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안온한 날들 -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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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책리뷰

★응급실 의사가 응급실에서 마주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이

궁금하다면 읽기 좋은 에세이 추천

★읽다 보면 그래도 ‘오늘은 제법 안온한

날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책








01

에세이가 읽고 싶은 날




에세이가 읽고 싶었다.

봄이라서, 머리가 아파서,

혹은 지금의 일상이 어딘가

불안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비슷함,

혹은 나보다 더 어두운 모습들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활자로 쓰여진 추상적인 말들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그럴 때면 가끔 에세이를 찾는 편이다.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삶도 괜찮다는

위안을 찾고 싶을 때는

에세이만 한 게 없다 느끼기 때문이다.




<제법 안온한 날들> | 응급실 의사가 전하는 사랑이란..? 힐링 에세이 추천

02

잊었던 과거와 마주하는 것




남궁인 작가의 <제법 안온한 날들>

제목에서 느껴지는 안온하다라는 단어.

그 안온함을 느껴보고 싶어 집어 든 이 책은

알고 보니 일상의 이야기보다는

응급실에 찾아오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담은 에세이였다.





그나저나 응급실이라.

하아...

왠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집어 든 김에 첫 페이지부터

스르륵 한 번 읽어본다.

그리고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작가는

나를 가까운 과거로,

겨우 잊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과거 이야기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2년 전 갑작스레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채

집에서 투병하고 있었던 할머니와

그를 돌보는 할아버지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나도

나의 아버지의 응급실 풍경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리라.




검사는 조용히 진행됐다.

..항생제를 유지하면서 요양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될 것 같았다.



..콧줄을 넣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피를 뿜고 있었다.

정맥류 파열이다.

- 22p-






이제 벌써 작년 이야기가 되어 버린,

내가 가지는 못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졌던 아버지가

당도했던 응급실에서

펼쳐졌을 법한 이야기들.

금방 치료받으면 호전될 거라는

의사의 설명.

하지만 갑작스레 진행된 죽음의 냄새.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의식.






사실 응급실에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런 일은 꼭 일어나고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난다.

괜히 ‘응급‘ 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응급한 순간,

환자 본인도, 그리고 가족도,

모두들 어쩌지 못한 채 상황은 진행되고

정신을 차린 뒤에는 남는 건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환자,

혹은 죽음뿐이다.





<제법 안온한 날들> | 책의 프롤로그 부분. 이 부분은 응급실이 아닌 내용으로 시작해요^^

03

그럼에도 사랑했음을





하지만 <제법 안온한 날들>은

이런 슬픔의 에피소드들을 나열한

그런 응급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사랑을 담은 에세이인데,

이 이야기의 주제 또한 ‘사랑‘이다.




결국 에세이 속 할머니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치료했던 의사들은 모여 앉아

누가 이 죽음에 책임을 질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다가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네는 나와 함께 오래 살았네.

감사했네. 여보. 나는 행복했네.

많은 사람 중에 자네와

평생을 함께해서, 나는 행운아였네.



..먼저 가 있게.

좋은 곳이라고 들었네.

어떻게 우리가 같이 한날한시에 가겠나.

대신 자네가 먼저 간 것일세.˝

- 28p -




이런 이야기가 담긴 글을 읽으며

나는 아버지가 마주했을 응급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어쩌면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듣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늘 응급한 순간을 빠르게 지나간다.

환자는 응급한 수술을 받아야 하고

보호자는 응급한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상황에 휘둘린다.



에세이의 그 응급실 풍경은 아니지만

나의 아버지의 응급실을

상상하며 떠올리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그럼에도 사랑했다고 고백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서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다 보니

참 읽기 힘든 에세이기도 했다.

응급실은 늘 그렇듯,

가고 싶지만은 않은 곳이다.





04

누군가에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




아마도 나의 아버지도 그렇고

응급실에서 생의 마지막을 경험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건 바로

응급실 의사일 것이다.






‘저 마취제를 맞으면

그의 의식은 사라진다....‘

나는 그를 안은 채 그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 순간은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길 순간일 수 있었다.

나는 급하게 환자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말 못 하는 거 알아요. 그러니 들어요.

지금 마지막 순간일 수 있어요.

그래도 자야 돼요. 안 자면 죽거든요.

그러니까 자요. 일어날 수 있게 할게요.˝

-165p-





이러한 마지막을 마주하는 건

아무리 단련된 응급실 의사라고 해도

꽤 힘들 것 같단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아니 그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책에서 쓰고 있지만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쓰는 것일까.

불안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실 오늘은

제법 안온한 날이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으며

나의 불안과 슬픔, 우울과 초조함을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대듯

한 번 책과 맞대어본다.





...내일은 제법

안온한 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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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14 2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를 읽으면 왠지 그 작가에 대해 친근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좀 더 깊은 내면의 이야기가 담겨서일까요. 가필드님 내일도 안온한 날 보내시길 *^^*

가필드 2022-09-14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안온날 보내시고 계실까요? ^^작가분이 응급실에서 생명이 넘어가는 일들을 단순히 일처리가 아닌 생명을 다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어서인지 내면 깊이 느낄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번 한주도 안온한 나날 되시길요 ☺️ 따뜻한 공감글 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