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만든 사람들 - 아르키메데스부터 괴델까지, 수학자 50인에게서 배우는 수학의 역사와 원리
알프레드 S. 포사멘티어 외 지음, 강영옥 옮김 / 동아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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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만든 사람들 : 차가운 수식 뒤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드라마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게 수학이란 결코 애정을 품을 수 없는 차갑고 건조한 학문이었다. 

그나마 수학 언저리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기억을 꼽자면 초등학교 시절 다녔던 주산학원이 유일하다. 경쾌하게 주판알을 튕기던 손맛,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도 웬만한 두 자리, 세 자리 숫자의 계산은 암산으로 척척 해낼 수 있게 된 얄팍한 잔기술만이 내게 남은 수학적 유산의 전부였다. 

만약 그때, 단순히 숫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기계적인 숙련도를 넘어, 그 숫자와 기호들이 품고 있는 진정한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경이로움과 매력을 누군가 내게 가르쳐 주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생업을 찾지 않았을까?

결국 나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 채 수식만 보면 머리가 아파지는 '100% 순도의 문과생'으로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험난한 직장생활은 수학에 대한 원망만 늘려놨다. 세상은 감성이나 화려한 문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힌 비즈니스 현장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따지며, 최적의 해답을 도출해 내는 과정은 수학적 사고, 그 자체였다. 숫자로 증명하고 논리로 설득해야 하는 숱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학창 시절 수학을 멀리했던 아쉬움과 미련으로 마음 한 켠에 고였다. 

요즘 낯설고 흥미로운 취미 하나를 시작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다. 바로 학창 시절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애증의 책, 수학의 정석을 다시 펼쳐 드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입시라는 무거운 압박감도 없이 오롯이 나의 의지로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책만 사면 된다.


이처럼 지독하게 복잡한 이론과 수식들은 도대체 '누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것일까? 무작정 암기하기 바빴던 그 공식들 뒤에는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있을까?

이러한 지적 갈증이 알프레드 S. 포자먼티어와 크리스티안 슈프라이처가 공저한 “수학을 만든 사람들”로 이끌었다. 50명에 달하는 위대한 수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명확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 도망쳤던 수학의 여러 이론과 수식들이 탄생하게 된 치열하고도 인간적인 역사의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대의 철학자부터 근현대의 대수학자들에 이르는 이 거장들이 감정의 동요 없이 오직 이성으로만 무장한 완벽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두 저자가 담담하게, 그러나 흥미롭게 그려낸 50인의 삶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질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결함 많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가장 먼저 흥미를 끈 것은 고대 수학의 철학적 토대를 닦았던 피타고라스(Pythagoras)다. 학창 시절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건조한 공식으로만 외웠던 그는, 사실 단순한 수학자를 넘어 영혼의 윤회를 믿고 철저한 채식주의를 규율로 삼았던 일종의 종교 집단(피타고라스 학파)의 교주였다.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던 그들의 신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행보를 읽으며, 수학의 기원이 단순한 셈법이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풀고자 했던 종교적 열망에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챕터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책 속에 묘사된 뉴턴의 내면은 놀랍도록 편협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라이프니츠와의 미적분학 최초 발견을 둘러싼 우선권 논쟁에서 자신의 학계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철저히 파멸시키려 드는 옹졸함을 보였다. 타인과의 소통을 극도로 꺼리고 연금술과 이단적인 신학에 집착했던 그의 어두운 이면은, 훌륭한 학문적 성취가 반드시 성숙한 인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씁쓸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주식에서 엄청난 실패를 맛보았던 점도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 '수학의 황제'라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의 생애 앞에서는 인간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계에 압도당한다. 초등학교 시절 1부터 100까지의 합을 순식간에 계산해 낸 일화로 유명한 그는, 그야말로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수학적 진리를 발견해 냈다. 하지만 그의 완벽주의는 다른 이들에게 절망의 벽이기도 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연구는 절대 발표하지 않았고, 동시대의 다른 수학자들이 일생을 바쳐 발견한 새로운 이론을 들고 오면 자기도 예전에 생각해 두었던 것이라며 차갑게 응수하기 일쑤였다. 더우기 이런 말투가 허세가 아닌 진심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 범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고독과 오만함이 책장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슴 아픈 서사를 꼽으라면 단연 에바리스테 갈루아(Évariste Galois)의 이야기다. 현대 대수학의 근간이 되는 군론(Group Theory)을 창시한 이 천재는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권총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적 격변기였던 프랑스에서 혁명의 열망에 불타오르던 청년 갈루아는 기존 학계의 낡은 벽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했고, 억울한 감옥살이와 짝사랑의 실패를 거쳐 명분 없는 결투장으로 향했다. 죽음을 직감한 결투 전날 밤,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시간이 없다는 절망감 속에 자신의 수학적 아이디어들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일화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의 절박함이 어떻게 차가운 수학 공식으로 승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물론 과장된 에피소드라는 의견도 있지만, 역사란 뇌리에 각인된 바로 그 장면만을 기억한다.


