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진작 나왔다면 '알베또'의 맛집 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 보통날의 파스타

 





 

알베또 맛집 후기 -> http://blog.naver.com/bloodlee/40068836925

 

 

작년에 우리 동네에 멋진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생겼다. 이름하야 ’알베또’ 개업 첫날 가보고 그 맛에 반해 단골이 되었다. 나는 파스타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스파게티 먹으러 가자고 하면 매정하게 혼자 가라고 할 수 없어 처제나 조카들이 오면 같이 가라고 하곤 했다. 토마토 소스가 시큼하거나 크림소스가 느끼할 거라는 나의 편견을 바꾸어 놓은 곳이다. 이제는 내가 먼저 가자고 할 정도가 되었다.

 

보통날의 파스타. 박찬일의 책이다. 문창과 졸업하고 기자생활하다가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사람이다. 글 쓰던 사람이라 글이 잘 읽힌다. 읽고 써야 살아남는 시대에 그는 능력자다. 과거의 본업이 현재의 본업을 더 빛이 나게 해주는 경우다. 작년에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다. 내가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요리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시 ’알베또’ 이야기로 넘어가자. 파스타가 너무 맛있어서 멋진 후기를 쓰고 싶은데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읽는거다. 도서관에서 이탈리아 요리에 관한 책을 세 권을 빌렸다. 공부했다. 아주 딱딱한 레시피만 있는 요리책이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실례를 무릎쓰고 알베또에 전화를 해서 물었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소설가 김영하다.  김영하가 미국으로 떠날 때 시간이 조금 남아 EBS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서 여행 다큐가 만들어지고, 또 그것을 책으로 냈다. ’알베또’를 알기 이전에 보고 읽은 것이라 나의 맛집 후기에 가니쉬가 되어 주었다. 그 때 만약 [보통날의 파스타]가 있엇다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먹고 읽고 쓰면서도 파스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레시피 나열하고 파스타 종류 나열하는 거 말고 파스타 하나를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주는 책 말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면 그 파스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조금은 친절한 책 말이다. [보통날의 파스타]가 그런 책이다. MBC드라마 [파스타]를 보면서 새로운 파스타가 등장할 때마다 ’음~~! 그래, 그건 원래 그렇지"라며 ’척’ 할 수 있는^^.

 

p86. 이탈리아 요리의 원형질은 단순하고 빠르며, 맛이 분명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여러 가지 맛이 섞이는 걸 싫어하고, 다양한 재료가 한 요리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이탈리아 요리는 요리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한다. 주재료가 무엇인지 어떤 소스를 사용하는지 요리 이름에 들어가 있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면 여러 맛을 섞을 필요가 없다. 향신료나 소스를 줄이고 또 줄여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게 이탈리아 요리다. 박찬일이 혹독한 수련을 거친 곳이 이탈리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섬이고 이탈리아도 우리 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다.

 

p.178-179. 조개 요리는 모든 기술을 뛰어넘는 단순한 요리가 된다. 오직 재료의 질로 승부하는 것이다. ...세상에 속이지 못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다면 조개의 선도와 요리사의 마음이다. 질 나쁜 조개로 만든 봉골레 스파게티가 맛없는 것처럼, 불편한 요리사의 마음은 최악의 요리를 탄생시킨다.

 

시칠리아는 우리 나라의 목포 쯤 되지 않을까? 투박한 시골 정서에 신선한 해산물이 있고, 어항이라 신선한 바다 요리가 있는 곳. 많이 표준화 된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그 고장을 찾아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곳. 푹 삭힌 홍어처럼  그 지방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접하기 힘든 요리가 있는 곳. (물론 홍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즐긴다. 그렇지만 푹 삭힌 홍어는?)

 

p.272.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일종의 향수 음식이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오면 어머니의 파스타 맛을 그리워한다. 와인도 그런 존재다. 와인도 그런 존재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먹을 때는 그 ’오리진origin’이 있는 지역의 와인을 곁들이는 게 가장 좋다고들 한다. 왜 아니겠는가? 목포의 홍어에는  그 지역의 막걸리가 제격이고, 독일 뮌헨의 햄과 소시지 요리를 먹을 때 맥주를 곁들이지 않으면 무얼 마실 수 있을까?

