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걷기 속 인문학 - 길 위의 묵상, 걷기에 관한 성찰
황용필 지음 / 샘솟는기쁨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걷기 속 인문학
걷기!
요즘 자주 걷는다.
생각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고, 체중이 늘어나 운동 삼아 예전보다 걷는다.
저자의 걷기 이유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하루의 건강한 의식! 좋다. 건강하면서 경건한 의식은 육체와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준다. 사유와 묵상을 막힌 공간에서만 할 게 아니라 광활한 대지 위에서 걸으면서 하는 맛은 직접 체험해보면 너무나 좋다.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운 지금은 더욱 그 멋진 맛을 즐길 수 있겠다. 유명한 철학자인 칸테의 걷기는 유명하다. 소크라테스도 매일 걸었다고 한다.
와우! 첫장을 넘긴 순간부터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밀물처럼 마구 밀려온다. 어수선한 듯 보이지만 짧고 간결하게 툭툭 치고 들어와서 이해하기가 나름 편하다. 어렵지만 친숙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다는 말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사람을 걸을 수밖에 없다. 태초의 아담도 걸었다. 인류의 진화의 원동력이 직립에서 찾을 수도 있다. 걷는 자체가 진화이니, 걷고 또 걸어보자. 호모에렉투스의 뜻이 서서 걷는 사람이다.
우직스럽게 길 위를 걸어야 하는데, 사실 걷다 보면 여기저기로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다. 한 번 빠지면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든 얻는 바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왕이면 정상 궤도가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인문학은 잃어버린 길을 다시금 찾아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쌓아놓은 이야기들이 옥처럼 반짝반짝 거린다. 모르고 지나쳐도 무방하겠지만 이왕이면 알면 반짝거림이 몸과 마음에 와서 달라붙지 않을까?
물 흐르듯, 공기가 지나가듯 소통하고 있는가?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자연과 호흡하면 최고다. 이건 하나의 거대한 흐름과의 소통이나 마찬가지다.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는 의미인 동시에 개인의 사유인 것이겠다.
묵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개인마다 다르겠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를 논할 필요는 없고, 그저 자기의 길을 찾으면 족하다. 걷는 행위를, 길 위의 묵상이라고 칭한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다.
걷기는 영적 그리고 영성을 싹틔우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활동인 셈이다. 황무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느낌의 길 걷기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의 의미는 기와 에너지를 준다는 느낌일까?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스스로 묻고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길에서 길을 묻는 셈인데, 근원을 찾아가는 물음의 행보이다.
차후에 시간을 두고 다시 읽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른 인류의 축적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겠다.
매일 만보씩 걷는 저자를 따라 하기는 버겁고, 조금 더 걷기를 오래 유지해보려고 한다.
그 걸음과 함께 나의 행복을 찾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