무한(Infinity)의 비밀에 도전했던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도 지나칠 수 없다. 그 이전까지 수학계에서 무한은 그저 신의 영역이거나 금기시되는 모호한 개념에 불과했다. 하지만 칸토어는 무한에도 크기가 있으며, 어떤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더 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긴 하지만, 유한한 지성으로 무한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던 이 도전은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이 났다. 동료 수학자 크로네커의 집요한 공격과 학계의 차가운 외면 속에서 칸토어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결국 생의 마지막을 정신병원에서 외롭게 보내야 했다. 진리를 향한 탐구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그가 남긴 '집합론'이 어떻게 현대 수학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었는지를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철저히 이과적인 기호들의 세계를 인물 중심의 인간 서사로 풀어낸 두 저자의 솜씨는 친절하고 탁월하다. 나처럼 수학적 배경이 얕은 사람일지라도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업적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공식을 증명하는 대신 그들이 왜 그 증명에 일생을 바쳤는지, 역사의 한 분야로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서 뽑아낼 가치는 충분하다. 


비록 내 학창 시절은 수학의 즐거움을 모르는 문과생의 길이었고, 오랜 시간 밥벌이 속에서 수학적 사고의 부재로 뼈아픈 후회를 남기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새로운 얼굴—숫자 뒤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호흡—을 마주하게 된 것은 의미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독하게 머리가 아픈 수열이나 미적분의 공식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우주의 비밀을 엿보고자 했던 피타고라스의 열망과 무한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정신줄을 놔버린 칸토어의 뒷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나처럼 수학에 빚진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에게 수학이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의 고뇌가 표현된 정수’였음을 깨닫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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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브랜드는 이렇게 팝니다 - 좋아하는 것을 비즈니스로 바꾸는 브랜딩 전략
채주석(그로스존) 지음 / 유엑스리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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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과 가치로 거인과 맞서는 성공사례 스터디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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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브랜드는 이렇게 팝니다 - 좋아하는 것을 비즈니스로 바꾸는 브랜딩 전략
채주석(그로스존) 지음 / 유엑스리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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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브랜드는 이렇게 팝니다 : 취향과 가치로 거인과 맞서는 성공사례 스터디 케이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산업혁명으로 건설된 거대 자본과 규모의 경제는 디지털 혁명을 거치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의 소비자들이 제품이 지닌 일차원의 기능적 효용, 대량 생산을 통한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대기업이라는  신뢰도를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변화된 소비자들은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라서 선택하는 기본 성향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신의 내밀한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미학적 취향과 정렬되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그 브랜드의 서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점차 심화되고 발전하고 있다. 선택한 브랜드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갈망한다. 그런 덕분에 스몰 브랜드는 더 이상 대기업 제품의 저렴한 대안재의 역할을 뛰어넘어,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주도적인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채주석 저자의 “작은 브랜드는 이렇게 팝니다”는 이처럼 격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작지만 강력한 브랜드들이 어떻게 거대 자본을 이겨내고 열광적인 팬덤을 구축하는지, 실 사례에 돋보기를 들이밀고 있다.



