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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 - 한국 속의 일본, 일본 속의 한국 공존을 위한 네 번째 이야기 ㅣ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
강상규.이경수.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4년 3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414/pimg_7835881634259762.jpg)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 :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먼 이웃 일본의 문화 이면, 우리의 교훈
인간본성은 선에 있을까, 악에 있을까?
동양철학에서 성선설, 성악설은 긴 시간의 논쟁을 뛰어넘어 가식의 논쟁거리로 전락했을 지 모르겠지만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의 잔혹한 행태는 성악설의 손을 번쩍 들어주기도 모자랄 지경이다.
731 부대가 한국인, 중국인을 대상으로 참혹한 의학실험을 거침없이 수행해낸 기록은 일본인 전체의 악마성으로 확대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최소한 당 시대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악령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도시 어디를 가도 한국어가 들리는 후쿠오카는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규슈 제국대학에서 벌어진 미군 8명에 대한 생체실험의 참혹한 장면과 오버랩 될 때 솜털이 곤두서는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격추된 적군의 군인들을 살의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적개심은 도쿄 대공습 이후 일본 대도시 곳곳이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 군부의 추악한 욕심을 떠나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에게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연구의 경쟁과 살아있는 인간을 해부할 수 있는 학문적 희열을 위해 감행한 그들의 참혹한 결정은 결코 후세대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최소한의 도덕마저 져버린 결과물이다.
그 와중에도 미국인과 한국인에 대한 단죄가 차별되는 약자의 설움도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한국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을 넘어버린 생체실험의 범죄자들이 감형을 받았다는 역사의 비참함은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잔혹함을 현재에도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카모토 료마는 한번쯤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인물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고, 근현대사의 일본의 시작점을 알린 인물이다.
대봉정환?? 의 기초를 다졌고 결과를 이끌어냈으며, 다가올 미래에 일본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정도로 그의 업적과 존경의 이유를 듣기는 했으니 대단한 양반이었구나 훅 들어올 정도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같이 이름만으로도 역사적 업적이 떠오르는 한국형 인물과는 궤를 달리해서 그런 걸까?
또 한편으로는 개화기 시절 조선의 새시대로의 진입을 제시했던 위인이 없었다는 찢어지는 아픔이 비교돼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권 다툼으로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된 방향을 못 잡은 원인도 있겠지만, 초기 외세의 압박에 무릎을 꿇고 외세를 몰아내자며 핏대를 올린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며 명예혁명을 일으킨 쓰시마와 죠슈번의 정치적 외형을 료마를 통해 투영시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계획은 아니었을까 상상도 해본다.
료마를 소개한 챕터에서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를 잡는다.
지역마을이 스토리텔링이 일본 지역마다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부분이다.
얼마전 도쿄 여행에서 반나절을 들여 다녀온 시바마타 역시 같은 맥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60년대 드라마를 배경으로 마을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고 레트로 감성에 즐거워하는 관광객을 도쿄역에서 50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모자란 여행일정에서도 다녀올 힘을 가지게 된다.
막상 가보면 기대만큼 대단한 매력은 없지만, 보상심리 탓인지 작은 마을에 이야기거리가 넘쳐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정겨움이 남아있다.
지역 소멸 시대에 지자체가 관광을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생각한다면 쓸데없이 커다란 조형물 만드는데 돈을 쓰기보다 자신들의 색채가 잘 입혀진 스토리텔링을 고민해보는 게 어땠을까 아쉬움의 지평을 넓혀보게 된다.
고등학교 외국어 선택이 일본어였으면 좋았을 텐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 회전 초밥 집에서 먹고 싶은 녀석을 맘껏 주문할 수 없을 때 떠오르는 절망이다.
직장생활을 하면 여가시간에 일본어를 배워볼까 책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작심삼일의 덫에서 헤어나오지는 못했다.
어순이나 발음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가 많으니 세계 모든 언어 중에서 가장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가 테스트되는 상황에서 도망칠 뿐이다.
