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현장 탐사는 결코 연구가 주요 목적이 아니라는 것. 주요 목적은 생존이고 운이 좋다면 연구를 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생존에는 여러 가지가포함된다. 예를 들면 변덕스러운 날씨나 기분을 견디는 일, 마분지 맛이 나는 식량을 다른 맛으로 바꾸는 일(창의적 요리의주재료는 어묵, 노르웨이어로는 피스케볼레르fiskeboller지만 때로는이마저도 해변의 소총 사격 연습에 양보해야 했다), 땔감으로 쓸장작을 모으는 일,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옷을 빨고 몸을 씻는 일 등이다. 서서히 기름에 절어 엉겨 붙는 머리칼을 한 달에 한 번 피오르에서 퍼온 얼음물에 담가 감을 때면 두개골이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길었고 대개는 모종의재난으로 마무리되었다.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구가 고장나거나 물에 휩쓸려 간 적도 부지기수였다. 리치 호지킨스는힘든 날에도 늘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없잖아." 그는 진지한 어투로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생존에 집중하는 삶‘이 정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시 시대의 삶과 비슷한 단순한 삶으로 돌아오면 몸과 정신이 모두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 P85

한여름이 되자 해빙은 서쪽의 따뜻한 메시코 만류 때문에 스발바르 제도 북동쪽 멀리까지 물러났다. 곰들은 대체로 물범을 따라다니고, 이는 곧 얼음을 따라다닌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름에 스발바르 서쪽에서 곰을 맞닥뜨린다면 그 곰은 굶주린 상태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에 간식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의문이 연이어 떠오를 것이다. 저곰이 나를 봤을까?총을 장전해야 하나? 안전한 피신처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 P87

사람들은 종종 내게 과학자들을 이끌고 그렇게 먼 고립무원까지 가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그럴 때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진다고 대답한다. 야생은 공평한 경쟁의 장이다. 학생이나 교수나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내게는 모두를 끌어올리기보다는 내가 그들의 입장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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