스몰 비즈니스의 가장 훌륭한 출발점 중 하나는 일상에서 으례 당연하게 여겨지며 방치된 불편함이나 투박함을 포착한 후, 개선의 메스를 들이미러 완전히 새로운 가치가 덧붙여진 결과물로 탈바꿈 시키는 방식이다.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피트니스 아이템 브랜드 '발라(Bala)'는 기능성이라는 획일된 목적에만 매몰되어 변화를 찾아보지 못하던 운동 기구 시장의 맹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운동장을 돌며 땀 빼는 상황에서 조금 더 강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 종아리에 매단 모래주머니에 패션을 입힌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은 과감하게 주장한다. “왜 그러면 안되는데?”

기존 제조사들은 심미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채, 가장 기본적인 구조와 내구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데 급급했다.

히지만 발라는 "왜 운동 기구가 패션 아이템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역발상을 통해 모래주머니 본연의 기능성을 철저하게 유지하면서도, 일상복이나 세련된 애슬레저룩과 매치해도 손색 없는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제품에 도입했다. 투박한 나일론 천과 쇳가루 대신, 부드러운 실리콘 소재와 파스텔톤의 세련된 색상을 도입하여 제품의 질감을 바꾸어 놓았다. 발라는 여기에 특유의 발랄하고 긍정적인 브랜드 감성을 더해, 운동을 힘들고 억지로 해야 하는 노동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피트니스 라이프스타일로 정의했다. 사람들은 발라의 모래주머니를 착용하고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모습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도구가 지위를 획득하여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로 자신의 가치를 빛내는 결과물로 탄생했다.


그들이 감행한 고도의 마케팅 및 유통 전략도 눈여겨 볼만하다 모래주머니 가격을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적인 제품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고가로 책정했다. 통상적인 작은 브랜드라면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형 할인 마트나 무분별한 온라인 오픈마켓 입점을 서둘렀겠지만, 발라는 철저하게 판매 채널을 통제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와 미학적 프리미엄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고급 백화점과 유명 편집숍 등으로만 판매 장소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위험한 모험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채널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이런 접근법 조차 작은 브랜드들이 쉽게 감행할 수 없는 도구지만 결과는 그만큼 커다란 위력으로 다가온다.



또다른 성공 포인트는 창업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생생한 경험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사실 대부분의 경영서에서는 피해야할 창업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브랜드로 시작해 보기 위한 도전으로 좀 더 치밀한 준비와 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획득된 브랜드는 다른 경쟁자가 마케팅 기법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짙은 진정성과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는 강점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창업자 본인이 그 누구보다 해당 제품에 대한 깊은 애착과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으며, 비즈니스 확장에 필요한 직관적인 인사이트를 현장에서 끊임없이 채굴할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서 대중적인 반찬으로 소비되는 평범한 피클 시장에 뛰어들어 1만 개 이상의 매장에 입점하는 폭발적인 성공을 일궈낸 '그릴로스 피클(Grillo's Pickles)'은 이러한 창업자의 서사가 비즈니스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대학교에서 세라믹 디자인을 전공한 취업 준비생 트래비스 그릴로(Travis Grillo)의 창업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열망했던 나이키의 신발 디자이너 입사에 뼈아픈 실패를 겪는다. 깊은 상실감에 고향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뒷마당에 앉아 가족들이 늘 해먹던 피클을 베어 문 순간, 그는 인생의 경로를 완전히 뒤바꿀 결정적인 영감을 얻게 된다. 100년 동안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할아버지의 신선한 가든 스타일 피클 레시피를 비즈니스로 연결한다는 야심의 시작이었다.


그는 단 7가지의 엄선된 천연 재료(오이, 소금, 딜, 마늘, 물, 포도 잎, 식초)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오래된 1985년식 커틀러스 슈프림 자동차 트렁크에서 소박하게 첫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야구장과 공원을 돌며 인지도를 쌓은 그는, 보스턴 커먼 공원에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든 나무 카트를 세워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달러에 피클 2조각을 파는 노점 장사로 사업의 뼈대를 다져나갔다. 디자이너로서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는 단순하고 흔한 음식인 피클에 자신의 디자인 감각과 가업의 역사라는 강력한 스토리를 담아냈다.


