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0 - 미국 : 미국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10
이원복 글 그림 / 김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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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미국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지금 미국이 워낙 발달해서 예전에는 원래 영국사람들이 살았던 곳이고 더 전에는 인디언들이 살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내가 살게 된 사실 

우리는 첫 미국인과의 접촉이 1855년에 이루어졌지만 끝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청나라로 보냈으니 공식 접촉은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접촉이 우리보다 빨랐다.   중국은 아편쟁으로 서양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이후 미국과의 외교적 접촉이 이루어져서 1844년에는 이미 망하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1853년 흑선을 끌고 온 페리 제독의 개국 요구를 받고 1854년에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맺고 교류를 시작했다   처음 만난 미국인은 미국인인 줄도 몰라서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가 미국인인 줄 알고 만난 첫 미국인에 대한 기억이 결코 좋은 것은 못되었던 것은 우리가 처음 만난 미국이 바로 침략자 미국이었다.    

1871년 5월, 미 해국의 존 로저스 제독은 다섯 척의 군함을 이끌고 한강 어귀 강화도를 공격, 조선군과 충돌하여 전투 끝에 조선군 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실권자 대원군은 이곳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는데 이 사건을 신미양요라고 한다.    

대통령 제도를 세계에서 처음 실시한 나라가 미국이다.   4년에 한 번씩 국민들의 투표, 즉 선거에 의해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제도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그 순간부터 당선자는 다음 임기를 위해 경쟁자는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4년에 걸친 대통령 선거 대장정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항공기 테러로 공격당하자 그 다음날로 성조기가 수십 배나 더 팔려나가고 자동차, 상점, 가정집 할 것 없이 성조기가 나부낀 것만 보아도 미국인의 애국심이 국기 사랑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가 변동하는 국경으로 상징되듯 미국의 영토가 커지고 연방에 가입하는 주가 늘어 날수록 미국의 국기는 여러 차례 그 모습이 바뀌었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말 그대로 미국인이며 미국 국민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다.   영주권자는 외국인으로서 미국에 영주할 권리를 획득한 사람으로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외국인 등록증을 소지한 사람이다.    

미국도 원래는 발전이 아예 되지 않았지만 영국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국기도 만들어지고 국가도 생기면서 점점 발전 하니까 땅이 넓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이 정말 강대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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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5 - 대한제국부터 통일운동시대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엮음 / 해와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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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3월 1일을 맞아 정말로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우리나라가 발전은 비록늦고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게 지배도 많이 당했지만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것은 모두 조상님들의 지혜와 용기와 자신감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 한것 같다.    

내가 알게 된 사실 

대한 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약 13년 동안 이어졌다.   대한 제국은 고종 황제와 가장 관련되어있고 그 중심 터전은 경운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운궁은 임진왜란 후 수백 년 동안 조선의 행국으로 쓰이다가 고종 황제가 정식 궁전으로 삼아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나랏일을 이끌었던 곳이다.    

덕수궁 중화전은 1902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황제의 즉위식을 치르거나 외국 사신을 맞는 등 덕수궁의 정전이었다.   원래 2층이었던 덕수궁은 1904년에 큰 불이 나면서 불에 타 없어졌지만 1906년에 새로 지은 1층짜리 건물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석조전은 우리나라 궁궐 건물에서 보기 드문 서양식 전각으로 유명하다.   돌로 지은 건물이란 뜻으로 석조전이라고 부르는데 1900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에 완성이 되었다.   이 건물은 영국인이면서 대한 제국의 재정 고문이었던 브라운이 고종에게 건의하여 짓게 되었다.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이 넘어가자 의병들은 곳곳에서 일본 군대와 헌병들에 맞서 싸웠다.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는 비밀 조직까지 생겨났다.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4월에 대구에서 시작된 뒤로 온 나라롤 퍼져 나갔다.    

조선 시대의 의병들이 큰 활약을 펼친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일본의 침략을 미처 대비하지 못한 관군들이 곳곳에서 밀리자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다.   그 후 조선 후기와 대한 제국 ㅅ기를 거치면서 다시 의병들이 떨쳐 일어났다.    

안중근은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러시아로 갔다.   러시아에 있는 한 마을에서 약 4천 명에 이르는 의병을 총지휘하는 얀치헤 의병대가 만들어졌다.   안중근은 그 부대의 참모 중장으로 뽑혀 의병들의 군사 훈련을 맡았다.    

1919년 3월 1일에 독립 서언과 만세 운동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약 5천 명이나 되는 시민과 학생들이 탑골 공원을 가득 메웠다.   정재용이라는 학생이 민족 대표를 대신해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다.   군중들이 다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수백 명씩 무리를 지어 만세를 부르며 서울 시내를 행진했다.     3월 1일 정오부터 시작된 만세 운동은 오랬동안 계속되었다.    

오늘이 3월 1일인데 이 책을 읽은 후에 조상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어서 지금 우리가 그 피를 물려 받아서 이렇게 나라가 발전한 것같고 조상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내가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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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키라의 만화 경제 교과서 1 - 알기 쉬운 경제 원리, 75개 키워드로 만나는 경제의 모든 것 열두 살 키라의 만화 경제 교과서
최선규 글, 추연규 그림 / 을파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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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책을 정말 쉽고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특히 만화라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이다.     이 책은 너무 쉽고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알게 된 것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게 된 사실 

경제는 무조건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정책이 중요하기는 하다.   경제는 나라에 있는 국민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경제 주체는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로 나뉘어 진다.    가계는 가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활 대부분이 경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서로 활발하게 상호 작용을 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또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받은 소득으로 물건을 사는 것도 가계에서 하는 경제 활동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얻은 소득 중 일부를 정부에 세금으로 내는 것도 가계의 중요한 역할 이다.   두 번째 경제 주체인 기업은 가계로부터 제공받는 노동력에 자신들의 자본을 합해서 물건을 생산한다.   또, 기업은 생산한 물건을 팔아서 얻은 소득으로 가계에 월급을 주고 정부에 세금을 낸다.    

