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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평점 :

최소한의 양자역학 : 지금 시대는 양자역학을 알아야 살아남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벨기에의 세계적인 양자물리학자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와 그의 아내이자 언어학자이며 극작가인 셀린 브뢰카에르트가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과학적 엄밀함을 문학적으로 절묘하게 풀어낸 역작이다.
2025년은 유엔과 유네스코가 지정한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1925년 행렬역학을 발표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양자역학의 기원을 그보다 훨씬 이전인 16세기 시몬 스테빈에서 찾는다. 이러한 접근은 양자역학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 물리학자의 번뜩이는 영감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서로의 어깨 위에 올라선 거인들 덕분에 완성된 학문임을 의미한다.
책의 1부는 물리학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변환한 과학자들의 성과를 다룬다. 시몬 스테빈의 낙하 실험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연을 수학이라는 객관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아이작 뉴턴이 행성들의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미적분을 발명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스테빈의 낙하 실험 이야기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스테빈은 실험을 통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단순한 물리학 실험의 의미를 넘어 세상을 지배하던 권위에 도전하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현대 과학의 방법론이 시작된 의미를 가진다.
갈릴레이는 스테빈의 영향을 받아 '낙하 실험 2.0'을 진행했고, 자연을 설명하는 열쇠로 수학을 찾아냈다. 뉴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적분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물리학의 길을 닦게 된다.
해밀턴 경이 사원수를 통해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마련한 이야기, 에미 뇌터가 대칭에 관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서술을 통해 양자역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수백 년간 축적된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 위에 층층히 쌓여 올라간 결과물임을 강조한다.
2부는 20세기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본격적인 양자역학의 역사를 다룬다. 유튜브에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이 과정은 흥미로운 역사 다큐멘터리 형태로 다뤄지는데 글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막스 플랑크가 1900년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양자화 개념을 도입하면서 양자혁명의 포문을 연 이야기,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광양자설을 발표한 과정, 닐스 보어가 원자 모델을 통해 전자의 궤도를 양자화한 업적이 상세히 서술된다.
특히 루이 드 브로이가 모든 입자가 파동 묶음임을 발견하고 각 입자의 파장을 구하는 공식을 발명한 이야기는 양자역학의 핵심을 이룬다. 드 브로이는 빛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데 착안하여, 역으로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가질 것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그의 물질파 이론은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전자의 궤도가 왜 띄엄띄엄 존재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전자파동의 정상파만이 보강간섭을 일으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 대한 설명이다.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 사고실험을 고안했다. 밀폐된 상자 속에 고양이 한 마리와 방사성 물질, 독가스 장치가 들어 있다.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가 죽는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자를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중첩' 상태에 놓여 있다. 많은 패러디물에 등장하는 그런 중첩 상태이다.
슈뢰딩거는 이 역설을 통해 양자역학의 터무니없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거시세계의 고양이가 생사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고실험은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예시가 되어 버리는 결과가 된다.
책에서는 중첩 개념을 일상적 비유로 풀어낸다. A안과 B안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 이직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 멈춰 선 우리의 삶도 일종의 양자 중첩 상태와 닮아 있다.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유명한 말은 이러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관측과 무관하게 달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자도 관측 이전에 이미 확정된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실재론을 주장했다.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이중슬릿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불확정성 원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보어는 아인슈타인이 전제한 "입구 판이 멈춰 있으면서 동시에 정확히 고정된 위치에 있다"는 가정 자체가 불확정성 원리를 위반한다고 반박했다. 위치 불확정성과 운동량 불확정성이 동시에 0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30년 아인슈타인은 더 정교한 '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상자에서 광자가 방출되는 시간과 상자의 무게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어는 놀랍게도 아인슈타인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반박했다. 중력장 내에서 상자의 위치가 변하면 상자 안 시계의 속도도 변한다. 따라서 에너지와 시간이라는 상보적 물리량 사이에 여전히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EPR 역설을 제시했다. 양자적으로 얽힌 두 입자 A와 B가 있을 때, A의 상태를 측정하면 B의 상태를 즉시 알 수 있다. 하지만 A의 측정이 B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국소성 원리에 위배된다. 따라서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며, 우리가 모르는 '숨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1964년 존 벨은 '벨의 부등식'을 통해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으로는 양자역학의 모든 예측을 설명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실험들은 벨의 부등식이 실제로 위배됨을 확인했고, 이는 양자 비국소성의 존재를 입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며 비판했던 양자 얽힘이 실재함이 밝혀진 것이다.
