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암행어사 허신행 미래의 고전 50
유순희 지음 / 푸른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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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하면 바로 뒤이어 떠오르는 '박문수'라는 이름을

아마 요즘의 아이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강직하고도 지혜롭고 배짱있는, 배트맨이나 슈퍼맨 못지 않게 멋진 오빠,

그 '누더기 도포의 사나이'에 대한 흠모를 마음에서 지워낼 수 없으리라.



그런데, 요 책 봐라~

어허!

신성하고도 고귀한 '암행어사'라는 명사 앞에 '불량'이 붙었다!

이건 거의 '추락천사' 정도의 부조화이자 파격인데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편으로 얼마나 멋진 '불량'이실지 기대도 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니

첫장부터 임금과의 만남이다.

그것도 독대!

영광이었던 것은 잠시였던, 청천벽력 같은 암행어사 임명.


'아니 가겠사옵니다.'라는 첫장 제목에 '야, 너무하네.'했었지만

알고 보니,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아직 대과에 붙지도 못해 공부중인 신참에다 명문가 삼대독자로 곱디곱게 자라온 화초 총각이다.

거기다, 이름도 멋지고 임금이 직접 뽑는 최고명예직인 암행어사는 

실상으로는 고생바가지에 전염병이나 객사로 죽어 돌아오는 경우도 열 중에 일곱이니

나라도 진짜 마음은 '아니 가겠사옵니다.'일 것 같다.


그러나, 어명은 어명....

귀양길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거들기 위해 집에서 불러온 머슴 돌금이.

열서너 살 밖에 되지 않지만 당차고 무술도 연마해 뚝심도 두둑한 이 '어린 종놈'이

사사건건 허신행의 속을 긁어놓는다.

하지만, '글도 모르는 무식한 종놈'이 때마다 허신행의 목숨을 구하고 서서히 그를 깨쳐 놓는다.


그리고, 평생 그토록 많은 글을 읽고 43만 자의 경구며 수 백 편의 시를 외면서는 알지 못했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신음과 울분, 절망에 눈이 뜨이기 시작한다.

거기다 자신처럼 '소학과 삼강오륜을 닳고 닳도록 읊조리며 외우던 양반들'이

권력을 위해 임금을 암살하려고까지 하는 것에 참담함을 느끼며

진짜 어사다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나리가 아침마다 읽고 외우는 글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유익하며, 즐거운데...

그런 글들을 날마다 닭 모이 쪼듯 먹고사는 양반들이 글과는 정반대로 사니,

너무나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구만요."

허신행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돌금이의 이 한 마디에

"내 말이......"하고 대답하고 있다.


지금도 사회는 저 조선시대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재력과 권력은 세습되고, 고학력자들이 사회지도층 자리에 앉는다.

'공자 왈, 맹자 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학업에서 성과를 이루고

지식과 견문은 그 때의 수백, 수천 배는 능가할진대,

왜 이 사회의 고통과 문제들은 조금도 덜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순간 허신행은 움찔했다.

 돌금이의 손은 자신도 피는 뜨겁고, 심장은 펄떡펄떡 뛰고 있는, 너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p.95)'



우린 아직 손을 잡지 않은 것이다.

잡을 필요도 없었고, 그런 걸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으니까.

더럽다고, 뭔가 묻는다고 생각했는지도......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공부해도

내 몸뚱이 하나를 넘어서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어명'이 필요한가 보다.

아무리 싫어도, 두려워도 거역할 수 없는 명이.


각자, 지금부터라도 내 삶의 주군이 내린 어명-

'가라. 만나라. 손 잡아라. 고쳐라.'

를 새기고 산다면

굶주리고 울고 억울한 세상의 영역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아직은 '불량'인 우리가 조금은 멋져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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