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에 피아노 학원을 처음 다니게 되었다.
첫날 그랜드 피아노를 난생 처음 보았다.
이건 고래다 싶은 자태였다.
까만색의 덩치 큰 고래.
그것이 그렇게 멋진 소리를 낼지 상상도 못했다.
책을 읽으니 삐쩍마른, 사회성이 부쩍 떨어지는,
학습부진아였던 내가 떠오른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뚱땅거리면
뭔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는데..
원장 선생님 왈
쟤는 피아노 전공자만 치는거야. 가까이 가지마라.
난 또 짜부러진 9세 꼬맹이가 되었다^-^;;
오늘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랑
그때로 돌아가 피아노 선생님 욕을 해봤다 ㅋㅋ

그럼에도 K0862가 다른 피아노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음색적 특징을 지난다면 그것은 피아노를 구성하는 다른 수천 개의 부품보다 단연81번 부품 덕이다. K0862가 의지 강한 달변의 피아노가 되는 것도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나 차이콥스키, 히나스테라에 적격일 테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유순한 피아노가 되는 것도(그렇다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슈베르트 작품 연주에 더 어울릴 것이다), 81번 부품에의해 좌우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괜찮은 일이지만, 현대 관객은 으르렁대는 베이스와 아른아른 빛나면서도 쟁그랑대지 않는고음역을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도록 길들어버렸다. 실체가 뚜렷하고 본능적이면서도 약동하는 소리가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모든 스타인웨이가 그처럼 묵직한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건 아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모든 스타인웨이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 P139
요즘 벌목되는 가문비나무는 브리티시컬럼비아산과 알래스카산이 주종이다. 공장에서는 캐나다산 목재와 미국산 목재를굳이 구분해서 파악하지 않으므로, 그 어느 미국산 피아노보다 미국산임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스타인웨이의 가장 중요한 부품이 실은 외국산일 수도 있는 셈이다. 공명판에 사용되는 목재의 수령 또한 확언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K0862 의 나무가 콜럼버스와 마젤란까지 거슬러 올라간 시대의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요즘 가문비나무는 수령이 낮은 나무를 벌목하는 것이 보통이니, 18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숲의 초록 지붕을 뚫고 나온 것일 공산이 크긴 하지만 말이다. 머지않아 스타인웨이에 들어가는 목재는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 시절에 묘목이었던 나무들에서 취하게 될 것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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