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첫장의 첫 문장부터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니, 섹시 코드에 질려버린 여성들을 위한 소설이라더니,

처음부터 이 무슨 노골적인 대사들로 가득 찬 정사 장면이란 말인가?

거기다, "너는 어떤 남자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해.

진짜로 진짜로 아무 짝에도 못쓸, 몹쓸 여자야. "하고  독설을 퍼붓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게도 여주인공의 허벅지 사이 깊은 곳에 자리잡은 종기...

그것도 사람 얼굴 모양으로 잔인하고 냉혹한 눈빛을 쏘아대는 인면창이다.

 

수녀원에서 자라 거기서 몸에 밴 계율을 지키며 검소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그래서 이름도 없이, 아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로 불릴 만큼 정숙한 그녀를

완전히 여자로서 몹쓸 물건이라고 비웃는 인면창 '고가 씨'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들 마음 깊이 자리잡은

'섹시함에 대한 강박 관념'일 것이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10여년 전만 해도

'섹시하다'는 말은 연예인들에게나 써먹는 말이었지,

평범한 사람들에겐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금지어였다.

말 그대로 '색기를 풍긴다. '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단어 만한 칭찬도 없다. 

'섹시하다'라는 형용사는 이제 광기에 가까운 열풍의  '동사'가 되어

세상을 움직인다.

고가 씨의 말대로 '섹시하지 않은 여자는 인간 세상과는 인연이 없는 여자'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그 주변의 사람들의 성욕까지도 말소시키고 

멀쩡한 바이브레이션을 두 동강 내는 프란체스코의 '금욕적 초능력'은

읽는 내내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를 하게 하고,

예상치도 못한 순간 그 능력이 발휘될 때마다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다 자신은 누릴 수 없는 행복한 연인들의 에로스적 사랑을 위해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내어주고, 그러며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는

더없이 순진하며 온화한 프란체스코를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어느새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그녀 안의 냉혹한 고가 씨 또한 엄청난 반전을 맞닥뜨리게 된다.

 

상상치도 못한 설정과 사건들,

그리고 상식을 뒤엎는 노골적이고도 순수(?)한 사랑과 에로스에 대한 대화들.

하지만, 그 안엔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지켜가는 사람의 가치를 담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소설'이라 하겠다.

새로운 소설을 발견하고픈 모험적 독서가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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