이 스토리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비즈니스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과정 속에서도 창업 초기에 가졌던 비즈니스 마인드와 장인정신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이다. 대량 생산 시스템에 편입되어 규모가 확장될 때,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수익성 악화나 공정의 복잡함을 핑계로 인공 보존제를 첨가하거나 저렴한 원재료로 대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릴로스 피클은 7가지 천연 재료만을 고집하는 초심을 타협 없이 유지함으로써 초기 고객들과 맺었던 끈끈한 신뢰를 지켜냈고, 이것이 훗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굳건한 토대가된다. 더불어 작은 소규모 브랜드의 인지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클과 관련된 재미있고 유쾌한 굿즈를 제작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브랜드의 활동 영역을 한 차원 높인 부분 역시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마케팅이지만 당시로서는 눈부신 사업 확장과 제품 가치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스몰 브랜드가 이미 포화된 시장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자신만의 확고한 영토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다른 획기적인 사례는 국내 마케팅 도서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캔 생수 브랜드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다.


생수 시장은 본질적으로 그 어떤 소비재보다도 제품 자체의 물리적인 맛이나 기능적 차별성을 입증하기가 극도로 까다로운 분야다. 이미 에비앙, 피지워터 같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부터 거대 식품 및 유통 기업들이 내놓은 초저가 PB 생수들까지 촘촘하게 진형을 갖추고 있는 극단적인 레드오션 중 하나이다. 과연 현대의 소비자들은 맛이 엇비슷한 평범한 생수를 특별한 브랜드 가치나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깊은 밸류를 기대하며 지갑을 열 것인가?

이는 쉽게 와닿지 않는 난제이지만, 리퀴드 데스는 이러한 상식적인 의구심을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브랜딩으로 응답하며 젊은 세대의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기존 생수 브랜드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맑고 깨끗한 자연, 알프스의 빙하, 혹은 건강하고 웰빙 지향적인 이미지만을 기계적으로 강조했다. 아니면 초저가라는 가격적인 면만 강조했다.


그러나 리퀴드 데스는 이러한 평이하고 진부한 문법을 파괴했다. 이들은 마치 데스메탈이나 하드코어 펑크 록 밴드를 연상시키는 강렬하고 기괴한 해골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고, "당신의 갈증을 살해하라"라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도발적인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만을 강요받던 지루한 생수 시장에 등장한 이 힙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무언가 새롭고 틀을 깨는 자극을 갈구하던 젊은 세대에게 그 어떤 브랜드보다 확실한 메시지와 제품 가치를 부여했다.


이 극단적인 악동 같은 비주얼 이면에 지구를 향한 매우 진정성 있고 이타적인 환경적 메시지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리퀴드 데스는 전 세계적으로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플라스틱 생수병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재활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알루미늄 캔에 생수를 담아 판매한다. 겉으로는 갈증을 살해하겠다는 험악한 록스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자연 보호와 지구 생태계 보존이라는 숭고한 미션을 품고 있다. 이러한 극적인 인지적 부조화와 반전 매력은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현대의 MZ세대에게 폭발적인 팬덤을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환경을 지키고 싶지만 기존 환경 단체들의 지나치게 진지하고 도덕적인 훈계조의 캠페인에 피로감을 느끼던 소비자들은, 리퀴드 데스의 쿨하고 유쾌한 방식에 열광적으로 동참했다. 그 결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효율적으로 마케팅하지 않아도 팬들 스스로가 브랜드의 앰버서더가 되어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고 굿즈를 구매하는 특이한 현상을 낳았다.


