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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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이다. 그런데 여운이 짧지 않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전쟁, 내 편이 아니면 적인 상황에서 같은 인간임을 느끼는 순간은 처절하고 처연하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 삼촌, 숙모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다. 하지만 아픔을 잊으려 하기 보다는 계속 기억하려 한다. 인간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인간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해, 그들만의 웃음을 지킨다. 나는 그 우스꽝스러움이 부끄러웠지만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때론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아픔이 있다. 아픔보다 숭고했던 인간다움을 기억하기 위해, 인간은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지만 서로가 같은 인간임을 잊지 않음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그리고 후대에 남겨줘야 할 마음도 그 숭고함이다. 그래야 후대도 앞전 세대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고, 바로 잡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오랜만에 인간다움과 인류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짧고 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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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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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어머니의 분투가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아팠다. 평생 틀렸다고 생각했던 문제를 자식의 입장에서 다를 뿐이라고 이해해달라고 할 때,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지 책에서 다룬 문제가 아닐지라도 서로 다른 세상을 겪는 어머니 세대와 자식 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는 끊임 없이 발생할텐데... 그때, 나는 이 어머니처럼 이해하려고 이렇게 애써 싸울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자식들에게 일일이 말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어머니의 노력과 고민이 고스란히 글로 표현되어 있다. 젊은 작가가 어떻게 어머니의 마음을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지 감탄이 나오는 책이다.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지만 한 문장 한 문장마다 담긴 생각거리가 많아 빠른 걸음으로 읽어내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해를 향한 어머니의 발걸음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뭉클했다. 결국 이 엄청난 이해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건 사랑이구나.

어머니와 딸이. 어머니들끼리, 딸들끼리 읽어보면서 서로 이해의 장을 넓혀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가족 모두가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 P22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은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 P30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 P54

나는 좋은 사람이다. 평생을 그렇게 하려고 애써 왔다.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이웃. 그리고 오래전엔 좋은 선생님.
정말 힘들었겠구나. 나는 공감하는 사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나는 응원하는 사람. 다 이해한다. 이해하고말고. 나는 헤아리는 사람.
아니. 어쩌면 겁을 먹은 사람.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깊이 빠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입은 옷을,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 치는 사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걸까? 그러나 지금 딸애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P69

그 애는 듣고만 있다. 그럼에도 노력해 보겠다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그런 헛된 기대를 심어 주고 싶진 않다. 여전히 내 안엔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내가 있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끝이 나지 않은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자신도, 기운도, 용기도 없다. - P195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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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외투를 입은 아이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9
로런 밀즈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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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학교가 가고 싶었다. 외투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를 학교에 가게 해줄 사랑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 외투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달랐다. 상처입은 아이가 세상에 나가 그 외투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줄 용기를 낸 건 한 조각 한 조각에 담긴 사랑의 힘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좌절을 하는가...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건 날 감싸고 있는 사랑의 조각들인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친구가 힘이 들 땐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즐겁고 좋았던 기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린다고... 그러면 견딜 힘이 생긴다고 했다. 삶을 살아갈 힘은 사랑받은 기억에서 오는 것 같다. 내 아이에게도 사랑받은 기억을 한 조각 한 조각 자꾸 늘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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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그리스도 - 율법과 복음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싱클레어 B. 퍼거슨 지음, 정성묵 옮김 / 디모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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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집안에 잔치가 벌어진 걸 알고 화가 나 집 밖에 버티고 선 큰아들처럼 난 화가 나 있었다. 아버지가 달려 나와 내 것이 모두 네 것이라고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했는데.... 이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리라... 율법주의로 살다 율법폐기주의로 화를 풀 때 이 책이 다가왔다. 

율법주의의 반대는 율법폐기주의가 아니다. 율법주의든 율법폐기주의든 뿌리는 하나다. 하나님 아버지를 오해하는 것. 치유제는 은혜 뿐이다. 

힘이 탁 풀렸다. 돌아섰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같은 뿌리를 붙잡고 용을 썼구나. 역시 난 놓은 게 아니라 더 교묘하게 붙잡고 정죄하던 거였구나.

많이 안다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던 게 많았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복음은 은혜가 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은혜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깨닫고 인정하고 돌아서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하지만 내 안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은 오늘의 깨달음 이후로도 끊임없이 날 참소하러 달려들겠지. 그때마다 꺼내들고 치유제인 은혜를 상기하며, 두고 두고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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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43
이상교 글, 한병호 그림 / 시공주니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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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의 흔적이 남는 곳이다. 살림살이가 빠져나가고 사람의 온기도 사라지면 공간만큼 마음도 뭉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그 빈 집을 누가 채우게 될까? 내 인생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 빈집을 채운 것은 무엇일까? 혹은 내가 누군가의 빈집을 찾아가는 풀꽃이 될 수 있을까?

그림과 이야기가 모두 예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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