요즘 유튜브에는 한일 부부가 비슷한 단어나 표현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게 되는 컨텐츠도 자주 소개되는 편이다. 지리가 가까운 나라에서 오 천년을 지나며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었고 언제나 으르렁 대던 사이지만 가까운 인접 언어의 특성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더욱이 치욕스러운 강점기를 통해 말을 없애려던 그들의 야욕이 일부는 생활 속에 도사리고 100여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낼 것이다.
한국의 욕이 K-드라마 열풍을 타고 세상을 떠돌듯 우리의 강한 언어의 힘이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서 두려움으로 커질 수 있다면 좋겠다.
책에 내용중 일본인들은 "바가지요금"을 씌우지 않는다는 문장이 눈에 걸렸다.
혐한 식당들이 가끔 온라인에 공유되지만 그런 가게 중 한 군데서 일본어를 못한다는 덕에 30% 정도 요금을 더 냈던 기억이 있던 내게는 그들도 결국 사기꾼도 있고, 정직한 상인도 있는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라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낸다. 외국인에게 돈을 더 뜯어내던 초밥집 사장은 자기 종업원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구글 리뷰를 잘 봐주길 바란다.
뱃길로 조선사람들이 일본을 찾아가는 경로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일본 도시 중 하나인 후쿠오카이다.
나리타 공항 같이 대형공항의 우람찬 건물에 비해 제주도 정도 규모의 비행장에서 느낀 첫 인상은 우리나라 지방도시 한 군데를 방문한 친근감과 아기자기 함이었다.
실제 하카타역을 중심으로 텐진 같은 쇼핑몰 거리가 즐비한 관광도시지만 막상 돌아다녀보면 4박 5일 이상은 볼거리 없는 작은 도시기도 하다.
민비를 시해한 칼을 보관한 칼을 보기 위해 후쿠오카를 방문한 저자의 느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민비가 저질렀던 각종 악행들을 떠올려보면 국모라는 타이틀이 드라마를 통해 잘 포장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실상을 머리가 크게 되어 알 수 있었지만, 한 국가의 왕후를 타국의 낭인들이 무자비하게 살해한 역사적 불쾌감은 굳이 거기에 찾아가서 검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진짜 칼이 있었다면 언젠가 나도 한번 신사를 찾아 여행의 코스를 짜게 되었을 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흉악한 모습을 일본이 모시는 신사에서 떠올리기는 싫다.
혹자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새로운 미래를 위한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의 산물인데 왜 대학입학이나 각 종 직업 시험에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과거를 단순한 사건의 흔적으로 치부해버리는 국가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부족함은 채워 나가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하고 부적절하게 행동한 부분에 대해 확실한 사과를 받은 이후에 악수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옆집에서 우리집에 불을 질렀는데 사과와 보상 없이 사이좋게 지내자고 악수를 내밀 때,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는 당신이라면 인정하겠다만.
일본 여행은 즐거움을 준다.
우리와 너무 닮아서 또 그 안에서 다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다채로운 먹거리나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쇼핑의 순간이 저렴한 비용으로도 해결되는 매력이 있다. 내 주머니를 털리긴 해도 영혼이 털리지는 않아야 한다.
일본의 향기로운 매력 안에 숨어있는 그들의 긍정과 부정의 이면들을 깨닫고 새로운 기회와 상호발전의 노력을 하기로 한다. 단, 확실히 사과를 할 수 있게 요청도 해야 한다.
인근의 마을 사람들과 우호관계를 수립하고 더 큰 적을 향해 싸울 필요가 있을 때는 협력이 필요하지만 항상 내 뒤통수를 취는 건 그들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차이를 깨 달아가는 과정은 문화의 습득이라는 만족도도 높지만 경계심을 갖기 위해서도 긴요한 작업이라는 구구절절한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4권까지 출판된 일본문화 이야기는 즐거운 책읽기의 일환이지만 중간 멈칫 무거운 발걸음이 나오는 언짢은 감정에 휘말리게도 한다.
그렇게 멀지만 가까운 나라는 경계심과 경외심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 지 모른다.
수작업으로 디테일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취미의 나라였던 일본의 다양성이 거대한 시대의 조류에 따라 자신들만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도큐핸즈 시부야 점에서 퇴락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인구절벽만 아니었다면 일본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었겠다 라는 복잡한 심정도 가지게 된다.
앞으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묘한 관계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공유할 기회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