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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4 - 임진왜란부터 갑오개혁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7년 1월
평점 :
내가 이 책을 읽고 역사가 왜 재미있는지를 알것 같았다. 물론 현재도 역사가 지속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지금 시대에는 비하면 발달도 덜 되있었지만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고 전쟁도 많이 일어난 것같다.
내가 알게 된 사실
우리나라의 최대의 비극은 물론 임진왜란일 것이다. 1592년 일본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한 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옥포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후 한산도 앞바다에서 수십 척의 일본 함선을 침몰 시켰다.
1593년에는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 만명의 의병과 힘을 합쳐 3만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었기에 한양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남쪽 해안으로 물러갔다. 정유재란은 일본이 명나라와의 협상이 깨지자 2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해 조선을 다시 침략한 것을 말한다.
일본의 군사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죽자 일본군은 서둘러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도망가는 일본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크게 물리쳤지만 이순신 장군은 최후를 맞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1627년 후금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던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며 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조선에 쳐들어 왔다. 물론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핑계였다. 실제로는 명나라와 전쟁을 치르기에 앞서 자신들의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을 먼저 잠재워야 했었다.
1636년 겨울에 청나라의 태종은 군사 10만 명을 이끌고 조선을 다시 침략해왔다. 청 태종은 임경업 장군이 굳게 지키고 있던 백마산성을 피해 한양으로 방향을 돌렸다. 조선 조정은 청의 군대가 개성까지 쳐들어와서야 청의 침입 사실을 알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지나고 난후에 조선에서는 남자를 여자보다 귀히 여기는 남존여비 사상이 퍼져 나갔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 예법을 따랐기 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 이라던지 남존여비, 부부유별 등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했다. 임진왜란 이후 사림파가 흐트러진 유교 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최제우가 천주교에 반대하며 우리 전통 사상을 담은 것인 동학은 1860년에 창시 되었다. 1861년에는 김정호가 자신이 직접 조선 8도를 걸어서 지도를 27년간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이다.
역사가 너무 많은 시간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니까 역사 기록에 남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같다.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 길이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