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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ㅣ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37
피터 시스 글.그림, 안인희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장벽은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대상도서로 거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지만 전쟁에 관한 내용으로 초등2학년인 딸아이가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칼데콧 아너 상과 로버트 F.시버트 논픽션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림으로 온갖 정보를 말하는 작가, 피터시스가 어릴 적 겪었던 경험을 그림과 사진, 일기 형식을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딸아이에게 냉전, 공산주의 등과 같은 의미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날카롭고 섬세한 펜 선으로 그려진 그림과 일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 시대를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피터 시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는데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겨우 20년 경험하고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고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이 독일이 점령했던 나라들을 해방시켰는데 소련은 동부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독일의 동쪽 부분을 통제하게 되었고 대량 탈출을 막기 위해서 동유럽의 국경선 대부분을 요새처럼 만들어 길을 가로막고, 베를린 시를 둘로 나누는 장벽을 세운 것입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이 장벽을 '철의 장막'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 책의 소제목은 '철의 장막에서 자유를 꿈꾸다'이고, 장벽 속에 갇힌 어린 아이의 모습 속에서 장벽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갓난 아기인 피터 시스가 빨간색 색연필을 쥐고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붉은 깃발, 붉은 별, 붉은 마우라 등 붉은 색채의 사용으로 공산주의를 잘 나타내고 있는 듯 합니다. 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피터 시스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집에서는 뭐든지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시키는 대로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학교를 통제했기 때문이지요. 러시아어 수업 필수, 정치 교육 필수, 금속 조각 모으기 필수, 종교의식 방해 등등 작은 조각 그림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억압적인 제도와 그러한 제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숨겨야만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터 시스의 일기에서 그가 어릴 적부터 겪었던 시대적 상황을 자세히 적어놓았습니다. 사방에 그가 그렸던 그림들과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들 조각을 빼곡히 실어놓아, 그 당시의 상황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서쪽의 문화가 점차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피터 시스는 비틀즈, 엘비스, 롤링 스톤즈 등의 록 음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록 그룹에 들어가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검열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찾아옵니다. 서양 퇴폐의 상징인 긴 머리를 할 수 있고, 노동 계급의 제복으로 허용된 청바지 또한 입을 수 있게 됩니다. 악기를 직접 만들어 록 음악을 연주하고, 서쪾으로 여행할 수 있는 허가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소련의 침공으로 철의 장막이 내려오고 서쪽 예술은 다시 금지됩니다. 그는 몰래 몰래 많은 사람들과 꿈으로 벽을 가득 채워가며 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됩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경찰들이 와서 지워버리지만 계속 계속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에 넘 마음 아팠고 자유를 그리워하는 그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가 자유를 얻기 위해 꾸었던 끔찍한 꿈 속 장면들, 강을 건너고, 땅굴을 파고, 헹글라이드를 타고, 장대로 가시 덤불을 넘으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긴박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를 상상할 수 있었답니다. 날개 달린 자전거를 타고 어리석음, 의심, 테러, 공포, 부패 등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희망, 진실, 존엄성, 자유, 사랑, 도덕성, 행복, 평등, 존경 등의 지유주의 사회로 넘어간 주인공 피터 시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1989년 11월 드디어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단순히 그림책이 아닌 민족주의 의식을 갖게 해주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에 부러움과 통일이 언제쯤일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보면서 남북 분단의 현실과 함께 얘기 나눈다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