우리나라 기업은 반도체나 자동차를 수출ㅇ해서 외화를 많이 벌기도한다.   기업이 수출을 잘 할 수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이다.   세번째 경제 주체인 정부는 가계나 기업으로부터 받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직접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보다 편리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고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우리나라 기업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정부가 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주체 모두 자기 역할을 잘해야한다.   경제 주체들이 톱니바퀴처럼 함께 도는 것 처럼 우리나라 경제도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화폐는 보관의 편리성이라고한다.   만약 부자들이 돈으로 받지 않고 어떤 한 물건으로만 받았을 경우 저장의 편리성이 떨어지므로 돈을 사용한 뒤로는 저장의 편리성이 생겨났다.    

공유 재산은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소유한 것으로 온 국민이 함께 쓰는 재산을 말한다.   재산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빼앗기지 않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쓸 권리도 포함된다.    

열 두 살 키라의 경제 교과서라고 해서 정말 시시하고 재미있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점점 의문이 가는 것도 생기고 재미는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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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4 - 임진왜란부터 갑오개혁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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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고 역사가 왜 재미있는지를 알것 같았다.   물론 현재도 역사가 지속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지금 시대에는 비하면 발달도 덜 되있었지만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고 전쟁도 많이 일어난 것같다.    

내가 알게 된 사실 

우리나라의 최대의 비극은 물론 임진왜란일 것이다.   1592년 일본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한 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옥포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후 한산도 앞바다에서 수십 척의 일본 함선을 침몰 시켰다.    

1593년에는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 만명의 의병과 힘을 합쳐 3만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었기에 한양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남쪽 해안으로 물러갔다.   정유재란은 일본이 명나라와의 협상이 깨지자 2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해 조선을 다시 침략한 것을 말한다.     

일본의 군사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죽자 일본군은 서둘러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도망가는 일본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크게 물리쳤지만 이순신 장군은 최후를 맞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1627년 후금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며 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조선에 쳐들어 왔다.   물론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핑계였다.   실제로는 명나라와 전쟁을 치르기에 앞서 자신들의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을 먼저 잠재워야 했었다.    

1636년 겨울에 청나라의 태종은 군사 10만 명을 이끌고 조선을 다시 침략해왔다.   청 태종은 임경업 장군이 굳게 지키고 있던 백마산성을 피해 한양으로 방향을 돌렸다.   조선 조정은 청의 군대가 개성까지 쳐들어와서야 청의 침입 사실을 알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지나고 난후에 조선에서는 남자를 여자보다 귀히 여기는 남존여비 사상이 퍼져 나갔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 예법을 따랐기 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 이라던지 남존여비, 부부유별 등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했다.   임진왜란 이후 사림파가 흐트러진 유교 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최제우가 천주교에 반대하며 우리 전통 사상을 담은 것인 동학은 1860년에 창시 되었다.   1861년에는 김정호가 자신이 직접 조선 8도를 걸어서 지도를 27년간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이다.    

역사가 너무 많은 시간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니까 역사 기록에 남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같다.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 길이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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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3 - 조선 건국부터 을사사화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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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조선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았고 그때 어떤 일이 일어 났는 지도 알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안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시대가 있어서 글을 쉽게 쓸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게 된 사실 

한양 도성은 처음부터 철저한 설계로 지은 계획 도시이다.   인구가 약 10만 명 정도였으니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대도시에 속했다.   한양 도성이 완성되자 대부분 사람들이 개경에서 온 관리들이나 공을 세운 사람들, 귀족들이었다.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정한 양반 중심의 사회였다.   양반은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하는 사람과 앞으로 벼슬을 할 수 있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이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다.   양인에는 직업에 따라 선비, 농민, 기술자, 상인의 구별을 두었다.   왕권이 확고해지고 관료 조직이 정비되면서 높은 벼스에 오른 관리들은 사회 지배층으로서 양반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16세기 이후 노비들은 군대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돈을 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상민으로 신분을 상승하였다.   뒷날 조선 후기에는 6만 명의 공노비를 양인 신분으로 올려 준 일도 생겼다.   그리고 차별적인 신분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1420년에는 집현전을 다시 설치하였다.   한때 폐지했던 집현전을 다시 설치하여 새롭고 대단한 인재들을 등용해 수많은 책을 펴냈다.   그리고 9년후 전국의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농사 경험을 듣거나 보고 그 방법을 책으로 엮어만든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세종대왕은 천한 신분인 장영실이 인재임을 눈치채고 신분의 차별 없이 등용하여 측우기, 자격루 등의 천문 기구, 금속 활자, 화포의 주조 및 화약 제조 기술을 발전 시켜왔다.     

세종은 최만리를 비롯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한 신하들을 모두 귀양 보냈다.   그리고 젊은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백성들에게 한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버을 연구하게 했다.  그 뒤에도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도 무려 3년 동안 반포하지 못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과거 시험 과목에 넣기도 하였다.   관리들도 훈민정음을 알아야 한다며 따로 시험을 치르게 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제일 먼저 만든 책이 용비어천가이다.    

조선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훨씬 길었고 많은 일이 일어났고 좋은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 것같다.   그리고 조선시대가 현대 시대 바로 전이라서인지 친근감이 더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많이 알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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