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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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청바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없어서가 아니고 안 입기 때문이 아닐까-

 

가격대도 몇만원 이하에서 몇백만원이 넘기도 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래서 몇벌을 갖고 있기도 한 청바지가

어떻게 만들어 지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부터도 별로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청바지에만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모든 상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 전 지구적자본주의가 세계화로 지구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쓰는 모든 물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 그 과정에서 '노동과 인권', 인간다움과 생존에 대하여 고발하되 누구를 지적하여 나무라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몰랐던 것을 알게 함으로써 알게 된 사실을 통해 우리가 '변화'해 나가야 하는 점을 매우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노동 착취에 반대하면서도 월마트나 타깃 같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대형 소매점에 가서 19~20달러에 청바지를, 또 2~3달러에 티셔츠를 구입하고 있는 본인들의 행동이 모순된다는 걸 알아차릴 만큼 교육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싼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겠습니까? 누가 이런 것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생산-소비 사슬의 저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부담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말은 '에던'이라는 브랜드의 책임자가 한 이야기다. '에던'은 소위 '공정무역'을 사업모토로 삼아서 운영하는 의류브랜드이다.

 

우리는 커피한잔에도 제 가격을 주고 삼으로써 '별다방'과 같은 곳이 저지르는 노동착취를 당하는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을 보호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의류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정무역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특히 청바지로 대표되는 면제품은 그 원료인 목화의 생산에서부터 목화를 실로 가공하고 천으로 짜고 그것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파괴와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목화생산과 방직과정에서 일어나는 석탄에 의한 진폐증만큼 무서운 면폐증과 염색과 세탁 - 오늘날은 모든 염색원료가 화학원료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극물에 의한 피해는 수도 없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게다가 2005년부터 섬유쿼터가 철폐된 이후에는 무조건 낮은 생산비를 찾아 캄보디아, 중국, 스리랑카 등 저개발국가 -중국은 예외겠지만 의류산업은 별도로 친다- 에서 자행되는 저임금, 노동착취, 어린이노동, 반환경적인 생산과정을 개선하고자 세계적인 의류브랜드들은 나름대로 감시시스템을 가동하지만 각 나라의 국가정책에 의해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점도 꼬집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세계 제조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복잡한 인간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해하고자 하고,

 

"사람들은 환경이나 경제 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유기농 면 사용을 확대하거나 화학 약품 사용을 줄이거나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거나 최소임금을 올리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 그들은 우리의 끝없는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킬지에 관심을 가질 뿐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욕망을 축소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 예전에는 네 벌의 티셔츠만 가지고 살았던 데 반해 이제 스무 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경제적 발전인가? 그 많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해서 우리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인가? " 질문하면서

 

" 합당한 임금, 노동자의 권리, 잘 기능하는 노조가 되기 위해서는 (...) 정부, 사업가, 그리고 노동자들 모두 변화를 가능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소비자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진정한 힘은 우리에게 있다" 며 답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의 일부로 일하고 있는 우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비자인 우리가 우리의 처지를 정확히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책이다.

 

블르진, 세계경제를 입다/ 부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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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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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이고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도 '예수천국 불신지옥'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현실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셨나를 묻는 질문은 신자와 비신자를 불문하고 매우 의미있는 질문이라 할것이다.

 

'그리스도철학자'란 책의 저자는 왜 그리스도가 왔고 와서 무엇을 했나를 복음서에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고 있다.

 

나아가 서구의 정신문명의 원류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드러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예수는 나이, 직위, 성별, 민족 간의 차이를 폐지시켰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여 종교인들이 남에게 뽐내기 위해 드러내는 신앙에 반기를 들고 골방에서의 기도를 더  강조했다고 한다. 나아가 "죽을 죄" 나 "배교의 죄"는 기독교 언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회정의에서도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을 6:2)

이는 부의 금지나 혐오가 아니라 '나눔의 필요"와 함게 자비의 삶을 강조했다고 한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 17~18)

 

또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가복음 12:13~17)