 

 이 책에는 파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와인, 음식, 그리고 수다스런 그들의 언어, 남과 다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탈리안의 정서까지 담았다. 저자의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책이다. 전작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의 후편이라고 해도, 시리즈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책이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파스타의 달인이자 스승인 주세페 바로네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혹독한 수련을 거쳤는지, 우리의 화끈한 성격과 닮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를 같이(또는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마지막을 이탈리아 와인 소개로 마무리 한다. 셰프가 와인까지? 그는 와인 전문가다. 와인 관련 책도 내고 교육도 한다. [와인 스캔들]이라는 책인데 첫 장이 "오버하지 말고 편하게 마십시다"다. 한 꼭지만 소개한다.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와인 서빙을 받다 보면 숨이 컥, 막히낟.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오고 라벨을 확인시킨 후 천천히 코르크를 열고 테이스팅을 한다. 따라놓은 와인을 손님이 천천히 맛을 본다. 위 장면에 흐르는 정적은 종갓집 기제사 수준이다. 손님들은 엄숙하게 입을 다물고 있고, 웨이터 역시 술을 바치는 종손의 표정마냥 진지하기만 하다. 이거, 참 심하다. 20년 정도 지하 카브에 잠자고 있던 정체불명의 와인을 개봉하는 순간 같다. 너무들 쫄았는지 와인 마시는 것을 신성시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내가 가진 박찬일의 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 업계지도 - 시장이 한눈에 보이는 투자지도의 原典
이데일리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3년차의 내공이 보인다 - 2010업계지도

 





 

 

머리말에 [업계지도]를 출간하게 된 동기가 있다. 대학 친구가 오랜 만에 전화를 걸어 우리 나라 석유화학업계의 전반적인 프리젠테이션을 부탁했다. 마땅한 자료를 찾다 지친 친구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신문사 산업부장인 저자다.(물론 이 책은 이데일리 기자들 공저다.) 해당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는 여러 모로 쓸모가 있다.  

 

2010 업계지도. 이번이 세번재다. 2008년, 2009년에 이어 [2010업계지도]까지 왔다. 매년 초에 만나 지난 한해를 정리하면서 새해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데 2010년판이 한 층 더 알찬 느낌이다. 그래픽은 한결 차분한 색상을 선택해 눈에 편하고 세분화된 수치그래프는 세분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0페이지부터 19페이지가지 10페이지에 걸쳐있는 [대한민국 최고 애널리스트들이 전망한 2010 업계 기상예보 UP-FLAT-DOWN]만 꼼꼼하게 읽어도 업종별 예측이 가능하다. 가전업계나 반도체업계는 '맑고' 'UP'이라는 전망이 예측이 있다. 어제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HP를 넘어 세계 최대의 IT기업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떴다. 반도체 업계는 2년간의 침체 상태를 넘기고 2009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인다. 2010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국내 업체들의 독주가 예상되는 가운데 후발업체들의 대응이 기대된다고 적고 있다.

 

