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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몸 - 최신 의학이 밝혀낸 면역, 질병, 노화의 비밀 ㅣ 프린키피아 9
줄리아 엔더스 지음, 질 엔더스 그림,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이토록 위대한 몸 : 우리 몸을 바라보는 발칙한 시각과 충격, 그리고 유쾌한 신체의 역사 여행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나 신체 부위, 그리고 면역이라는 방어 시스템을 활자로, 또 그림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단순히 병을 예방하거나 노화를 늦추기 위한 실용적인 의학 지식을 얻겠다는 지적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엄습하는 노화를 체험하고 어떻게 해서든 늦추려는 아둥바둥 집착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평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면서도 정작 내가 가장 모르고 있던 '내 몸'이라는 또다른, 작은 우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보다 그렇지 못하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비슷한 책에 기웃거리게 된다.
이토록 위대한 몸은 지금까지 만났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궤도를 달린다.
이 책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하라'는 조언 대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장기들이 어떤 진화의 역사를 뚫고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어떤 기막힌 메커니즘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는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맹신하던 얄팍한 상식들이 기분 좋게 부서지거나, 내 몸속의 세포와 박테리아들이 나쁜 영향과 좋은 영향을 동시에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새로운 시각과 충격을 동시에 만끽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첫 번째 장기는 바로 "폐".
우리는 매연과 미세먼지를 마시고, 때로는 담배 연기를 폐 깊숙이 밀어 넣으면서도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폐는 상당 부분이 손상되더라도 살아가는 데 당장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놀랍도록 묵묵하고 강인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허술해 보이면서도 경이로운 기관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24억 년 전, 지구에 끔찍한 유독가스 사고가 발생했다. 이 폐기가스의 이름은 산소다.
책에 묘사된 것처럼, 우리가 1분 1초도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산소가 사실은 24억 년 전 초기 생명체들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던 최악의 유독성 폐기물이었다는 발상은 난생 처음들어보는 관점이다. 식물과 일부 박테리아가 뿜어낸 이 골칫거리 가스를 역으로 생존의 에너지원으로 탈바꿈시킨 생명체들의 적응 과정은 위대한 코미디이자 드라마 한 편이 아닐까? 의학계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릴 만큼 저자의 표현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무의식적으로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이 실은 얼마나 치열하고 소중한 대사 작용인지, 그리고 폐라는 장기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진화의 결과물인지 새삼스럽다. 심지어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자주 들어본 활성산소조차도 단순히 세포를 늙게 만드는 질병의 원흉이 아니라, 세포들이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느낌표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암세포를 적발하는 유용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몸을 바라보던 생각에 부끄러움을 던진다.
단순한 방어벽으로만 여겼던 면역체계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백미다.
우리는 흔히 면역세포를 세균과 바이러스를 무자비하게 찔러 죽이는 전사로 이미지를 그리지만, 현대 의학이 밝혀낸 면역체계의 진짜 목표는 전쟁이 아니다. 내 몸을 최대한 잘 파악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킬러세포들은 무턱대고 세포를 파괴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세포를 붙잡고 오늘의 일과를 불심검문한다. 상대방이 암세포나 감염 세포로 변이했음을 순순히 인정하면 아주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자가 분해되도록 돕는다. 물론 가끔은 속기도 하지만.
익숙한 이름의 보조 T세포들은 상황의 맥락에 따라 킬러세포를 진정시키거나 부추긴다.
면역세포들조차 인간의 사고처럼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의 축적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최근 끝이 날카로운 것에 찔려 파상풍 예방접종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사고 발생 후 72시간 내에 접종을 하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물질이 몸에 들어와 잠복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면역체계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적응할 수 있는 생물학적 골든 타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물질에 대해서도 백신의 작용이 조금이라도 발빠르게 주어지면, 내 몸의 인공지능들이 재빠르게 데이터를 업데이트하여 면역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주사 한 방으로 혹시라도 모를 끔직한 고통을 예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책을 읽으며 얻은 우리 몸 면역체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꽤난 신선한 충격을 준 부분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새로운 관점이다.
인간은 결코 단일하고 고결한 영혼으로 이루어진 독립적 개체가 아니다라, 수십조 개의 나만의 고유 세포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외부 미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맹렬하게 뒤엉켜 살아가는 일종의 군집이라는 정의다.
이러한 인식은 SF 문학이나 철학에서 다루는 자아 해체와 코즈믹 호러, 즉 우주적 공포라는 가상의 테마를 일상의 공포로 끌어 내린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에서 인류가 기이한 외계 바다와 소통하며 인간 인지의 한계와 타자의 존재를 깨닫듯, 내 몸이라는 껍데기 속에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존재들이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뭔가 좀 찝찝해진다.
우리는 '나쁜 균'과 '좋은 균'을 철저히 분리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6,500만 년 전 우리 조상이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태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는 지금의 모습으로 번식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사고가 오히려 임신을 유지하는 생존의 기술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으스스한 존재가 오히려 미래의 희망이 되었다는 역설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장 속에 바글거리는 대장균과 세균들 중 유익균이 없다면, 우리는 음식물의 섬유질을 소화하지 못하고 극심한 설사와 탈수에 시달리게 된다. 장세포 에너지의 약 10%는 바로 이 박테리아들과의 협력을 통해 생성된다.
내가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의식과 육체조차, 사실은 이 무수한 이물질들의 조용한 타협과 협력, 때로는 나에게 역행하려는 배신의 메커니즘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모래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낯선 공존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아를 유지하며 살아가듯, 내 몸속의 타자들 역시 묵묵히 나를 위해, 혹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삶의 수레바퀴를 열심히 땀나게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억 년을 거쳐 진화해 온 장기들의 장대한 역사를 살피다 보면, 우리 몸의 꼭대기 왕좌에 앉아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뇌의 위치를 다시 가늠하게 된다. 뇌는 호흡기나 소화기, 면역체계가 가진 까마득한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역사를 지닌 초보적이고 최근에 생긴 신생 기관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생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해치우는 뇌는, 역설적으로 그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숱한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동화 오류다.
이는 응용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역사적 심리 실험에서 인간의 인지 편향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뇌는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 인지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의식적인 관여를 줄이고 무의식적인 자동화 시스템에 일을 맡겨버린다. 오랜 숙련을 거친 도예공이나, 수십 년간 환자의 혈압을 재고 차트를 읽어온 전문의가 때로는 갓 들어온 초보 의사나 학생보다 더 어이없는 오진과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뇌가 스위치를 끄고 자동 비행 모드로 전환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뇌의 폭발적인 발전 덕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맹신하는 뇌의 이성적 판단이 생물학적인 한계로 인해 언제든 엉뚱한 궤도로 이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래되고 본능적인 장기들이 묵묵히 제 할 일을 오차 없이 수행할 때, 가장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뇌는 편향과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 책은 독자를 끝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유쾌한 산책과도 같다. 어려운 의학 용어를 남발하거나 단순한 건강 지침을 나열하는 대신, 장기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서이자, 세포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보는 시트콤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내 몸을 바라보는 생각의 렌즈'를 교체해 준다는 데 있다.
나의 건강, 나의 질병, 나의 노화라는 일차원적인 고민을 넘어, 내 안에 얼마나 경이로운 지성과 오랜 역사, 그리고 이질적인 타자와의 눈물겨운 공생이 뒤엉켜 장엄한 교향곡을 만들어내는지 감탄하게 된다.
의학적 지식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하고도 흥미로운 철학적 화두를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안성마춤 그 이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