고 하였으며 비폭력과 용서를 매우 강조하였다. " 왜냐하면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6:52)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리라" (마가복음 12:33) 하여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의 말씀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인격적 인간의 개념이 형성된 것은 기독교 신학을 통해서 였다고 특별히 강조한다. 물론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것은 르네상르시대 이후라고 하는 점도 인정하지만 서구의 근대성인 진보와 휴머니즘 , 그리고 인간이성에 대한 높은 믿음의 근거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속에 내재되어 있고 지금도 그것을 잘 살피고 인류문명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가 완성되면서 교회제도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정 반대의 길로 나갔던 점을 인정한다. 정교일체와 무자비한 종교재판, 극심한 유대인탄압, 십자군전쟁의 잘못된 점, 신구교의 엄청난 피의 전쟁등은 모두 복음서를 잘못 해석하였기에 그러했으며 그 와중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자 수도회들이 열심히 활동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결국 서구문명의 원류로서 근대세계의 발전이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르네상스를 통하여 중세의 질곡을 벗어난 것이 복음서를 참되게 해석하고, 인간을 진정 신의 뜻에 맞게 구원하고자 하여 일어난 것이라면

그리스로마의시대의 모든 문명은 무엇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사회적 인프라와 사회복지, 왕성한 교육시스템- 비록 대학제도는 교회에 의하여 만들어졌지만 - 이 있었던 고대사회의 문명은 기독교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 저자는 비록 영향을 끼쳤다고 하나 그것도 다 복음서에 의해 포용되었다고 한다.

 

만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고대그리스로마의 문명이 없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정치사회제도적으로 전혀 없었을까. 기독교의 수많은 악행이 모두 신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믿는 자들의 일일 뿐 신은 그런 뜻이 없었다고 한다면 현재 국민의 80%가 신의 존재를 믿는 미국 - 신의 뜻으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근본주의자들, 하나님께 나라를 봉헌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어느 분 말씀과 어느 교회의 주장과 행동등- 의 침략전쟁이 실은 이교도들에 대한 제 2의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건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 신의 뜻' 일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어야 위 모든 질문에 답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결국 신의 장난감존재밖에 되지 않을가 하는 질문에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가 신만 믿으면 된다는 답이 나오는 기독경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할수 밖에 없다고 본다.

 

불교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하늘나라에서 공력이 먼저 떨어져 대범천의 하나일 뿐인 예수그리스도인데 여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많이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만인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비폭력, 집단에 대한 개인의 해방 및 남성에 대한 여성의 해방, 선택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인류애등이 모두 복음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세상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강림하신 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신의 뜻이 위와 같지만 이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이 지구별에 온 지 2000년나 넘었는데도 예수의 말씀이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세상이 예수의 말씀으로 진행되는 것이 더 많은 것은 어쩌면 인간과 예수그리스도는 궁합(?)이 맞지 않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이제는 그만 포기하시고 , 종교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살육과 압박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도 더 이상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순수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 믿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드는 순간 믿는것은 바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교적으로 삶이 고행이고 모든 것이 공이니 삼계를 닦고 탐진치의 번뇌를 끊어 윤회의 사슬에서 해탈하자는 이야기가 인간의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불교의 주장도 믿지 않지만.

 

이 책은 일반인의 교양서로도 좋지만 매우 열심히 " 믿는" 사람들에게도 꼭 읽어볼만 한 책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지음/연암서가 200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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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초보 탈출 100문 100답 - 김성철 교수의 체계불학
김성철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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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종교는 셈족의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교등이 있고 동양의 불교가 세계종교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는 우리나라에서 신라시대부터 천몇백년간의 우리나라 문화와 일상에 깊숙히 침투하여 온 대표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교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김성철교수의 체계불학, 불교초보탈출 100문100답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불교에 대한 오해와 부족한 면을 그동안 저자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라온 질문들을 100문100답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교리와 수행에 대하여

 

불교는 지금 전 인류 중 전생에 인간이었던 자는 거의 없고 내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자는 거의 없다는 '윤회의 비정함'을 자각하는 것이 첫번째의 깨달음이고  이에 사람이 죽으면 6도(六道)인 하늘나라,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의 세계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것이 끊임없이 순환되는 윤회의 세계가 '일체개고(一切皆苦)' 임을 깨닫고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열반'이고 궁극적 삶의 목표라고 합니다. '적멸'이라고도 하지요.

