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 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
페기 구겐하임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인물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뛰어난 콜렉터이면서 에이프런이었던 인물이 있다. 간송 전형필. 문화가 달라 수집 대상이 달랐지만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거의 전 재산을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미술에 대한 감식안을 길러준 스승을 두었으며 예술가들은 후원했다. 페기 구겐하임에게 작가 마르셀 뒤샹과 영국의 예술 철학자 허버트 리드경이 있었다면 간송에게는 서화가 위창 오세창 선생이 있었다.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구겐하임을 이전에 한 번 잠시 만난(?)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을유문화사의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페기 구겐하임:모더니즘의 여왕]을 빌렸는데, 책 두깨에 밀려 몇 페이지 펼쳐 보지 못하고 반납했다. 그 책은 평전이다. 오늘 만난 [페기 구겐하임]은 그녀의 자서전이다. 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형제들과 하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파리에서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뉴욕으로 귀국하기 위해 증기선을 예약했는데 화부들의 파업으로 운항이 취소되고 불운하게 타이타닉 호에 자리를 예약했다. 주지하다시피 타이타닉은 처녀운항에서 침몰한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화려한 1등석의 부자들 중 한 사람이 페기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신사답게 여자와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죽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되었다고 타이타닉의 승무원이 전해준다.  

 

1919년 페기는 상속을 받고 큰 돈을 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으로 가서 21년을 머물게 된다. 유럽에서 로렌스 베일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지만 그와의 결혼 덕분에 유럽의 지식인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 존 홈스를 통해 현대 미술을 제외한 많은 부분에 눈을 뜨게 된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만큼의 유산을 받게 된다. 그 즈음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에 대해 마르셀 뒤샹을 통해 배우게 된다. 미술관을 열고 그의 평생 스승이자 조언자인 허버트 리드경과 친분을 쌓는다.

 

p.75. 이제 나는 허버트 리드가 작성한 목록에 있는 모든 화가의 작품을 사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이 충분했고 미술관 기금을 모두 상요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하루에 한 점씩 작품을 사기로 결심했다.

 

이 구절이 이 책을 대변한다.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화가의 작품을 하루에 한 점씩 산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하고 꿈이나 꾸겠는가? 이 책을 보는 재미는 이런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일반인들은 가늠하기 힘든 스케일, 이름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이는 작가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난다던가 하는 거 말이다.

 

페기가 아쉽게 구입하지 못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탈리아 정부도 두번 다시 돌아오기 힘든 기회를 놓쳤다. 세금 문제로 고민을 할 때 페기는 세금을 철회한다면 그녀 사후에 컬렉션 전체를 베네치가 시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프랑스 정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의 수많은 작품에 상속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상속세법을 뜯어고쳐 현물로 납부할 수 있게 했고 다수의 작품을 세금 대신 받았고 그 작품들을 모아 국립피카소미술관을 세웠다. 세계 각지에 피카소미술관이 있지만 가장 충실한 콜렉션과 높은 완성도 , 그리고 가장 많은 대표작을 소장한 곳이 프랑스 국립피카소미술관이다.

 

일전에 뉴욕의 미술관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뉴욕 미술관의 시작은 대부호의 아내들의 호사스런 취미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규모있는 미술관 관장도 대부분 회장님 사모님이다. 재력없이 불가능한 것이 미술품 수집이다. 이름있는 작가의 미술품 한 점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른 곳에 사용될 수도 있는 돈이 미술품에 투자가 되고 일반 대중을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일이다. 행여 변질되지 않는다면.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을 읽으면서 참고가 되었던 책들이다. 현대 추상미술 작가들은 몇 명은 익히 들어 알지만 생소한 인물들이 많아 작가들에 대해 알아볼 대는 [501 GRAET ARTISTS]가 도움이 되었고 그들의 작품을 찾을 때 참고가 된 책이 [THE ART BOOK]이다. 어제 나에게 온 책이자만 제법 도움이 되었다. 둘 다 마로니에북스 책이다. 마로니에북스의 그림에 관한 책은 일종의 보증수표다. 믿을 만하다.

 

그리고 출판사 미술문화에서 나온 大家와 친구들 시리즈 중 [뒤샹과 친구들]과 [폴록과 친구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뒤샹은 페기가 가장 많은 도움은 받은 작가이고 폴록은 페기가 가장 큰 도움을 준 작가이다. 폴록이 일찌감치 위대한 예술가로 부상할 수 있도록 전람회를 열어준 이도 페기다. 그리고 자서전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주관적 시각을 벗어나게 도와준 책들이다. 자서전에는 '누구와 결혼하고 헤어지고 또 누구를 만나고'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폴록과 친구들]을 보면 "섹스와 미술을 낙으로 사는 여인 페기"라는 제목이 있을 정도다. 로렌스 베일, 존 홈즈, 이브탕기, 롤런드 펜로우즈 등등은 페기의 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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