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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4년 4월
평점 :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 : 시원하게 풍덩, 마셔라! 세계사와 맥주
0시 30분.
손흥민이 출전하는 토트넘 경기를 보기 딱 좋은 시간대다.
새벽에 열리는 경기는 다음날 출근 걱정을 제외해도 커다란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90분 경기를 함께 할 맥주와 안주를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
그래도 새벽 경기는 아닌 만큼 전반전에 가볍게 음주를 즐기고 후반전은 약간 풀어진 정신을 알콜의 힘을 빌려 추스르며 일어서서 열심히 응원 몸동작을 허공에 질러대며 소화까지 잘 시킨 다음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솔직히 오늘은 다음날 휴무다 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선배들의 강권으로 억지로 마시는 술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막내로서 어쨌든 술자리의 여러가지 상황을 조율하는데 힘든 측면도 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초년병의 철모르는 소리였다. 요즘은 과거처럼 술문화가 직장과 따로 노는 형국이긴 하나, 스트레스와 문제해결에 에너지를 소비한 상황에서 청량음료 같은 맥주 한 잔과 치킨은 축제와 다름없는 흥겨움을 준다.
코로나를 지나며 회식은 더욱 사적인 일들에 밀리기 시작했고 나름 주당들도 혼술 또는 집술의 저렴한 가성비 매력에 빠졌다. 대화와 소통의 자리는 축구나 OTT가 대신해주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학생 때와 다르게 직장 생활의 풍요로운 예산은 2차로 세계 맥주집이나 호텔 지하에 있는 거대한 맥주 펍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번 같은 종류의 생맥주만 즐기던 나에게 다채로운 풍미를 선사한 브랜드마다 병 모양도 개성 있는 만남의 즐거운 일상이 되었고, 기름진 치킨의 세계에서 벗어나 기름기 쫙 뺀 학센이나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샐러리 스틱도 훌륭한 안주거리가 된다는 또다른 차원의 안주 미식에 발을 내딛었다. 웰빙 안주라니!
맥주는 통풍에 치명적이다.
고기와 술을 짧은 반복주기로 즐기다 보면 요산수치의 상승으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주는 질병 중 하나인 통풍과 조우하게 된다.
그나마 덜 아픈 상태에서 질병에 맞닥뜨린 이후 약을 통해 수치를 조절하며 알콜 섭취량만 적당하게 조절하면 문제는 없지만, 과거 처럼 맥주를 무한정 즐길 수 있는 도전은 불 가능해진다.
사람이란 억제할 수록 욕망을 느는 편, 맥주는 한 두 캔 정도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맛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맥주를 원한만큼 못 마신다면 맥주의 역사를 책을 통해 더듬거리는 기회로 충당해보자는 엉뚱한 관계를 만나기도 한다.
맥주의 원조로 독일 역사에서 각 중요한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맥주는 독특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맥주의 역사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면죄부가 교회의 부정부패로 연결되자 이에 반발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정당성을 따지는 압박 강도 높은 자리 -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앞 - 로 스스로 몰아넣었다.
아무리 개혁을 주장하는 신념의 인물이었지만 쉽지 않은 자리였다.
땀이 흐르고 긴장감이 역력한 그에게 주어진 맥주 한 병은 어쩌면 세계사의 방향을 송두리채 바꿔 놓은 변곡점을 만들어놓고 야 만다.
살짝 취기가 오른 루터는 내면에 숨어있던 분노와 머리에 정리된 논리를 적절히 조합하여 위기의 순간을 기회의 한 방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후 다행스럽게 불경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게 되어 자유롭게 방면된 그는 역사의 한 구석에서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업적을 이루게 된다.
단순히 맥주 한 잔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취할 일도 없으니 갸우뚱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원액이 더욱 걸쭉하게 들어가 있고 알콜 도수도 8%가 넘는 수제 맥주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할 수 있다.
열량 가득한 고품질 맥주는 비록 맛이 훌륭하지는 않다고 하나, 식사를 대용할만한 힘을 내게 만들어준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목구멍으로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든다.
벨기에에 위치한 오르발 수도원을 방문하여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생한 장면이 머리속에 전달한다.
거대한 공장에서 공산품 뽑아내는 공정과 달리 생 홉을 넣고 숙성기간을 가지는 전통주조 방식은 맥주에 대한 자부심 가득한 생산자들의 당당함과 닮아 있다.
더 많은 생산 기회가 있음에도 왜 한정 생산만 하느냐는 작가의 질문을 머쓱하게 만드는 답변은 "우리는 전통 제조의 방식을 이어가는 게 목적이지 맥주를 통한 이윤창출은 아니랍니다."였다.
많이 효율화 되었지만 그럼에도 책에 설명된 긴 제조공정을 유지하는 이유는 결국 맛을 지키기 이해서라는 이야기고, 시음을 통해 전달되는 풍미가 대화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경건한 종교 수행의 장소인 수도원이 맥주 주조의 최선봉에 나서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루터의 얼굴이 커다랗게 라벨에 인쇄된 맥주를 소개한 책 앞부분의 맥주 역시 "made in monastert" 였잖아?
로마 정복자들이 마시던 와인은 고급술로 통했지만 게르만족의 맥주는 저급한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카를로스 대제의 활약 이후 전쟁의 승리에서 축복하는 술로 맥주가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게르만족의 자랑스러운 술로 위상을 높인다.
아울러 기독교 세계의 중심 기관으로 수도원이 지역 거점 역할을 하며 양조 역시 그 일환으로 제조가 시작된다. 정치의 중심 역할을 위해 고관대작의 의전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수도사들은 절약하고 성실한 태도로 삶의 모습을 종교에 투영한 삶을 살아간다, 대부분.
때에 따라 등장하는 탐욕 가득한 일탈자들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지만 이상의 모습이 아닌 현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또다른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순례자와 방문자들에게 제공할 음식과 맥주를 준비하는 수도원의 역할 이면에는 마을이나 지역에서 세금처럼 납부하는 물건들의 관리도 필요하다. 경제의 흐름과 정치의 중심으로 수도원이 위치하는 상황에서 각 지역의 중심과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필수 코스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양조업은 지역경제와 교회 정치의 교집합을 굳건히 할 수 있는 멋진 비즈니스 기회였고 이를 통해 부의 축적과 양조기술의 발전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흥미로운 상황으로 전개된다. - 더우기 홉을 맥주에 집어넣은 최초의 양조기술자도 만날 수 있다.
책의 처음 시작부터 알아봤다.
맥주가 역사의 가열찬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우뚝 세울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중세 교회가 맥주 생산자의 역할과 분배자의 활동을 지속 수행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역사 변곡점에서 맥주 스토리는 재미있고 중요한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었고, 마치 100살 할아버지가 현대사 곳곳에서 뜻하지 않은 활약을 펼친 소설의 한 토막이 연상되는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수 있었다.
치킨 한 마리 놓고 소박한 맥주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소소한 저녁 풍경이 드라마에서 인상적으로 표현되는 느낌처럼, 허기와 영양실조로 곤궁하게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 영양분 가득하고 에너지 원천이 되는 맥주는 물과 더불어 생명수의 역할을 완벽해 해낸 노을 뒷 배경 소박한 식사의 자리를 빛내는 주인공이었다.
맥주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 이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눈부시게 해내는 장면들을 연상하며 책장을 넘겨가는 재미가 필요하다면 당장 편의점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떨까?
서민 정서 가득한 "마술피리" 아리아가 곁들여져도 좋은 밤의 여왕, 맥주를 위하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