 

이를 이루기 위하여 소승과 대승 , 금강승( 일명 밀교라고도 함)의 차이가 나는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소승은 지적인 깨달음에 치중하지만 대승은 지적인 깨달음에 치중하기 보다는 복덕을 쌓는 것에도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고 밀교는 '가상의 종교놀이'를 통해 불교적 심성을 키워주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불교적 깨달음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내 마음의 번뇌인 '탐욕, 분노, 교만, 종교적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윤회와 연기의 공의 궁극적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계, 정, 혜 삼학을 수련하고 탐진치(貪賑癡) 삼독심을 제거하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면 부처이고 지혜만 갖추면 아라한이며, 복덕만 갖추면 전륜성왕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는 어느 누가 만든 것이 아니고 우주는 성주괴공 즉, 과거 언젠가 생성되었다가 지금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 언젠가 파괴되었다가 온 우주가 텅 비게 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생성되고 지속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무한히 되풀이 합니다.

 

이 세계는 누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업력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불교의 우주론은 한 번의 창조와 한 번의 종말만을 얘기한 다른 종교의 우주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6도중 하나인 하늘나라는 다시 욕계천, 색계천, 무색계천으로 나뉘게 되는데 우주의 성주괴공가운데 공겁의 상태에서 긴 시간이 흘러 하늘나라에 살던 중생 가운데 복덕의 힘이 가장 먼저 소진된 생명체가 밑으로 타락하게 되는데 그 생명체가 창조주 행세를 하는 대범천이라고 합니다. 그 대범천 이후에 초선천으로 떨어진 천신들이 대범천이 그 이하의 세계를 만든 것으로 착각하고서 창조주로 섬기기 시작하였으며 대범천 역시 자신이 세상을 만들었고 마치 아버지와 같으며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교만에 가득 찬 말로 옳지 않다고 합니다.

 

 

타종교와의 관계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나라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종교적목표가 될수없다. 이 모두 윤회의 세계일뿐. 불교는 이런 모든 윤회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열반을 진정한 종교적 목표라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와 같이 생각을 닫고 사는 것을 권장하고 사이좋은 돼지들과 같이 살라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다. '부~자 되기' '잘 먹고 잘 살기'가 종교의 목표인 것처럼 현혹시키는 종교도 있다. 사람을 '가축'과 같이 다루는 종교이다. 라고 합니다. 뭔가가 생각나시는 분들은 다시 한번 종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인성, 불성, 신성, 자성 등 인간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윤회과정의 일부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번뇌를 극복하여 해탈의 길로 가는 방편일뿐 삼매에 빠지는 것도 경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샤먼들이 접신하듯 신과 일체가 되는 감정은 결국 그 순간만 지나면 다시 윤회로 돌아오게 된다는 거지요...

 

불교와 다른종교의 차이점은 현실을 직시하여 발견된 종교인지 인간의 희망사항이 만든 종교인지가 구별기준이고 체계불학은 신앙과 수행의 불교학이고 이 불교학을 공부하고 수련하는 방법으로 중관학이라는 논리학이 바탕에 깔려서 불전(佛典)을 이해하는 것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셈족의 종교인 유대교, 카톨릭, 기독교, 이슬람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세상의 무지에 대한 공포심을 극적으로 이용한다고 저는 봅니다만 불교는 더 나아가 그 근원을 인간과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공포심을 이용한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도와 동아시아등 동양에서는 자기 내면의 본성, 자성, 신성, 불성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이지 어떤 조직을 만드는 것을 종교라고 보지 않으며 어떤 교조의 가르침을 신봉한다고 해도 다른 교조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않는다는점과 '조직으로서의 종교생활'이 몸에 밴 셈족의 입장에서 종교와 종교는 달라야 한다고 하는배제와 차별의 잘못된것을 지적하는 점은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등이 종교라기 보다는 '사회조직'이고 마치 보이스카우트, 라이온스클럽같다고 하는 과격한(?) 표현도 있지만 위의 지적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인간의 언어는 깨달음에 장애가 됩니까?'와  연기론이 결정론이 아니냐는 질문, 선과 악 윤리의 기준, 뇌사를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플라토닉러브도 음행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불교이전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없이는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저자의 깊은 내공이 우러나오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불교에 대한 근본원리를 맛보기로나마 접하고 보니 이제는 지저스크라이스트의 주장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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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 소통의 기술, 세상을 향해 나를 여는 방법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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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둘째아이와 대학입시 원서쓰는것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제 풀에 제가 지쳐 먼저 버럭 화를 내고 야단치고 그 다음에는 서로 감정이 상한 채로 결국 결론을 못내고 이야기를 끝내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평상시 타인과 이야기 할 때 제가 가진 생각을 커다란 어려움 없이 말로 잘 표현을 합니다. 혹자는 그래서 저에게 말을 잘 한다 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듣기에는 좋은 이야기 이지만 그 말의 내면에는 " 너는 말만 잘 한다" 라는 뉘앙스도 숨어있음을 느낀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때 저와 생각이 다른 것을 느끼면서 " 왜 저런 그릇된 생각을 하는 걸까?" 하면서 그 생각을 바꾸고(?) 변화시켜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하여 그 사람과 논쟁이란 것을 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에 안타까움을 느낀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한적도 있었습니다.