현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칭송받는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했지만 수많은 논쟁과 사고실험으로 인해 인류의 과학적 진보는 성큼 높은 단계로 올라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개념들이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마블 영화 “앤트맨”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트맨은 특수 슈트를 통해 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이는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면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 반지름의 1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원자핵이 농구공 크기라면, 전자는 10km 떨어진 지점에서 돌고 있는 셈이다. 즉 원자의 대부분은 빈 공간이다. 영화에서 행크 박사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크기 조절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강력한 전자기력이 작용하여 단단한 구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전자기력이 바로 물질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배타 원리와 불확정성 원리가 바로 이러한 원자의 안정성을 만든다.
영화 속 악역 '고스트'는 전자기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벽을 통과할 수 있다. 이는 양자역학적으로는 터널링 현상과 관련이 있다. 입자가 고전역학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에너지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하는 현상이다.
영화 “엔트맨”은 비록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들을 대중에게 흥미롭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원자의 구조, 중첩, 얽힘과 같은 개념들이 영화를 통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양자컴퓨터와 AI의 융합 가능성이 제시된다. 이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기술 트렌드 중 하나다. 양자컴퓨터와 AI는 둘 다 과거 수년 동안 허황된 광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챗GPT의 등장으로 AI는 갑자기 현실이 되었고, 양자컴퓨터도 AI로부터 탄력을 받아 실용화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두 기술은 서로 혜택을 주며 수렴하고 있다. AI는 알고리즘을 최적화하고 실시간 오류 수정을 개발하여 고장 허용 양자컴퓨터를 현실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엔비디아와 구글 퀀텀 AI의 협업이 대표적 사례다. 엔비디아의 플랫폼은 양자 프로세서의 물리적 작용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일주일이 걸렸을 시뮬레이션이 이제 몇 분만에 끝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해결하기 어려운 특정 최적화 문제를 푸는 데 뛰어나다. 사기 감지, AI 모델 훈련을 위한 합성 데이터셋 생성, 막대한 에너지 비용 절감 등의 특정 AI 작업 향상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양자 알고리즘은 다른 알고리즘이 놓치는 근본적 패턴을 식별할 수 있어, 양질의 훈련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비쌀 때 가치가 높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양자컴퓨터는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해 작은 진동이나 온도 변화만으로도 계산 오류가 발생한다. AI가 이런 오류를 실시간으로 찾아내고 고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양자 신경망에서 학습 과정이 평평해져서 더 이상 성능이 개선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다. 책에서 강조하듯, 우리는 이미 2차 양자혁명의 초입에 서 있다.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팅의 초고속 연산, 양자통신의 초신뢰 보안, 양자센서의 초정밀 계측 등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양자컴퓨터와 AI의 융합은 의료, 금융,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 분석과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양자역학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와 작가의 합작품이라는 점이다. 물리학자와 언어학자인 아내가 함께 쓴 덕분에 복잡한 수학 공식 뒤에 숨겨진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총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각 장마다 요약이 되어 있어 이해하기 좋다.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초급자도 전문가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구성과 내용이다. 책 후미에는 용어설명이 있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검색 없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책 곳곳에 삽입된 역사적 일화들과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는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양자역학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창이다"라는 구절이다. 우리는 흔히 양자역학을 난해하고 비직관적인 학문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양자역학이 오히려 자연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물리학의 수학적 구조와 인간적 사유가 교차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듣게 된다. 그것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역설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며, 미지의 세계 앞에서도 겸손하게 질문하는 과학정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