이처럼 철저하게 고착화된 상품군 내에서도 기존의 상식을 완벽히 뒤집는 세계관을 개척한 것만으로도 리퀴드 데스의 비즈니스 가치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런 사례는 물론 다시 만들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마케팅이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작은 브랜드가 만들어낼 기회는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욕망을 포착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한 사례로 무알콜 아페리티프 브랜드인 '기아(Ghia)'를 꼽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술은 오랫동안 사교적 네트워킹과 관계 형성의 필수 불가결한 윤활유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술상무라는 숨어있는 직책이 있는가 하면, 업무상 잦은 술자리에 노출된 직장인들이 건강이나 개인적인 신념, 혹은 단순한 피로감 때문에 술을 잠깐 끊거나 멀리하고자 할 때 마주하는 고립감은 한번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나 역시 사회 초년병 시절 술이 약해서 꽤나 고생했고, 부장님이 잡은 회식에서 도망갈 궁리만 하다 선배들에게 혼났던 경험이 있다. 과거에도 무알콜 맥주가 존재하긴 했지만, 종류가 많지 않았고, 밋밋한 맛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마시지 말자는 심리가 작동했다. 하지만 돈 되는 곳에는 기업의 연구가 뒤따르기 마련. 양조 기술의 발달로 무알콜 맥주가 기존 맥주와 거의 유사한 맛을 내며 나름의 대체재로서 훌륭한 효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진짜 술의 모조품이거나 차선책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불가피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멜라니 마사린(Melanie Masarin)이 창업한 브랜드 '기아(Ghia)'의 독보적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그녀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방문했을 당시 술을 마시지 않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음료의 옵션이 뾰족한 수가 없다는 현실에서 좌절을 느꼈다. 그녀는 단순히 알코올의 맛을 모방한 대체재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서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식전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던 어린 시절의 낭만적인 기억과 사회적 연결감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싶었다. 기아는 술로 인한 피로나 숙취 등의 피해를 겪고 싶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사교 모임의 즐거움과 미식의 경험만큼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탄산 대체재가 아닌 당당하고 세련된 새로운 선택지를 머리속에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

기아의 포지셔닝 전략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무알콜 음료 시장의 트렌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시장 규모가 2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논알코올 시장에서, 많은 무알콜 음료 브랜드들은 알코올이 빠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답토젠(Adaptogen)이나 CBD 같은 기능성 성분을 앞다투어 첨가하며 소비자의 기분을 인위적으로 들뜨게 하거나 이완시키는 데 집착한다. 그러나 기아는 에너지 드링크도, 수면 보조제도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음료가 주는 생물학적인 기능성 효과보다는 천연 허브 추출물을 바탕으로 한 복합적이고 고급스러운 맛, 그리고 그 음료가 놓인 사교적 상황의 '경험'에 완벽히 집중하고 있다. 술의 사교적 역할까지도 포용한 집요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실제 기아의 소비자 데이터를 살펴보면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술을 즐기지만 특정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절제할 줄 아는 균형 잡힌 마인드풀한 순간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폭넓게 포진되어 있다. 높은 가격표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탄탄한 팬심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아가 금주를 억지로 돕는 초라한 보조 제품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사교적 낭만을 채워주는 프리미엄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는 반증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치열한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신제품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고민해야 하는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 그리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모색하며 도약을 꿈꾸는 예비 창업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퍼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교재이자 인사이트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들이 증명해 낸 가장 위대한 성취는, 결국 소비자의 결핍과 일상의 미세한 변화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때 압도적인 자본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어렵지만 평범한 사실이다. 발라처럼 기능을 미학으로 치환하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그릴로스 피클처럼 창업자의 꺾이지 않는 서사를 제품의 영혼으로 삼으며, 리퀴드 데스처럼 극단적인 인지적 대비로 세대의 갈증을 해소하고, 기아처럼 주류 문화를 회피하고픈 현대인에게 당당한 대안을 쥐여주는 것. 이 모든 과정은 비즈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거대한 소비 패러다임의 전환기 속에서, 무미건조한 대량 생산의 논리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 세상은 이제 외형이 가장 거대한 기업이 아니라, 가장 깊고 다채로운 색깔을 품고 소비자들과 유쾌하게 소통하며 일상의 혁신을 만들어가는 작지만 위대한 브랜드들의 발걸음에 진심 어린 박수와 자본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은 이 작지만 거인 같은 브랜드들이 남긴 족적의 케이스를 바탕으로 무엇이 소비자의 핵심을 꿰뚫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각인 시킬 것인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토를 개척해야할 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어쩌면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도 기존에 접근하던 장사의 방식을 바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심스러운 메시지일 수도 있다.

