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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 이규보 vs 최우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8
최연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2월
평점 :
얼마 전 '무신'이라는 역사드라마가 끝났는데 고려시대 최씨 집권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통해 팔만대장경이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시리즈 18권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를 읽게 되면서
최우와 『동국이상국집』의 저자인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
두 사람이
주장하는 입장을 고려해 볼 때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팔만대장경은 1237년부터 16년 동안 8만여 매의 규모로
완성되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무인 세력인 최씨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최씨 정권의 측권이라고 평가받던 이규보가 팔만대장경은
최씨 정권이 아니라 고려의 백성이 단결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최우를 고발하면서 한국사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진다.

재판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대장경을 '초조대장경'이라고
부르고,
'속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버리자 만든
것이다.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판각하기에 좋게 나무를
자르고,
판자를 소금물에 삶고 그늘에서 말리는 과정을 거치며
판각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갖추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목재뿐만 아니라 팔만대장경 제작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져 있는 인명과 법명을 조사한 결과,
대략 2만 7천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들었는가?
다시금 팔만대장경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열려라, 지식창고'에서는 문화재의
의미와 팔만대장경이 고려의 대외적인
자주성을 강조했다는 사실, 세계 기록 유산에 관한 정보를 싣고
있다.
피고와 원고측의 증인으로 나선 정안, 대승, 천기 대사, 수기
대사, 살리타, 다나카의
역사적 증언을 들어보는 재미도 꽤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고려의 시대적 상황을 알게 되면서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