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아트북 : 크리스토퍼 놀란의 폭발적인 원자력 시대 스릴러
제이다 유안 지음, 김민성 옮김, 크리스토퍼 놀란 서문 / 아르누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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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아트북 : 작가주의 영화에서 발견하는 모두의 땀방울과 결과물들
 
 
 
 

 
두 번의 폭격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민간인 희생이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들, 범죄국가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가능 범위 내에 있다.
대신 원자탄의 위력을 맛볼 뻔했던 독일이 보여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철저한 반성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은 너무 먼 곳에서 멈춰 서서 1945년도의 흉포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손에 쥐어 준 무기의 응징으로부터 자신은 피해자라고 우기는 그들에게는 그래서 두 번이 아닌 더 많은 폭격으로 국가소멸 단계에 들어가고 그들이 천황이라는 부르는 왕가의 몰락과 처단이 있었어야 했다는 과격한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맥아더의 일본 사랑과 한반도 전쟁의 악몽이 없었다면 바른 생활 국가로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현대를 살아갔을까?
 
인류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어야 할 무기를 개발했다는 자책감으로 노년의 삶을 피곤하게 살아가게 된 원자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일본이라는 패전국의 프레임으로 한정 지어 생각한다면 한국 사람이라면 영웅이라고 극찬의 박수를 쳐도 좋을 것이다.
한 국가의 소중한 주권을 짓밟고 유린한 오만한 국가가 백기를 들게 만드는 유일한 무기였으니, 정치와 군부의 기묘한 결합으로 자국민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간 리더들을 감안하면 일본 국민들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놀란 감독의 신작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제한하는 대신, 역사의 커다란 페이지 변환을 일으킨 한 인물과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솔직히 실망을 했었다.
아직도 100% 이해가 되지 않는 전작 “테넷”처럼 흥미와 지적 집중을 요구하는 영화가 또 한편 등장해 주길 기대했지만 현대사의 따분함 속에 작가주의는 요원하지 않겠는 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개인적으로 “덩케르크”를 워낙 재미없게 감상했던 지라 실망은 한층 깊어 졌다.
 


감독에 대한 예의상 긴 러닝타임을 감안하고 개봉일 극장을 찾았지만, 막상 영화를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1시간 30분짜라 순삭 영화를 본 느낌은 기묘했다.
분명 시간상이나 러닝타임을 알고 있음에도 지루한 부분은 거의 없었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스토리조차 새롭게 느껴졌으며, 원폭 테스트 장면의 긴장감은 현장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위기상황에 몰입될 수 있었다.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의 분리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두 인물의 팽팽한 긴장감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는 “JFK”의 숨막히는 편집 솜씨가 재현된 느낌도 들어 좋았다.
영화 블루레이가 출시되기 전에 아트북을 통해 영화의 장면들과 촬영현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즐거움은 배가된다.
작가나 감독 모두 처음 생각보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는데 약간의 놀람이 있었다는 부담감을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감독 특유의 스케일을 본인이 모를 리가 없잖은가.)
 

무엇보다 영화 뒷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갈등관계를 구성하게 된 계기였다.

알다시피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갈등관계에 인물을 배치하는 과정이다. 수소 폭탄의 아버지이자 극 중에서 오펜하이머에게 굴욕을 당하고 재판과정에서 독소를 날릴 정도로 대척점에 있던 두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객관적 사실을 떠나서도 흥미로운 배치였겠지만 놀란은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스트로스”라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해군제독이자 백만장자였던 그의 등장은 서로 대단한 한 방을 주고받았던 사실뿐 아니라 영화 곳곳에 갈등의 과정을 삽입하여 플롯이 상승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두 인물의 연기력은 더욱 관계의 대척점을 강조하였고 고고한 학자와 철저한 속물이라는 평범한 캐릭터를 매력덩어리로 바꾸어 놓았다.

마블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연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도 아마 이 영화는 최고의 선물이었으리라.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가젯”은 생김새는 물론 가공할 위력을 내재한 상상력을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에 제작진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소품이었다.

사실성을 제대로 표현해야 하는 조건은 기본이고, 32미터나 높은 고도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무게까지 신경 써야 했다. 눈 높은 관객들에게 폭탄에 플루토늄 코어를 올리고 마지막 봉인하는 장면 하나 하나에 실제감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프로페셔널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세상이 바뀌는 날, 폭발 실험이 성공하는 장면은 아이맥스 화면에 실제 폭탄이 터지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일부 영화 팬들은 기대에 못 미친 연출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 의견으로는 오히려 실제와 더 가까운 장면이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폭발 직전과 직후 배우들이 보여주는 긴장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연결된 시퀀스야 말로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면 예약했던 “오펜하이머” 4K블루레이가 도착할 예정이다.

