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 Jean 푸른도서관 48
문부일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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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Jean>이라는 제목이 강렬하다.

청바지를 찢으며 설레고 신나는, 반항적이면서도 순수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찢어진' 마음을 마주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같이 나를 맞는다.

 

첫번째 이야기 <알바학 개론>은 제목부터 유쾌하다.

중학교 삼학년 때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알바를 해온 준이.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 탓에 학교에선 문제아 명단에 오르지만, 알바 현장에선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프랜차이즈계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당찬 아이다. 자신처럼 '프로 알바'의 길을 걷게 될 후학들을 위해 이론과 실습 사례로 꽉 찬 '알바학 개론'을 집필할 계획까지 지닌, 요즘 말로 '개념소년'이다. 순수한 예술가의 혼을 가진 엉뚱한 아리스트 봉이 운영하는, 무너져가는 '꿈의 궁전'을 일으켜세우는 준이의 활약이 읽는 이들까지 흐뭇하게 한다. 그렇지만, 돈을 적게 쓰고 이익을 많이 남겨야 한다거나, 능력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겠다고 어설픈 연기를 하며 임금협상을 벌이는 준이의 '프로페셔널'은 우리의 낯을 붉어지게 한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어른들에게 배운 것에 다름아닌 것이므로.

이러한 준이 모든 일의 기본은 따스한 마음과 정직, 겸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꿈의 궁전'은 그야말로 준이 꿈을, 아니 삶을 이뤄갈 수 있는 자양분을 심어준다. 우리 아이들도 꼭 배웠으면 하는 '인생개론'을.

 

<찢어,  Jean>은 '까농남(까칠한 농촌 남자)' 아빠 때문에  '꽃남'의 길을 갈 수 없어 괴로운 멋쟁이 고교생 한울이의 반항기이다. 또한 공부에 한이 맺힌 듯 주경야독하며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 캐릭터인 이 '훈장님' 아빠가 20여년 가까이 철저히 숨겨온 실체가 벗겨지는 반전드라마다. 소원하던 찢어진 청바지는 하루도 제대로 입어보지 못한 채 정말 제대로 찢어져버리고 말지만, 그토록 멀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아빠와의 '물보다 진한 피'를 찾은 한울이의 마지막 웃음이 따뜻하고 유쾌하다.

 

<이토록 사소한 장난>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짖궂은 장난에 며칠을 고민하고 맘 아팠던 기억도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동창회에서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던 그 친구에게 "그 땐 왜 그랬어?"하고 묻고 싶은 마음을 몇 시간이나 꾹 참았던 기억도. 기억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건, 그저 '정말 사소한 장난'이었을 테니까.

힘든 가정형편에 외모도 보잘것없고 답답하리만큼 착한 성격에 아이들의 심부름꾼을 도맡아하는 '퀵서비스맨' 은우. 친구들의 잔인한 장난에 목숨을 끊고 나서도, 친구들은 자기네가 한 짓이 들킬까 하는 조바심 밖에 없다. 그리고, 일주일 뒤엔 다른 퀵서비스맨을 만든다.

의경에서 구타당하고 그걸 보고했다고 왕따를 당하는, 꼭 은우 같은 성격의 형이 똑같이 목숨을 버린 다음에야, 노준이는 처음으로 은우의 마음을 헤아리고 미안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 세계의 모사품이다.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은 거침없이 짓밟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가 그대로 비춰진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이런 심성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공기처럼 스며들 뿐.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게 하는 이야기다.

 

<고소 취하>의 기준이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협의 이혼에 서로 맞고소한 부모님 때문에 경찰서에 증인으로 출두하라는 전화에 어이가 없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 죄로 부모님을 고소하겠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복수(?)까지 계획한다. 그러다, 다른 불행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의 행복도 중요하다며 스스로 화해를 청하게 되는 기준이의 어른스러움이 기특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살리에르, 웃다>는 제목만으로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르의 슬픔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었으니까. 시를 사랑하는 소년 수혁이에게 모차르트는 같은 문예부, 거기다 그 무서운 '엄마 친구의 아들' 나문호이다. 백일장에서 매번 상을 타는 문호 앞에서는 호들갑을 떨며 축하하지만, 비참함을 어찌할 줄 모르는 수혁.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서 낙담과 슬픔 속에서도 시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는 수혁이가 참 이쁘다. 그런 수혁이의 순수함을 물들인 건, 좋은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겠다는 뚜렷한 목표 아래 아카데미에서 모인 '예비 문학 특기자'들이다. 똑똑한 아이들의 보석 같은 정보에 홀려 자신과 자신의 시를 잊어버리는 수혁에게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소설 속의 '시인선서'가 느슨하게 살아온 나에게도 따끔하게 날아온다.

 

<한파주의보>와는 두번째 만남이었는데, 반가웠다. 날씨도 추운데 2주 전에 아빠와 결혼한 새엄마와의 사이에 부는 찬 바람에 더 추운 기분이 드는 진오. 자기는 너무 싫어하는 팥과 마늘을 좋아하는 새엄마에 맞춰 갈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둘이서만 보내게 된 새해 첫날, 춥고, 아프고, 무섭고, 난감하고, 파란만장했던 그 하룻밤을 겪으며 진오와 아줌마는 같이 찜질방에 갈 정도로 친해진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 정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의 따스함에 우리 마음까지 찜질방에 따라간 것 같다.

 

<6시 59분>의 완수는 이름대로 뭐든 마음먹으면 '완수'해낼 것 같은 열혈 중학생이다. 이 소설은, 소원하던 저녁 일곱 시 제주도행 여객선에 올라 출발을 기다리는 그 시간까지의 이야기다. 하루종일 돈까스를 튀기며 느끼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아빠를 보며 '나도 아빠처럼 살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다.'는 고백에 나의 그 시절이 겹쳐진다. 지금 엄마, 아빠처럼 되는 것은 무조건 끔찍한 일이던, 절대로 엄마, 아빠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 때들을 지나온 지금 생각하면, 사실 그 '처럼'의 의미도 잘 몰랐었다. 완수는 자신의 잘못까지 품어주는 따스한 아빠의 다른 일면을 보며 아마도 '아빠처럼'에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그 때까지 보이지 않던 먼 세상이 눈 앞에 열리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완수에게, 이 세계의 모든 소년소녀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부러움을 느낀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에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언제부터였을까?

그 이름만으로 아픈 이야기든, 유쾌한 이야기든...모든 이야기는  희망이라는 색을 입게 된다.

인간은 '평생을 자라는 생명체'일 것이다.

무엇을 잃든, 어떤 배신을 겪든... 그것을 채우고도 남아 넘치는 배움이 따라온다.

그 배움을 지나치지 않는 한, 우리는 늘 희망찬 존재들이다.

아이들이 눈부신 것은 그 희망과 성장 때문일 것이다.

 

우리 생의 모든 순간이 '6시 59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눈만 돌리면 더 넓고 푸르른 세상을 안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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