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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 김연수는 죽을 줄 알면서도 뻔히 그 길을 가는 이유가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영혼에 새겨진 그 말 때문에 그는 이 일을 걸어간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 번 더 말할 때,우는 얼굴로 더움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이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운명이란 게 이런 걸까, 절박함이란 게 이런 걸까, 이 길을 걷는 동안 무수히 고뇌하고 찾아가는 수많은 방법론들도 결국엔 이 절박함에서 나오고 운명이란 걸 알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일인가,
그동안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보다 소설가의 일에 대한 더 치열한 고민을 안겨 준 책이었다. 내 영혼에 새겨진 울림은 무엇일까? 그 죽음의 길인줄 알면서도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수많은 방법론들을 밑줄 그으며 읽었지만 내내 영혼에 새겨진 문장의 이야기가 마음을 맴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건 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보다 먼저 살았고, 나보다 먼저 소설을 썼던 소설가들이 그들의 소설에 무수히 남겨놓은 바로 그 문장이었으니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 번 더 말할 때, 우는 얼굴로 더움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이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맨 앞장에 인용한 요한복음 12장 24절의 그 말.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6-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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