폭발하는 화염 앞에 당당히 서있든 킬리언 머피의 깡마른 커버가 스틸북으로 정성스럽게 제작된 영상물로 기대된다. (그의 키가 175cm밖에 안된다는 놀라기도 했다. 큰 키라고 봤는데 말이다. 심지어 “28일 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니버셜의 공식 마지막 물리매체로 판매되는 슬픔이 교차되는 영화로 오펜하이머가 선정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놀란 감독의 물리매체에 한글자막이 실리 않게 된다는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영화를 감상하며 아트북에서 읽은 배우와 스탭진의 노력을 스크린으로 감상할 즐거움이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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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학 필독서 50 - 2500년 정치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11
톰 버틀러 보던 지음, 김문주 옮김 / 센시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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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학 필독서 50 : 정치 사상에 도전을 하는 이들을 위한 첫번째 단추





교과서에서 배우는 세상의 진리가 현실에서는 무참하게 짓밟히고 조롱 당하는 비극은 머리에 피가 마르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눈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귀족 정치로 제한된 참정권이 보장되던 그리스 시대에도 그랬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삼켜버릴 듯 IT가 성장한 현시대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국민이 선택하지만 권력은 국민을 기만하며, 심지어 나라를 시궁창에 빠뜨리고 잠재적 적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참담함까지 맛보게 될 수 있다.

날카로운 펜의 힘은 제 4 권력이라 비꼬는 노래가사처럼, 권력자의 비위를 캐고 사회정의를 지키기는 고사하고 약자인 국민과 이를 악용하는 정치와 경제의 먹이에 눈이 팔려 권력의 시녀가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종이 신문 팔이가 안되니, 광고라도 챙겨야 월급이 나오는 언론 자영업자에게 정의를 요구하기도 무리지만 조회수 팔이는 너무 하지 않은가?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국가에 대항하고 적국과 전쟁을 벌이던 평범한 사람들의 갈망은 스마트폰의 오락에 빠지거나 따뜻한 안락 속에 도전과 투쟁을 겁내게 되었고,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속성을 비웃는 젊은 세대는 현실의 냉정함 속에 비겁해질 수 밖에 없다.

 

레이첼 카슨 한 사람이 환경운동의 막강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만큼 개인의 각성하였을 때의 위력은 엄청나지만 보편화되는 정치와 역사를 향한 무관심 또는 무지의 확대가 젊은 세대를 먹어치운다면, 그런 국가가 이미 소멸 단계로 넘어섰다는 성적표를 받아도 할 말 없다. 자신 세대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미래 세대를 위한 투쟁과 궐기를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산업 혁명으로 촉진된 도시화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지구 위의 인류가 최대 번성기를 만들어 내던 당시의 상승 곡선은 21세기 들어서며 급격한 하락 추세로 돌아섰고 누구도 다음 세대의 검은 세상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자연의 섭리가 작동된 상황 일지도 모르겠다.

인구의 자연스러운 감소는 소멸된 국가와 국민들에게는 비극이지만 사람이 싸질러 놓은 폐기물로 신음하던 지구에게는 엄중한 자정작용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 고마울 수 밖에.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과거에 논하던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권력자들의 파워게임이나 부정축재의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정치 철학의 부재를 명쾌하게 비판할 지성을 갖추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어, 답답함에 정치 이론 서적을 제대로 한 번 탐독해보자는 결의를 하게 된다.

 


마침 경영학 필독서를 영양가 듬뿍 넣어 통조림에 압축하여 제공하던 시리즈 물에 정치학 필독서가 새로 추가된 덕에 방향을 잡기 딱 적당해졌다. 직장생활 하느라 여기 저기 주워들은 게 많은 경영학 도서들과는 달리 생소한 분야다 보니 용어 하나 문장 하나 쉽지 않겠다는 우려가 들었고, 본격적으로 소개된 책들을 구매하여 읽기 시작한다면 조금 더 머리가 지끈거릴 듯하다.

 

다행히 다이제스트로 배우는 과정은 조금 어려운 부분은 도려내고 초보자들도 접근하기 쉬운 구성으로 접근할 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까지 목록에 있어 다소 놀랐지만 저자의 도서 선별 능력은 탁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니 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최근 전자책으로 구매하여 읽을 날만 하고 있는 독일의 “제3제국사”는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집단 최면 상태의 국가에게 충성을 다하게 만든 이론적 근거에도 관심을 갖게 맞는다. 

조작한 언론이 가져올 파급력을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이용한 영리한 나치를 다룬  "프로파간다"는 어쩌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도서 중 가장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도서다.  먼저 압축본을 통해 전체 내용을 감지한 만큼 서점 목록에 올려놓고 구매 버튼을 만지작거린다.

