 만에 사라져버린다.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연주에 대해 권위 있다는 자가 글을 써 인쇄해 뿌린다면 그 누가 거기에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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