 

'유정아의 서울대말하기강의'는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말이란 ? 타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함께 일을 도모하거나 놀고 자신을 점검하고, 그래서 자신에게서 해방되는 소통의 수단이다.'

 

자신에게서 해방된다는게 무엇일까요. 자기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남이 나를 바라보는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자기를 감싸고 있는 허위와 거짓과 술수를 깨트리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서의 해방이지요.

 

그 다음에는 말에 나의 진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남이 말할 때 진정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내 말이 타인에게서 진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특히 설득의 대화를 할 때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적일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질때에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 진정성중의 하나가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고 함께 감정이입까지 가능하도록 동조하는 듣기의 기술입니다. 내 말도 잘 안들어주는 사람의 말을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실제로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말보다는 진정성이 담기고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말들이 서로간에 소통이 될때 비로소 말을 잘 하게 된다는 거지요. 일상적인 대화를 하더라도 이러한 태도가 논리가 정연하고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것보다 조금 어눌하더라도 소통이 더 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의 대화법은 대개 여자들이 잘 하는 말하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여성들의 말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통이 원활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기 거북하게 느끼는 남성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여자들은 공격적이기 보다는 방어적이며 강요보다는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식의 대화를 많이 합니다. 여성들의 말투를 배우자! 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런 태도를 배우자는 것으로 이해해야겠지요.

 

 우리 아들과의 대화에서도 이 책이 주는 교훈을 써먹으려고 하였지만 단시간에 되지는 않더라구요.

저도 제 말에서 공세적이고 논리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아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너는 나중에 뭐가될래? 어떻게 살래? 와 같은 강요의 질문이 앞서게 되고 그 애가 고민하는 것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책은 이와 함께 연설과, 대담, 토론과 인터뷰등에서 갖추어야 할 사항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논리적인 이야기를 할때 상대의 논리로 나의 논리를 펼쳐나갈 때에만 설득력이 있다고 한것에 밑줄이 쳐지게 되는군요.

 

그러나 이 책을 관통하는 요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타인을 또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진정성을 갖고 예의를 갖추어 배려와 이해를 말하기의 토대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말하나 하면서 웬 철학적인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철학이 별거겠어요?

 

인생을 어떻게 사나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그래서 말하기가 철학이 되는거겠지요.

 

노자56장의 知者不言 言者不知 라 하여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글이 아니 말이 부족한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것이 아니냐고 부족함을 표합니다만,

저자의 약력이 서울대사회학과를 나와 방송아나운서생활을 오래한 후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의를 5년째 한 것을 책으로 엮은것의

결과물로서는 매우 겸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첨언하여, 요즘 언론에서 나오는 대통령이나 정부의 "소통" 이야기가 왜 잘못된 것인지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듭니다.

 

유정아의 말하기 강의  / 문학동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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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존 - 집중력을 위한 뇌의 재발견
루시 조 팰러디노 지음, 조윤경 옮김 / 멘토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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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마음과 생각은 다른것이라고 알고 있다.

감정과 이성은 대립되는것으로 혹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알고 있다.

 

루시 조 펠러디노의 '포커스 존'은 이러한 믿음에 수정을 요하는 책이다.