 

자자한 명성만 들었지 정작 책으로 만난 경험이 없는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은 왜 그녀가 단순히 피해를 당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시작된 분노가 아닌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위험성으로 전체주의 국가의 특징을 경고하려고 했다는데 동의한다. 이상 속의 국가는 결국 국민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이데아인 동시에 자신들의 피를 희생하며 만들어지는 환상일 지도 모른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선동하고 조작하며 끝없는 투쟁이 국가가 행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결국 짧은 시간 속에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전체주의에 전도된 국가의 숙명이라는 점에 그나마 안도감이 든다.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의 유럽은 세계대전 전후 상황일 것이다.

상반된 정치적 주장들이 이론과 실제로 맞물려 사회적 혼란이 있던 시기를 꿰뚫는 위대한 정치가들의 횡보를 쫓는 책 읽기도 흥미롭다.

요즘은 평가 절하 되는 부분이 많은 처칠의 정치 권력사 역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이다.

 

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유보해야 한다.

미국 내부나 유럽의 입장에서 긍정의 평가가 우선하겠으나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갉아먹은 부분이 많다. 특히 대놓고 일본에 유리한 여러 정책을 실행한 탓에 이후 한일관계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고 최근 급선회한 양국의 화해 모드가 한쪽으로 이익이 몰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평가가 마무리된 지도자는 아니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는 있겠다.

 

다이제스트본은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분류다.

세상 모든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 보니 대략적인 필독서들의 이해를 돕고 필요하면 직접 원본을 구해서 읽어보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정치도서들에 접근이 뜸했던 독자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의 공간을 넓히는 기회를 가지길 권유한다.

꼭 읽어야할 책들을 잘 선별해서 알맞게 압축했으니 시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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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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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 복잡한 독일사를 한 권으로 꿰뚫는 기회




“도이칠란드”의 우리 발음인 “독일”은 닮았고 어감이 거세다.
과거 로마의 역사 속에 게르만족이 등장했을 때의 느낌이 먼 동방의 나라에서 불리는 국가명에도 반영되는 인연은 우연치고는 흥미롭다.
 
근현대사를 훑어보면 독일과 유사한 느낌의 나라는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비록 1차 세계대전이 결과는 서로 반대의 길을 겪었지만 2차 대전은 같은 전범국으로 패배하였고, 이후 서구열강에 의해 찢기고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의 위기를 현명한 대처로 극복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5위권 안에서 서로 등위를 다투는 강대국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둘의 가장 큰 차이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거사에 대해 현재의 국민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반성은 그들의 유사한 역사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무엇이 이 둘의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항상 이방인 취급을 받던 민족과 지리적 특성으로 외세의 침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국가의 자만심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책 한 권으로 한 국가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학창시절처럼 눈 앞의 시험을 두고 책과의 씨름을 할 수 없으니 역사를 이해하는데 성인들에게는 적합한 방법일 수도 있다.
 
독일 이전 로마가 유럽을 지배하고 있을 때 용병 또는 오랑캐 취급받던 게르만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지켜왔던 우리에게는 꽤 낯선 풍경이다.
특히 독일의 서막을 알리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는 믿음을 배신한 게르만의 야비함이라는 우리네 정서로 비난도 가능한 역사의 이면이다.
볼모처럼 로마에 보내져 철저하게 그들의 교육방식을 따랐던 아르미니우스가 커다란 패배를 안겨주었을 때 로마인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수준이었다.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은 누구에게는 재앙이었던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승리의 역사로 자랑스러운 국가의 탄생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교회와 국가보다 앞선 왕위혈통의 복잡한 전개와 그들 사이의 암투는 사실 학창시절에도 재미없고 복잡하기만 하다.
독일이라는 나라 하나만 똑 떼서 역사를 살펴볼 수 없는 연계성인 동시에 잠시나마 각 국가의 이합집산을 살펴볼 기회기도 하다.
 
항상 유럽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러시아가 상황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하고 적군이 되기도 하는 상황은 인접국인 독일의 정세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1800년대 유럽의 자유를 외치던 혁명이 코 앞까지 닥쳤음에도 러시아의 관계가 꼬이면서 미완의 실패로 남게 되었다. 그 시기 국가에 실망한 마르크스가 자신의 고집스러운 사상을 정리하게 되면서 그 이후 새로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어 지구를 반 토막으로 만들었다는 결과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2차 대전 후 분리된 동독과 서독이 사실 분단 이전부터도 생판 다른 성격으로 인해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는 점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프랑스, 영국에 비해 공국들의 난립과 통일 같은 이합집산이 오랫동안 독일이라는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영향이 꽤 오랫동안 지역감정 같은 갈등이 고리로 작용해왔다.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에서 히어로처럼 등장한 히틀러에 열광하던 당시의 독일인들은 옳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함없지만 열강의 혹독한 패전책임을 온 국민이 실생활에서 엎어 쓰는 비극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자신들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광기를 강조하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대의가 되는 프로파간다가 가능했던 이유도 잃어버린 패배감의 정체성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였다.
 