책에서 지도를 찾았다면, 이제는 뚜벅 뚜벅 앞으로 걸어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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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심리학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인간 매뉴얼 세계척학전집 2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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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심리학 편 : 책 한 권으로 심리학의 대가가 되어 보자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적 허영심은 강력한 독서의 동력이 된다. 

지난번 우연히 집어 들었던 “세계척학전집”이라는 수상한 시리즈의 첫번째 편인 “훔친 철학 편”이 내게 남긴 것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당장 내일 출근길에서 써먹을 수 있는 ‘생각의 무기’로 평상시의 시각을 바꾼 계기가 된다.


칸트나 니체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그들이 전생애를 걸쳐 고민했던 치열한 결과물을 이해화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읽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과 상사의 헛소리를 조금은 다른 해상도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두번째는 “심리학”이다.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어쩌면 전공을 이 녀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읽었던 여러 도서 중에서 심리 실험의 다양한 케이스를 다룬 책들은 일순위로 서가에 꽂아둘 정도였으니.

하지만 체계적인 학문의 한 획을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보니 “척”하기는 더욱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본 시리즈를 한 권, 내 것으로 만들어놓는다면 조금은 자신있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심리학의 대가인 “척”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첫 페이지를 넘겨가며, 나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이 복잡한 구조물을 진지한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그저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왔다는 적나라한 현실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만나게 된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기계가 어떻게 설계되었고, 왜 오작동하며, 그 오작동을 어떻게 역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편안한 사례와 함께 설명되고 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분노, 타인을 향한 질투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근원을 일상속의 언어로 이해하고, 실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된다.


책장을 넘기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두 명은 바로 칼 구스타프 융, 그리고 뜻밖의 인물 데일 카네기다.


먼저 융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프로이트와 함께 심층 심리학의 거대한 기둥을 세운 인물이지만, 내게는 그저 ‘꿈 분석’이나 ‘집단 무의식’ 같은 난해한 용어로 기억되던 학자였다. 하지만 이 책이 안내하는 융의 ‘그림자(Shadow)’ 이론은 최근 회사에서 겪고 있던 스트레스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에 사례로 등장하는 꼴 보기 싫은 직장 동료가 하나쯤 다들 있을 것이다.묘하게 거슬린다. 상사 앞에서는 혀에 꿀을 바른 듯 아부를 떨고, 회의 시간에는 남의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자신의 것처럼 포장해 발표한다. 처세술의 달인이라 부러워하는 사람, 때로는 나처럼 욕을 하는 두 분류로 나뉘게 된다. 


하지만 융의 차가운 메스는 실체를 얼굴 앞에 들이민다. 그를 혐오하는 이유는,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는 것, 내가 숨겨놓고 있던 또다른 나의 욕망을 그가 대신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융은 말한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혐오하는 그 부정적인 면은 사실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억압해 둔 나 자신의 일부, 즉 ‘그림자’다. 자산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못 하는’ 행동을 그가 보란 듯이 해내고 있기에 질투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융이 내면의 깊은 심연을 비추는 등대였다면,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데일 카네기는 이 심리학 여행의 가장 의외이자 흥미로운 변곡점이다. 


‘심리학’ 책에 카네기라니? 그는 학자가 아니라 처세술 강사, 혹은 자기계발서의 대가 아닌가? 

학문적 엄밀함이 생명인 심리학의 계보에 ‘인간관계론’의 저자가 끼어있는 모습은 마치, 미슐랭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 중간에 햄버거가 서빙된 것처럼 낯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무릎을 쳤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카네기야말로 가장 위대한 응용 심리학자 아니었던가!


프로이트 같은 심리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의 마음을 해부했다면, 카네기는 그 해부도를 들고 사람들과 만나고 강연을 했다. 그는 복잡한 심리학 이론을 대중이 즉각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행동 지침으로 번역해낸 천재적인 번역가이자 실천가였다.


책 속에서 재조명된 카네기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비난하지 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이름을 기억하라”. 


도덕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귀한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의 인정 욕구와 방어 기제를 정확히 꿰뚫어 본 후 나온 전술적 지침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으며, 비난받으면 즉시 방어벽을 세우고 반격을 준비한다. 

카네기는 이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논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려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 말라는 고도의 심리전술 인 셈이다.


