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는 약 한 시간 동안은 자연 속에서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된다. 빨래에 집중하느라 내게 관심을 보이는 암컷 모기들에 일일이 거절 의사를 전할 수가 없다. 다만 나의 경계심이 풀어지는 만큼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자연에 깊숙이 동화된다. 미네랄을 섭취하기 위해 냇가의 진흙을 찾아오는 아름다운 나비들의 군무와 근처의 화밀을 찾아 날아다니는 초록의 벌새, 바로 옆 나무의 높은 가지에 앉아 쉬던 청록색 새를 벗 삼을 수있다.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들이다. 모기의 주삿바늘 세례에 몸이 움찔움찔하기도 했지만 자연의 친구들 덕에 썩 즐길 만한빨래였다. - P60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로 향했다. 내일은 새벽부터 조류 팀을 따라나서야 한다. 발전기는 다시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당분간밤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거란다. 또 전기 부족이라니. 정말 큰 문제다. 수억 살 열대우림보다. 백 년 남짓한 발전기의 나이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축적된진화의 힘으로도, 짧은 기간 폭발한 문명의 힘을 뛰어넘을 재간이 내겐 없는 걸까. 원시의 자연 속에서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가보다. -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