냉정의 갈등 속에서 대리인의 역할을 했던 두 국가에 쏟아 부은 미국과 소련의 원조는 오히려 피폐해진 독일에게는 행운이었다.
항상 두려움을 품에 안고 살게 만드는 국가의 정체성은 악의 촉감을 느끼게 할 지 몰라도 지금 EU에서 -더군다나 브랙시트 상황에서-그들이 리더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럽은 친분을 유지하고 공동의 목표 속에 독일을 앞장세워야 하는 현실과 역사의 아이러니한 결합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는 사실 그들의 문화만큼 딱딱하다.
의외로 계층 사회가 왕래를 불허했던 폐쇄적인 사회가 우리가 칭송하는 철학이나 문화적 폭발의 이유가 되는 촉발점이 된다는 흐름은 많은 생각을 낳게 한다.
 
한 번 읽어서는 다소 난해한 역사의 맥락이기에 몇 군데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추가 독서가 있어야 그들의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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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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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 인간의 욕망이 뒤얽힌 씁쓸한 자화상
 
 
대가의 작품을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게 되는 서점행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린 시절 우상 같던 록스타들이 마약이나 약물중독이 아닌 노환과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이를 먹는 자신을 발견한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인터뷰 속 무라카미 하루키를 바라보며 문득 거울 속 내 머리카락도 하얗게 몇 가닥 변했나 헤아린다.
 
한국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몇 권의 소설이 있는데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손자와 찍은 사진의 웃음 가득한 모습이 세월의 또다른 행복으로 남겨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신작이 서점 메인 페이지에 장식되고 독자들의 설레임을 가져오는 장면은 그만큼의 몰입과 끈기가 있어야 하는 작업이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증인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이번에는 결을 달리하며 현대사회가 가진 욕망과 이를 쫓는 인간 군상의 비루함을 읽기 좋게 써 내려갔다.
 
MZ세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질감 많은 소재와 배경이지만 작가의 색을 유지한 채, 그들에게도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을만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정치와 종교가 인류의 2대악이라면 여기에 돈을 추가해 3대악이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인공 변호사의 읊조림은 2023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현재 시점에도 유효하다.
 
잘못된 정보와 판단으로 부동산 급등 시대에 영끌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너도 나도 아파트 매입에 열을 올렸지만, 치솟는 금리에 빈털터리가 되어 끔찍한 선택을 한 이들이 뉴스가 한 켠을 차지하는데 다음 경제면으로 넘어가면 청년 지원금 성격의 저이율 이자로 내집 마련의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이 실린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언론의 펜 장난인가?
이렇게 되면 집을 사야하는건지 팔아야하는건지 경험 많지 않고 돈 주머니도 넉넉치 않은 서민들에게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져 놓고 은행권만 배불리는 모양이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답 안 나오는 개인부채 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심성 정책인 듯 대출완화를 해준다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이런 내용을 여과없이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 기사를 써버리는 언론은 책임은 없는지 답답하다.
 


법에도 명시된 임대료 인상 폭을 무시하고 4배나 올리겠다고 생떼를 쓰는 건물주의 폭거는 이런 사회적인 무질서함과 뻔뻔함을 뒷배로 가질 수 있다.
힘없는 세입자가 내려친 망치에 머리가 깨지고 나도 황금종이에 대한 갈망은 없어지지 않을 테니 답도 없는 문제다.
 
가족 간의 우애가 상하고 친구와 단교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돈의 존재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결집되어 오랜 역사동안 지배-피지배의 형태를 유지했고 겉모습만 이름만 변형된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돈 앞에서는 고인에 대한 부끄러움도 내던지고 형제가 머리를 잡고 싸우고 소송에 나서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할 일이 되었듯,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법관의 옷을 입은 이들이나 국민을 위한 공복을 하겠다며 금뱃지를 단 사람들도 결국 돈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뜨거운 청춘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던 시절, 운동권의 동지애로 뭉쳐진 이들도 시간의 퇴적 속에서 자기만을 위한 권력 다툼에 빠진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요즘 대한민국에게 저자가 내세운 정의감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저 이상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자괴감만 든다.
 
짧은 에피소드 속에 묻어나는 돈에 대한 진저리나는 싸움은 거대한 인류의 진보가 욕망에서 시작된 것인만큼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틈바구니에 끼어들어가는 행위를 우리는 현명함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짧은 에피소드의 호흡이 대하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못마땅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흥겨움만으로도 신나는 독서의 두 권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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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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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가 바라본 인간의 욕망이 뒤얽힌 씁쓸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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