직장생활에서 - 특히 상사와의 갈등이 빚어지는 일촉즉발, 바로 그 시점에 머리 속에 꽝 때리며 행동을 중단해야 하는 중요한 지적이다. 나 역시 몇 번인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마치 스스로 뭐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던 팔푼이 짓을 해왔다.



우리는 모두 겉으로는 멀쩡한 척, 쿨한 척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오작동하는 기계들이다. 융이 말한 그림자를 숨기느라 에너지를 탕진하고, 카네기가 경고한 대로 남을 비난하며 적을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위로하지 않는다. 

“네가 지금 괴로운 건 시스템 오류야. 여기 버그 수정 패치가 있어”라고 건조하게 말해 버린다.


막연한 위로는 하룻밤의 안락함을 주지만, 명확한 분석은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준다. 회사에서 또다시 얄미운 동료를 마주칠 때, 나는 이제 속으로 웃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머리에서 떠올려야 한다. 내 질투가 나를 갉아먹는 독이 아니라, 내가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내면의 신호라는 긍정적 접근도 필요하다. 회의 시간에 꽉 막힌 상사를 설득해야 할 때, 논쟁거리를 만드는 대신 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우회로를 택하는 지혜도 얻게 되었다.


물론 대학 동기들과 맥주 한 잔 할 때, 심리학 전도사로 잘난 “척”하는 기초 소양을 다졌다는 점이 장 으쓱하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며, 앞으로 다방면에 잘난 인간이 되기 위한 최고의 효율을 책 한 권에서 알차게 파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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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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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AI 정보 시대, 생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8가지 규칙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문서입니다.


AI시대의 끝자락에는 인간은 그저 세상을 존속시키는 배터리로 전락하리라는 “메트릭스” 같은 세계가 올 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오랜 후의 일이고 당장 올해 우리의 일자리가 AI에 의해 어떤 변화를 맞이할 지 고민해야 한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존재의 가치는, 단순 노동처럼 로봇이 하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영역이나, 독창적이고 기존에 없었던 생각을 사고하는 영역만 살아남을 지 모르겠다.

자기 사고를 통해 세상에 없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AI에게 인간의 도움없이는 자기교배의 모순에 뺘져 붕괴된다는 이론이 그나마 인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어쨋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해왔던 사고의 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새로운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새로운 시각이란 책의 제목대로, 단순히 직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저자는 스페인의 대표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의 데이터 저널리스트로서, 선거부터 축구 경기까지 모든 것을 데이터로 분석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데이터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21세기 디지털화의 거대한 변화로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게 되었다. 작은 가게에서부터 거대한 기업을 운영할 때, 그리고 개인적인 삶과 집단적인 삶에서 데이터를 제대로 바라보고 응용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대부분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만물의 동작 원리 일지도 모른다.

책은 명확하게 생각하기 위한 8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라. 

두 번째, 수치로 사고하라. 

세 번째, 표본의 편향을 막아라. 

네 번째, 인과 관계의 어려움을 수용하라. 

다섯 번째, 우연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 

여섯 번째, 불확실성을 예측하라. 

일곱 번째, 딜레마에도 균형을 유지하라. 

여덟 번째, 직관을 맹신하지 말라.



명제로 접근하면 음, 그럴듯해. 라고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사실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친절한 사례로 독자가 규칙에 쉽고 이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저자의 친절한 책 구성이 준비되었으니, 8가치 규칙으로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었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만 하자.


첫 번째 챕터에서 뱀장어의 사례를 얘기하듯이 세상은 복잡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직관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보통 우리가 나비효과로 불리는 효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데, 이렇듯 일부 현상은 너무나 복잡한 나머지 혼돈 상태에 이른다. 카오스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사람, 모든 것들이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쥬라기 공원의 말콤 박사가 손바닥에 물방을 떨어뜨리며 공룡들의 폭력을 예견한 장면이 이해하기 쉬운 사례였다.)