투자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산다면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이 종목을 콕 집어 골라주는 매력은 없다. 아니 세상에 그런 책은 없다. 그건 사기다. 어느 업종도 나홀로 가기 힘들다. 자동차산업은 철강 산업의 영향을 받는다. 핸드폰업계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시장과 관계가 깊다. 한 분야의 나홀로 전망이 아니라 유사업종의 자료를 함께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 읽어주는 엄마
강지연 이시내 지음 / 청출판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다른 책 이야기를 하나 하자.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책이다. 홍지윤, 홍수연의 [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홍지윤은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관련일을 꾸준히 하는 전문가다. 홍수연은 여행 서적 [유럽 100배 즐기기]의 저자로 여행 전문가다. 미술과 여행이 뭉쳐서 미술 여행 서적을 냈다. 읽는 내내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의 토양이 부러웠다. 자매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그림을 아주 사랑하는 분이다. 갤러리도 흔치 않은 시절에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자녀들을 데리고 다녔다. [명화 읽어주는 엄마]였다. 그 엄마의 아이들은 자라서 삶을 더 깊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명화 읽어주는 엄마. 강지연, 이시내 공저.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가 있었고 '이주헌'도 우리에게 유럽의 미술관을 친철하게 소개해 주었다. 이 책도 그림을 읽어준다. 그런데 읽어주는 방법이 다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가 시작되면 우리 아이들은 미술관으로 쏟아진다. 이런 저런 엄마의 욕심이 아이들을 미술관으로 떠민다. 미술관에 도착하기까지 엄마는 미술관 견학을 위한 코치요 운전사다. "꼼꼼하게 천천히 봐야지! 조금 거리를 두고, 좋은 작품은 느낌을 메모하는거 잊지 말고, 과제물로 제출해야 하니까 팜플렛 챙기는거 잊지마". 미술관에 들어서면 엄마는 묵언默言수행중. 인터넷으로 사전 정보를 파악은 했지만 막상 작품 앞에 서니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하다. 인터넷에서 얻은 작가나 작품 설명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면서 눈만 멀뚱.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엄마에게서 얻을 것이 없음을 간파하고 홀로 감상에 나선다.

 

그림 감상은 독학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미술 감상은 일정 부분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기본이 되는 배경지식은 감상전이든,  자유로운 감상을 위해 감상 이후로 미루든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누구이고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지, 그 작품이 만들어지던 시대적 배경은 어떠한지, 제작 기법이나 비슷한 화풍의 다른 작가는 없는지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을 알고 있어도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업業이 과외선생이라 중고등학생 수학을 가르치는데 몇 년 전에 초등학생을 가르칠 일이 생겼다. 초등학교 수학이야 뭐 우습지 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잘 풀고 못 풀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앞에서 눈망울 똘망똘망한 어린 초딩을 이해 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고 아이가 알아듣기 쉽게 쉬운 단어, 쉬운 공식을 찾아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눈높이의 문제였다.  

 

엄마는 도슨트다. 아니 엄마는 최고의 도슨트가 되어야 한다. 어릴 때 엄마의 음성으로 전달된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근사한 미술관에서 엄마의 설명으로 이해한 그림은 최고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가슴에 두고 두고 '명화'로 남는다.

 

책을 읽으면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미술관을 찾아 가는 과정도 생생하고 그림을 설명하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듯 해서 현장감이 있다. 그 미술관만이 가진 특징을 설명한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쉽다. 그림을 보면서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은 아이를 닮았다. 18세기 독일화가 조파니Zoffny의 [모던트 대령의 닭싸움]을 보면서 영국과 인도의 식민지역사 이야기가 나오고 그림의 구도를 설명하면서 김홍도의 '씨름'을 떠올린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나 마르셀 뒤샹의 변기, 폰타나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설명할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림을 읽는다. 아이들도 현대미술은 당황스러울테니.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미술은 참으로 다양하고도 정답이 없구나. 다시 한 번 느끼며 우리 아이들이 이걸 본다면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 본다. 분명히 "나도 저런 건 할 수 있다"고 하는 녀석들이 있겠지. 라고.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의 미술관을 둘러본다. 영국에서는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 벨기에에서는 브뤼셀 왕립미술관, 안트베르펜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마우리츠 하위스,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미술관을 둘러본다. 세 나라 8개의 미술관을 소개한다. 표지의 [영국,벨기에,네덜란드편]이라는 구절은 이 책이 시리즈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어질 미술관 기행을 상상해본다. 프랑스로 가면 루브르도 있고 오르셰도 있고 스페인으로 가면 프라도 미술관이나 달리 미술관도 있다.최고의 르네상스 회화 콜렉션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도 빼놓지 않겠지? 그리고 이 책이 롱런을 한다면 유럽미술관 기행을 벗어나 뉴욕도 소개해 주길 바란다. 메트로폴리탄이나 모마(MOMA)도 우리 아이들에게 소개할 명화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엄마는 미술관 선생님>이라는 별도의 코칭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그림을 지도할 때 힌트가 될 만한 글들을 담았다. 그리고 저자 둘은 모두 초등학교 교사다. 교실에서 미술 지도를 하면서 나온 반응이나 사례를 예를 든 것은 이 책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경험은 현명한 사람의 유일한 예언이라 했다.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이어서 믿음이 간다.

