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3 - 세계 제국이 등장하다 (900년~1500년)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3
강미경 지음, 허구.김수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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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고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을 몇번 했다.   내용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은 것 같지만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된것 같다.   그래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어려웠다.    

당이 농민들의 반란으로 흔들리던 9세기 말,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은 서프랑크, 동프랑크로 갈라졌다.   게다가 외적의 침략에 시달리기도 했다.   북쪽에서는 바이킹이라 불리는 노르만 족이 침략해 왔고, 동쪽에서는 유목민 마자르 족이, 남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밀어닥쳤다.    

가톨릭 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교황이다.   그런데 1000년쯤 전에는 교황이 크리스트 교의 우두머리일 뿐 아니라 서유럽 최고의 권력자 였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주로 목축과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물자가 모자랐다.   그들이 모자란 물자는 얻는 방법이 두 가지가있다.   만리장성 남쪽의 중국 농경민과 교역을 하거나 농경 지역을 약탈하는 것이다.    

2차 동유럽 원정에 나섰던 몽골 군은 러시아의 여러 공국들을 무너뜨린 뒤, 폴란드와 헝가리로 향했다.   폴란드는 러시아 공국들이 세워지던 무렵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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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2 - 비단길이 번영을 이끌다 (300년~1000년)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2
최진열 지음, 서영아.김수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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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배운 것이 나오는 거라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돼는 부분이 있었다.   아프로유라시아라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것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유목민들은 넓은 땅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살았다.   유목민들은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말을 길들여 타고 다녔다.   그 뒤에 유목민들은 농경민의 마을에 쳐들어가 양식과 생필품같은 것을 쉽게 뺏을 수 있었다.   농경민은 돈만 많이 있고 싸움은 못하지만 유목민은 싸움을 정말 잘하기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앞에 한 남자가 말을 타고 나타났는데 그 남자가 다짜고짜해마다 금 300킬로그램을 바치라고 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에 다부진 몸매를 지닌 훈 제국의 왕 아틸라였다.   동로마 제국 사람 가운데 아두도 감히 아틸라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면서 평화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 사람들중 가장 많은 종교는 힌두 교이다.   힌두 교가 인도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굽타 제국 시대였다.   힌두 교는 브라만 교에서 시작되었다.   브라만 교는 우주를 만든 바르흐마를 믿는 종교로,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인도 사람들이 믿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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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1 - 고대 문명이 꽃피다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1
강선주 지음, 강전희.김수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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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옛날에 지구가 어떻게 탄생 했는지 알게 되었고, 인류가 어떻게 탄생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지구는 약 46억 살 정도 되었을 것 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발굴 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광 물이 44억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광물이 지구의 나이보다 조금 적을 것 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생물체는 20억 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좀 더 복잡한 미생물로 진화했다.   그리고 다시 10억 년이 흐른 뒤 자손을 만들 수 있는 것, 즉 생물이 되었다.   이렇게 생물이 처음 지구에 나타나기까지는 30여 년이 라는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최초의 인류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특히 뗀석기를 사용했고 구석기 시대는 250만 년 가까이 계속 되었지만 호모 하빌리스가 250만년 전에 나타났다.   호모 하빌리스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14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나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아주 일찍부터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물건을 교환하는 교역에 나섰다.   농사나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거나, 지구라트 같은 대규모 건축물을 지으려면 나무나 돌 또는 쇠붙이가 꼭 필요했는데 수메르 지역은 평야 지대라 그런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200년 무렵, 도리아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그리스로 침입해 왔다.   그들은 지금 러시아 남쪽에 살던 유목 민족인데, 철제 무기와 전차로 무장하고 쳐들어 왔다.   당시 번영을 누리던 미케네와 여러 도시는 파괴되고, 약탈에 시달렸다.  

그리스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마을들은 점점 커지더니 도시 국가로 발전했다.   이 도시 국가들을 폴리스라고 한다.   성이나 요새를 뜻하는 폴리스라는 말이 도시 국가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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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5 - 대한제국부터 남북 화해 시대까지 12살부터 읽는 책과함께 역사편지
박은봉 지음, 류동필 외 그림 / 웅진주니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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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제국부터 남북 화해 시대까지있는데 남북화해 시대가 바로 휴전선을 만든 때이다.   그때가 바로 6 25전쟁이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던 우리나라가 일본과 직접 싸우기 위해 의병이 된 사람,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일본의 침략을 알리는 사람, 나라르 구하려면 실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우는 사람, 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사람등은 일본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겠다는 것이다.    

3월 1일에 일어난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 때문에 그때 일어났다.   고종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일본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 일본에 끌려간 셋째 아들 영친왕이 일본 공주와 결혼 하게 된 것을 못마땅히 여긴 끝에 자살했다는 소문등이 있었다.    

어린이 날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금과 달랐다.   그때는 어린이는 어른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순종해야 하는 존재였다.    가난에 쫓긴 나머지 버림받거나 공장에 들어가 고된 일을 해야 하는 어린이 도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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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4 -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성립까지 12살부터 읽는 책과함께 역사편지
박은봉 지음, 류동필 외 그림 / 웅진주니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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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를 아는 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의 나라가 처음에는 어떻게 되었었는지 알게 되었고 대한 제국 성립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경기도 수원에는 화성이 있다.   화성은 조선의 22대왕인 정조가 심열을 기울여 건설한 신도시였다.   수도 한양만큼 크지는 않지만, 한양의 남쪽에 자리잡고 안자 한양을 든든히 지켜준다.    

실학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개혁 사상이다.   왜란과 호란이 끝난 뒤, 조선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해서 전쟁으로 생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변화이다.   그때 정치를 맡고 있던 지배층들은 성리학자이면서 정치가를 겸한 당시의 지배층은 고리타분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실학자라고 불린것이다.    

조선 후기는 변화의 시대였다.   특히 변화한 것은 백성들이 문화와 예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일이다.   백성이 주인공이 된 문화와 예술을 통틀어 서민 문화라고 한다.   이전까지의 양반 중심 문화와 구별하는 뜻으로 그렇게 불린다.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성리학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성리학만이 가장 옳고 바른 학문이요 사상이라면서 다른 것은 야만스런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멸시했다   그래서 조선의 지배층은 성리학이 아닌 다른 사상을 사학이라고 부르며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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