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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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이고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도 '예수천국 불신지옥'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현실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셨나를 묻는 질문은 신자와 비신자를 불문하고 매우 의미있는 질문이라 할것이다.

 

'그리스도철학자'란 책의 저자는 왜 그리스도가 왔고 와서 무엇을 했나를 복음서에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고 있다.

 

나아가 서구의 정신문명의 원류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드러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예수는 나이, 직위, 성별, 민족 간의 차이를 폐지시켰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여 종교인들이 남에게 뽐내기 위해 드러내는 신앙에 반기를 들고 골방에서의 기도를 더  강조했다고 한다. 나아가 "죽을 죄" 나 "배교의 죄"는 기독교 언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회정의에서도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을 6:2)

이는 부의 금지나 혐오가 아니라 '나눔의 필요"와 함게 자비의 삶을 강조했다고 한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 17~18)

 

또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가복음 12:13~17)

고 하였으며 비폭력과 용서를 매우 강조하였다. " 왜냐하면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6:52)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리라" (마가복음 12:33) 하여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의 말씀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인격적 인간의 개념이 형성된 것은 기독교 신학을 통해서 였다고 특별히 강조한다. 물론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것은 르네상르시대 이후라고 하는 점도 인정하지만 서구의 근대성인 진보와 휴머니즘 , 그리고 인간이성에 대한 높은 믿음의 근거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속에 내재되어 있고 지금도 그것을 잘 살피고 인류문명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가 완성되면서 교회제도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정 반대의 길로 나갔던 점을 인정한다. 정교일체와 무자비한 종교재판, 극심한 유대인탄압, 십자군전쟁의 잘못된 점, 신구교의 엄청난 피의 전쟁등은 모두 복음서를 잘못 해석하였기에 그러했으며 그 와중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자 수도회들이 열심히 활동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결국 서구문명의 원류로서 근대세계의 발전이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르네상스를 통하여 중세의 질곡을 벗어난 것이 복음서를 참되게 해석하고, 인간을 진정 신의 뜻에 맞게 구원하고자 하여 일어난 것이라면

그리스로마의시대의 모든 문명은 무엇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사회적 인프라와 사회복지, 왕성한 교육시스템- 비록 대학제도는 교회에 의하여 만들어졌지만 - 이 있었던 고대사회의 문명은 기독교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 저자는 비록 영향을 끼쳤다고 하나 그것도 다 복음서에 의해 포용되었다고 한다.

 

만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고대그리스로마의 문명이 없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정치사회제도적으로 전혀 없었을까. 기독교의 수많은 악행이 모두 신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믿는 자들의 일일 뿐 신은 그런 뜻이 없었다고 한다면 현재 국민의 80%가 신의 존재를 믿는 미국 - 신의 뜻으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근본주의자들, 하나님께 나라를 봉헌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어느 분 말씀과 어느 교회의 주장과 행동등- 의 침략전쟁이 실은 이교도들에 대한 제 2의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건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 신의 뜻' 일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어야 위 모든 질문에 답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결국 신의 장난감존재밖에 되지 않을가 하는 질문에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가 신만 믿으면 된다는 답이 나오는 기독경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할수 밖에 없다고 본다.

 

불교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하늘나라에서 공력이 먼저 떨어져 대범천의 하나일 뿐인 예수그리스도인데 여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많이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만인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비폭력, 집단에 대한 개인의 해방 및 남성에 대한 여성의 해방, 선택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인류애등이 모두 복음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세상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강림하신 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신의 뜻이 위와 같지만 이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이 지구별에 온 지 2000년나 넘었는데도 예수의 말씀이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세상이 예수의 말씀으로 진행되는 것이 더 많은 것은 어쩌면 인간과 예수그리스도는 궁합(?)이 맞지 않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이제는 그만 포기하시고 , 종교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살육과 압박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도 더 이상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순수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 믿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드는 순간 믿는것은 바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교적으로 삶이 고행이고 모든 것이 공이니 삼계를 닦고 탐진치의 번뇌를 끊어 윤회의 사슬에서 해탈하자는 이야기가 인간의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불교의 주장도 믿지 않지만.

 

이 책은 일반인의 교양서로도 좋지만 매우 열심히 " 믿는" 사람들에게도 꼭 읽어볼만 한 책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지음/연암서가 200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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