 

특별 부록으로 책 후반부에 있는 [나도 화가라면]은 책에서 읽은 그림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미술 교재다. [나도 화가라면]이 만약 2권이 들어 있다면 엄마와 책을 읽기 전에 활용해보고 책을 읽고 그림의 이해도를 높인 후에 다시 한 번 더 해보면 어떨까?   '아이의 생각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책 한권 더 사?^^

 

덧글 :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면 출판사 마로니에북스의 [미술관 기행]시리즈를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 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
페기 구겐하임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인물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뛰어난 콜렉터이면서 에이프런이었던 인물이 있다. 간송 전형필. 문화가 달라 수집 대상이 달랐지만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거의 전 재산을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미술에 대한 감식안을 길러준 스승을 두었으며 예술가들은 후원했다. 페기 구겐하임에게 작가 마르셀 뒤샹과 영국의 예술 철학자 허버트 리드경이 있었다면 간송에게는 서화가 위창 오세창 선생이 있었다.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구겐하임을 이전에 한 번 잠시 만난(?)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을유문화사의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페기 구겐하임:모더니즘의 여왕]을 빌렸는데, 책 두깨에 밀려 몇 페이지 펼쳐 보지 못하고 반납했다. 그 책은 평전이다. 오늘 만난 [페기 구겐하임]은 그녀의 자서전이다. 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형제들과 하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파리에서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뉴욕으로 귀국하기 위해 증기선을 예약했는데 화부들의 파업으로 운항이 취소되고 불운하게 타이타닉 호에 자리를 예약했다. 주지하다시피 타이타닉은 처녀운항에서 침몰한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화려한 1등석의 부자들 중 한 사람이 페기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신사답게 여자와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죽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되었다고 타이타닉의 승무원이 전해준다.  

 

1919년 페기는 상속을 받고 큰 돈을 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으로 가서 21년을 머물게 된다. 유럽에서 로렌스 베일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지만 그와의 결혼 덕분에 유럽의 지식인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 존 홈스를 통해 현대 미술을 제외한 많은 부분에 눈을 뜨게 된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만큼의 유산을 받게 된다. 그 즈음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에 대해 마르셀 뒤샹을 통해 배우게 된다. 미술관을 열고 그의 평생 스승이자 조언자인 허버트 리드경과 친분을 쌓는다.

 

p.75. 이제 나는 허버트 리드가 작성한 목록에 있는 모든 화가의 작품을 사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이 충분했고 미술관 기금을 모두 상요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하루에 한 점씩 작품을 사기로 결심했다.

 

이 구절이 이 책을 대변한다.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화가의 작품을 하루에 한 점씩 산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하고 꿈이나 꾸겠는가? 이 책을 보는 재미는 이런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일반인들은 가늠하기 힘든 스케일, 이름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이는 작가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난다던가 하는 거 말이다.

 

페기가 아쉽게 구입하지 못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탈리아 정부도 두번 다시 돌아오기 힘든 기회를 놓쳤다. 세금 문제로 고민을 할 때 페기는 세금을 철회한다면 그녀 사후에 컬렉션 전체를 베네치가 시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프랑스 정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의 수많은 작품에 상속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상속세법을 뜯어고쳐 현물로 납부할 수 있게 했고 다수의 작품을 세금 대신 받았고 그 작품들을 모아 국립피카소미술관을 세웠다. 세계 각지에 피카소미술관이 있지만 가장 충실한 콜렉션과 높은 완성도 , 그리고 가장 많은 대표작을 소장한 곳이 프랑스 국립피카소미술관이다.

