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의 아름다운 야생 동물 이야기 1218 보물창고 9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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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마음을 바다 깊숙이 침몰시킨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에 거듭 거듭 고개를 끄덕였던 건.
야생은, 자연은 그대로도 너무나 아름답고 조화롭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그 질서를 제멋대로 파괴하고 있을 뿐.

이 책에 실린 작은 생명들 하나 하나가 자연의 위대한 지혜의 일부분이다. 

'은색 점박이 까마귀 실버스팟'이 까마귀 무리에게 내리는 지시들은
거창한 문건과 방만한 지휘체계, 거기에 사리사욕 가득한 인간사회의 그것들보다
훨씬 정확하고 적절하며, 실수가 없다.
 



조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으며 군인처럼 훈련을 받고
언제나 근무를 서고 전쟁을 준비하며, 항상 서로에게 의지하는 까마귀들의 사회는
얼마나 감탄스러운지.
그 자신,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어린 까마귀들을 성숙한 어른 까마귀로 교육시키는 실버스팟.
이 운명공동체의 체계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구성원들의 애정은 부러울 정도다.


우리가 그저 귀여운 그림책 속 주인공으로만 떠올리는 토끼들의 삶도 녹록하지 않다.

'깔죽귀 솜꼬리토끼 래기러그'의 바지런한 삶이 이야기하듯

연약하고 작은 그들은 오로지 부모로부터 배운 '삶의 기술'을 끊임없이 다듬고, 개발, 기억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진다. 

과연 우리 인간은 '삶 자체'를 위해,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위해 뭔가를 배우고 기억하고 가르치고는 있는지 부끄러워진다.




래기러그를 키우고 가르치고 보호했던 엄마토끼 몰리는 여우를 피해 도망가다 차가운 연못 물에 빠져 영원히 잠든다. 아들과는 작별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그러나, 래기러그 안에 자신을 온전히 남긴 채.





'그저 자신이 속한 작은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영웅'


시튼이 평생을 야생동물들에게 매료되어 살았던 것은 

바로 그들이 주는 이 감동들 때문 아니었을까?

나 또한 이 책에서 만난 모두에게 마음 속으로부터의 존경심을 품게 되었으니.



숱한 동화들에서 약삭빠르고 꾀많은 동물의 대명사격인 여우는 

또 그의 생존에 필수적인 사냥꾼으로서의 지혜를 자식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계속되는 암탉 도둑질에 분노한 시튼의 삼촌은 여우 소탕작전을 벌인 끝에

세 마리 새끼는 사냥개에게 죽고, 막내 여우만 살아남아 마당에 쇠사슬로 묶인다.

매일 밤 새끼를 찾아와 젖을 주고 갓 잡은 암탉을 가져다주는 어미 여우 빅슨.

그러나 아무리 물어뜯어도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빅슨은 충격적인 선택을 한다.




'오로지 새끼를 자유롭게 해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던 빅슨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

그는 독 묻은 미끼를 먹여 막내 여우를 자유롭게 한다.

모성애보다 더 고매한 것......

그것은 자유였다.

자유가 아니면, 삶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빅슨은 알았던 것이다. 



아름다운 '야생마 무스탕 페이서'는 자유 그 자체의 삶을 산다.

지칠 줄 모르고 초원을 달리는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은 인간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고, 

많은 카우보이들이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다.

어떤 신의 보호라도 받는 듯 수많은 함정과 추격도 벗어나지만,

한 늙은 노인의 간교한 계교에 넘어가 잡히고 어깨에 낙인이 찍힌 그는

허공을 향해 뛰어내려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된다.


얼마나 허무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인지.

도대체 인간이 무슨 권리가 있기에......



 야생 동물들은 도덕적 권리도, 법적 권리도 없는가?

 단지 인간의 말을 못한다고 해서 친구와도 같은 생명에게 그토록 두려운 고통을 줄 권리가

 사람에게 있나?       (p.262)



아무리 아름답고 자유로운 생명체라도,

아니, 그것이 아름답고 자유로울수록

인간에겐 비싼 값을 매겨 팔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시튼이 이 책을 처음 출간한 것은 1898년이다.

12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지금, 

인간은 어떠한가?

이제 같은 인간의 도덕적 권리, 법적 권리도 짓밟을 수 있는 잔악한 '종'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무지함 때문에, 그들을 모르기에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었을 뿐.


어떤 야생동물들에게,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로 비춰질 수 있을까?

순수한 삶의 열정으로 하루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며 가족을 지키고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가?


오히려 내가 속한 이 비야생, 반자연의 인간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야생동물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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