 

심리치료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때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을 뇌의 구조와 그 이해를 통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집중의 반대는 주의력이 결핍된 상태나 주의력과잉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을  뒤집어진 U자 형태(사발을 거꾸로 놓인 상태)의 표로 만들면 이해하기가 쉽다. 뒤집어진 U자곡선의 양쪽은 주의력이 결핍되거나 주의력이 과잉된상태를 의미하고 가운데 부분이 집중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일명 '포커스 존'으로 설명되어진다.

 

뇌의 CEO인 전전두엽에서 나오는 물질중 도파민은 뇌를 활성화하고,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노르예피네프린은 흥분과 긴장을 하게 만든다. 즉, 인간의 모든 감정과 느낌등은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화학물질의 반응인 것을 이해한다면 이 물질의 분비에 관련된 뇌를 적절하게 조절함으로써 포커스 존을 유지하고자 한다.

 

대개의 처세나 성공에 대한 책들은

 

변화를 일상적으로 추구하라,

누구나 가는 길은 가지 마라,

기회를 놓치면 굶는다,

지혜를 길러라,

소중한 가치들을 존중하라,

위기에 감사하라 등등의 소위 '공자님 말씀위주로 되어 있어서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하지만 책을 덥고 돌아서면

이따금씩이나 생각나면 다행일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구체적인 지침으로 활용되기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무슨 일을 하던 집중력을 가지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들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 방법을 목록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자기 인식

2. 상태 변화

3. 미루는 습관 없애기

4. 불안 방지

5. 강도 조절

6.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하기

7. 궤도 유지하기

8. 건강한 습관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물음이 나올 것이다.

 

첫번째의 자기 인식에 대하여는 "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진 않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인간의 숨겨진 불안을 드러내는 한편, 불안들 드러내는 다양한 수단을 보여준다. 불안을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찰하려는 의지가 필요한데 위 질문은 이것을 드러내게 해준다.

 

또 하나는 '상태변화'로서 '4각 호흡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각형이면 아무거나 좋다. 창문, 모니터, 책장등등.

 

1. 위편 왼쪽 구석을 보고 넷을 세는 동안 숨을 들이마신다. 1,2,3,4 숫자를 세라

2. 시선을 위편 오른쪽 구석으로 옮기고 숨을 참고 넷을 센다.

3. 시선을 아래편 오른쪽 구석으로 옮긴 뒤 넷을 세는 동안 숨을 내쉰다.

4. 시선을 아래편 왼쪽 구석으로 옮기고 조용히 이렇게 읊조린다. " 긴장을 풀자, 긴장을 풀자, 그리고 웃자."

 이를 반복한다.    지금 당장 시도해보라.

 

그리고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시도해보라. 외부의 특정한 지점을 응시함으로써 당신은 불안, 자신감 상실, 죄책감과 같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의식적으로 호흡함으로써 집중력을 되찾고 평상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8가지 목록에 대하여 구체적인 처방을 담고 있어서 바로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다시 처음의 말로 돌아가서 ' 욕망은 생각이다'라는 것은 이 책에서 뇌가 갖는 특성을 이해하고 불안, 두려움, 압박감, 회피하는 마음등이 결국에는 감정이자 생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욕망 내지 욕구는 감정이자 생각이고 우리의 정신 안에서 서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욕구를 직접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생각을 바꾸라는 처세술내지 성공학과 근본적으로 접근방법이 다르다!)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우리 뇌의 CEO인 전전두엽에서는 감정에 관여하는 변연계를 호출하여 감정을 고찰하게 하며 변연계는 이 CEO 의 요구에 협력하여 '불쾌한'경로 대신 '호감이 가는'경로로 가기 시작한다.

 

이외에도 '정신적 예행연습'을 통한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과 '하지말라' 라는 것보다 '하라'를 사용하여 뇌를 포커스 존을 머물게 하며 동기부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구체적인 상담사례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마지막 장에는 " 아이에게 주의력 집중하는 법 가르치기'라는 장으로 부모의 역할모델과 신뢰의 힘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지 설명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여러가지 감정은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의 영향이고 이것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변화시킴으로써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감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그럼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

어떻게??  자신을 믿으면서 ! 과학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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