 

일전에 뉴욕의 미술관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뉴욕 미술관의 시작은 대부호의 아내들의 호사스런 취미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규모있는 미술관 관장도 대부분 회장님 사모님이다. 재력없이 불가능한 것이 미술품 수집이다. 이름있는 작가의 미술품 한 점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른 곳에 사용될 수도 있는 돈이 미술품에 투자가 되고 일반 대중을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일이다. 행여 변질되지 않는다면.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을 읽으면서 참고가 되었던 책들이다. 현대 추상미술 작가들은 몇 명은 익히 들어 알지만 생소한 인물들이 많아 작가들에 대해 알아볼 대는 [501 GRAET ARTISTS]가 도움이 되었고 그들의 작품을 찾을 때 참고가 된 책이 [THE ART BOOK]이다. 어제 나에게 온 책이자만 제법 도움이 되었다. 둘 다 마로니에북스 책이다. 마로니에북스의 그림에 관한 책은 일종의 보증수표다. 믿을 만하다.

 

그리고 출판사 미술문화에서 나온 大家와 친구들 시리즈 중 [뒤샹과 친구들]과 [폴록과 친구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뒤샹은 페기가 가장 많은 도움은 받은 작가이고 폴록은 페기가 가장 큰 도움을 준 작가이다. 폴록이 일찌감치 위대한 예술가로 부상할 수 있도록 전람회를 열어준 이도 페기다. 그리고 자서전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주관적 시각을 벗어나게 도와준 책들이다. 자서전에는 '누구와 결혼하고 헤어지고 또 누구를 만나고'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폴록과 친구들]을 보면 "섹스와 미술을 낙으로 사는 여인 페기"라는 제목이 있을 정도다. 로렌스 베일, 존 홈즈, 이브탕기, 롤런드 펜로우즈 등등은 페기의 남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 성서와 전승의 개념어 소사전
미셸 푀이예 지음, 연숙진 옮김, 최현식 감수 / 보누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독교 개념어 사전 -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책 좀 읽는다 해도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읽다보면 나도 힘들 때가 많다. 잠이 와서, 피곤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지식이 거의 없어 눈으로 읽어도 머리로 쉽게 들어오지 않을 때다. 철학 서적이 그렇고 기독교 관련 책이 그렇다.

 

고등학교 때 큰 덩치에서 나오는 식성만큼이나 책을 게걸스럽게 읽어 제끼는 급우가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놀랐지만 그의 독서 내력 중에 나를 경악하게 한 두 가지가 있다. 초등학교 갓 입학할 즈음 삼국지를 읽었다는데 제갈공명의 "출사표" 부분을 읽고 너무 안타깝고 슬퍼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서 성경을 이미 두번이나 완독했다면서 나보고 꼭 읽어보기를 권했다. 여지껏 나는 그 친구의 권유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상징 사전. 미셸 푀이예.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 위해 고른 책이었는데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독자인 나의 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이다. 독서 행위는 단순히 텍스트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고 행간의 의미를, 그리고 나아가 함의를 유추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콘텐츠를 성경이나 기독교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꿀벌 Abeille : 꿀벌은 노동과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꿀벌은 구원자 그리스도의 상징이이기도 하다. 꿀벌이 만들어내는 꿀은 온유와 자비를 암시한다. 꿀벌은 심판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꿀벌의 침에 들어 있는 독이 심판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꿀벌의 침에 들어 있는 독이 준엄한 신의 심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꿀벌은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 꿀벌의 분비물인 밀랍은 초를 만드는데 사용되며, 꿀벌이 지닌 지혜는 신성한 지혜의 단편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적 통념, 상식에 준하는 설명도 있고 기독교와 연관 지은 설명도 있다.  꿀벌이 왜 심판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지 꿀벌이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지 기독교와 연관지으면 적당히 유추는 가능하지만 정확히 왜 그런지 모른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

 

독서의 이해, 또는 그 이해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스키마Schema"다. 영화를 봐도, 그림을 봐도, 책을 읽어도 지극히 동양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기독교다. 내용이 담고 있는 함의는 차치하고라도 드러난 내용도 읽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

 

영화를 보던 책을 보던 그 기대감은 그렇게 크지 않다. 영화 한편이 만원이하고 책 한권이 1-2만원 내외다.  큰 투자가 아니다. 좋으면 좋은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불만이었던 부분이 아니라 책 한권, 영화 한편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자. 이 책은 내가 많은 것을 얻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부족한 나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와 성경을 조금 더 공부하고 이 책을 다시 펼친다면 분명 의미가 다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