책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원인들의 원인' 챕터에서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참사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드라마 시리즈를 통해서 당시의 연구진들이 얼마나 엉성하게 대응을 했고 실험을 진행했는지 잘 볼 수 있었지만, 과연 그 한 그룹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그동안 핵 개발 및 발전소를 구축하면서 여러 가지 원칙이라든가 규칙을 태만하고 방관했기 때문에 그런 모든 일들이 하나로 촉발되어 그런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거나 어느 한 사람의 실험, 어느 한 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복잡하게 얽혀서 상호 작용을 통해서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들은 더 복잡해지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생물학의 여러분을 보게 되면 창발적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단순한 요소들이 상호작용으로 복잡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 책에는 남부 카르멘트가 있는 들판을 나는 찌르레기 떼의 군무 사진이 등장하는데, 새들의 군무가 어떤 규칙이나 원칙이 아니라 본능적인 연쇄작용으로 움직이고, 이는 작은 미세한 변화가 결국 상호작용으로 얽혀서 거대한 동작과 행동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설명된다.

스페인 축구 선수들 중에서 1월생들이 12월생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하나의 현상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교육되면서 좀 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받는 현상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책에서는 데이터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한계적인 사항들을 돌파하며 무엇을 제대로, 어떻게 데이터를 봐야 되는지에 대해서 예시를 통해서 명확하게 지적하는 부분이다. 본질적으로 데이터 접근 방법이라든가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에 대해서, 그리고 데이터의 중요성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데이터의 활용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된다.


두 번째 규칙은 수치로 사고하라는 것이다. 이 챕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항공기의 유명한 사례가 등장한다. 전투에서 돌아온 폭격기들을 조사했을 때, 날개와 동체에 총알 구멍이 많이 나 있었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이 부분을 강화해야 할 것 같지만, 통계학자 아브라함 왈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총알 구멍이 없는 부분, 즉 엔진과 조종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부분에 맞은 비행기들은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생존편향(survivorship bias)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 살아남은 것들만 보고 판단한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특징을 보고 그것을 따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평균과 중앙값의 차이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어떤 동네의 평균 소득이 높다고 해서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부유한 것은 아니다. 만약 억만장자 한 명이 그 동네에 산다면 평균은 크게 올라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 소득 수준일 수 있다. 이럴 때 중앙값이 실제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통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평균과 중앙값 같은 기본 개념을 잘 선택된 예시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는 데이터를 볼 때 절대적인 숫자뿐만 아니라 비율과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범죄가 100건 증가했다"는 말은 전체 범죄가 1,000건에서 1,100건으로 늘어난 것인지, 10,000건에서 10,100건으로 늘어난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10% 증가지만 후자는 1% 증가일 뿐이다. 이처럼 수치로 사고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곧잘 이런 핵심을 놓치고 있고, 교묘한 협잡꾼들을 이런 틈새를 노려 우리를 공략한다. 



8가지 규칙은 각각 독립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일관된 사고 체계를 형성한다.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수치로 사고하고, 편향을 경계하며, 인과관계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우연을 존중하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예측하고, 딜레마를 인정하며, 최종적으로 직관을 맹신하지 않는 것까지. 이 여정은 결국 우리가 겸손함을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저자는 복잡한 통계적 개념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다. 체르노빌 참사, 제2차 세계대전 폭격기, 스페인 축구 선수의 생년월일,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결정 방식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예시들은 단순히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독자가 기억속에서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각인시킨다. 술자리에서 “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라며 화두를 뗄 수 있을 정도의 침투력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에 대해 다루는 챕터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왜 우리의 결정이 때때로 잘못되는지, 그리고 이것이 앞서 다룬 수학적 아이디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풀어내는 부분은 정말 유용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인지적 편향과 휴리스틱에 의존한다. 확증편향, 가용성 휴리스틱, 기준점 오류 등은 우리의 판단을 왜곡시킨다. 이 책은 이러한 함정들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해하지 못한 약점은 무방비 상태이지만, 정확히 함정들을 파악하면 알아서 상황에서 마추칠 때 슬로운 해결책이 떠오를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의 직관은 불완전하며, 데이터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라는 것이다. 데이터는 모든 세부사항을 포착할 수 없지만, 데이터 없이는 훨씬 더 적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겸손함과 동시에 자신감을 준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겸손함, 그리고 올바른 도구와 사고방식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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